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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106) 요 5: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2]

  • 2019-05-07
  • 조회 수 2310

예수 어록(106) 요 5: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모세를 끌어들인다.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대부라 일컬어질 만한 인물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모세에 필적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창세기의 많은 부분에 등장하고 있는 아브라함도 위대한 인물이기는 하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씨족 사회의 태두가 바로 아브라함이다. 여호와 하나님 신앙의 단초 역시 아브...

대중 강연

  • 2011-06-10
  • 조회 수 2310

나는 지난 6월7일에 한신교회 별세목회연구원에서 주최한 ‘전국목회자 세미나’에 강사로 다녀왔소. 한신교회는 분당에 있는 기장 소속이오. 이 세미나는 25년의 역사가 있소.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되오. 매년 많은 목회자들이 모이오. 이번에도 1천 명 정도 모인 것 같소. 강사들은 한국교회에 명망이 큰 이들이오. 전주안디옥 교회 이동휘 목사, 한신교회 이윤재 목사, 정동제일교회 송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 지구촌교회 진재혁 목사, 장로회신학학교 유해룡 교수,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서울...

12월25일 당신의 어머니 (3)

  • 2006-12-25
  • 조회 수 2310

2006년 12월25일 당신의 어머니 (3)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2) 누가복음에 따르면 임신한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고향인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 신고를 위하여 왔다가 예수를 낳았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른 호적신고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약간 다르게 보도합니다. 마태복음 2장1절에는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긴 여행을 한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오직 믿음(8)

  • 2011-11-19
  • 조회 수 2309

오늘은 설명 없이 보른캄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기만 하겠소. 무슨 뜻인지는 그대가 잘 알 거로 보고, 그래도 조금 생각해보기 바라오. 신앙과 행위는 분명히 동속(同屬)적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부적합한 신앙을 어떤 특별하고 뚜렷한 행위로 보충해야 하는 두 가지 다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이 행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은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굴복하는 신앙 가운데 내포되어 있다. 신앙과 사랑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근원과 원천을 하나님의 사랑에 향한 신...

원당일기(8) file [1]

  • 2011-05-27
  • 조회 수 2309

며칠 전 갑자기 새싹이 눈에 뜨였소. 얼마나 반가운지 와,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소. 한 달 전에 뿌려놓은 건데 그 동안 아무 소식이 없더니 갑자기 등장한 거요. 서울샘터교회에 나오는 아무개 님이 주신 분꽃 씨앗이었소. 사진에서 보듯이 땅이 무지하게 나쁘다는 말은 여러 번 했소. 진흙과 돌로 되어 있소. 풀과 꽃과 나무에는 가장 나쁜 땅이오. 그런 땅을 저 가녀린 싹이 뚫고 나왔다는 건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오. 저 씨앗이 한 달쯤 땅 속에 머물던 시간을 생각해보았소. 깊이 심지는 않았소. 밤에는 깜깜했겠지만 낮에는 그렇...

고난주간을 보내며(6) [2]

  • 2011-04-23
  • 조회 수 2308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저녁 때 무덤에 묻히셨소. 최소한의 장례절차도 밟지 못했소. 왜냐하면 금요일 저녁부터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일단 안식일이 시작되면 시체를 움직이는 일은 금지되오. 그 안식일에 예수님의 시체도 무덤에 갇혀 계신 거요. 죽음의 세계요. 가사(假死)가 아니라 실질적인 죽음이오. 메시아가 우리와 똑같은 죽음에 떨어졌소. 죽음을 보통 영원한 안식이라고 말을 하오. 부분적으로 옳기도 하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오. 모든 책임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

대림절에 대해서(1)

  • 2010-12-17
  • 조회 수 2308

지금이 대림절 절기라는 사실은 그대도 알고 있을 거요. 성탄절 전 네 주간을 가리키는 절기요.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되오.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 바로 대림절이라고 보면 되오. 개신교 신자들은 교회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소. 여기에는 아마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오. 이런 생각은 큰 착각이오. 왜 그런지는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거로 보고 설명하지 않겠소. 대림절(待臨節, Advent)은 ‘오다’는 뜻의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하오. 예수님의 초림을 기억하고 재림을 기다리...

주기도(18) [1]

  • 2010-08-06
  • 조회 수 2307

-거룩한 이름(4)- 루돌프 오토라는 종교학자의 책 <Das Heilige>를 그대는 혹시 읽어보셨소? 내 기억으로는 분도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을 거요. 거기서 오토는 종교경험의 본질을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했소. 두려움이면 두려움이지 도대체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게 무슨 말이오. 내 둘째딸 이야기를 한 가지 하겠소. 그 아이가 첫돌인지, 두 살 때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만한 나이 때 이야기요.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소. 그 아이가 그 촛불을 바라보는 표정이 아직도 내 머리에서 잊히지 않소. 신기...

2월23일 씨 뿌리는 농부(3) [2]

  • 2007-02-23
  • 조회 수 2307

2007년 2월23일 씨 뿌리는 농부(3)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7) 농부는 씨가 어떻게 나서 어떻게 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씨가 썩고 싹이 나고 자라는 현상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2천 년 전의 농부야 무식하니까 그렇다 치고 오늘의 물리학자들은 그걸 알 수 있을까요? 씨와 싹과 열매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조금 더 많이 알고 있겠지만 오늘의 과학자들도 그 비밀을 풀지 못했습니다. 2천 년...

설교 후기

  • 2013-08-18
  • 조회 수 2306

8월18일(일) 설교 후기 오늘 설교 제목은 좀 자극적으로 들린다. “하나님의 절망” 절망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하나님께는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을 창조했으며 지금도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님께 절망이라는 단어를 붙인다는 건 자체적으로 모순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이사야는 왜 그렇게 말한 것일까? 이사야는 뭔가를 오해한 것은 아닐까? 이사야가 전하고 싶은 근본은 ...

성서문자주의(2)

  • 2011-11-08
  • 조회 수 2306

둘째는 성서의 형해화(形骸化)요. 자꾸 한자를 써서 미안하오만 압축적으로 표현하려다보니 그렇게 되었소. 형해화라는 말은 내용 없이 뼈만 앙상하다는 뜻이오. 성서의 내용이 단순한 교리문답에 떨어졌소. 구약만 일단 본다면, 그 안에 녹아있는 유대인들의 역사경험이 드러나지 않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말만 할 뿐이지 그런 설화가 형성하게 된 신학적이고 인문학적 배경은 말하지 못하오. 전문적인 신학이 바탕 되어야만 한다는 말이 아니오. 성서 안에 녹아있는 삶과 역사를 폐기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오. ...

대림절에 대해서(5)

  • 2010-12-23
  • 조회 수 2306

그대는 대림절 신앙에 대해서 신학적인 해명보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설명을 듣고 싶을 거요.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말이오. 그 예수님은 2천 년 전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나고, 서른쯤에 출가한 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한 유대인 남자를 가리키오. 그가 다시 세상에 오신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겠소? 어떤 모습이라는 그런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시오. 종말에 그런 역사적 예수를 우리가 만날 수는 없소. 그 예수는 죽었소. 대신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부활과 승천...

5월23일 거짓 선지자 [2]

  • 2009-05-22
  • 조회 수 2306

2009년 5월23일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13:22) 앞 구절에서 언급된 자칭 그리스도는 위 구절이 말하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도 거짓이 있고, 선지자도 거짓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거짓과 참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문제는 일단 접어놓고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거짓 선지자가 무엇인지를 생각합시다. 거짓 선지자는 참 선지자와 대립됩니다. 그들의 정체성...

여행(41)- 베를린 한인식당에서 file [2]

  • 2016-10-18
  • 조회 수 2305

10월17일(월)- 베를린 한인식당에서 오늘 아침에 집사람과 제가 동시에 눈을 떴습니다. 보통 때는 제가 먼저 일어납니다.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온 탓에 집사람이 숙면했기 때문인지, 또는 거꾸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와서 일찍 잠이 깬 건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묵은 숙소 중에서 이번에 얻은 숙소가 가장 조용합니다. 마을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어서 한쪽을 제외하고는 주변이 온통 숲과 밭입니다. 지역 자체가 한적한 곳입니다. 지역의 역사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느낌만으로 보면 뿌리가 있는 지역으로 보입니다. ...

옥중서간(3)- 1939년의 일 [1]

  • 2010-05-06
  • 조회 수 2305

자네는 내가 1939년에 미국에서 독일로 돌아오고, 그것으로 인해서 벌어진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후회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거야. 그때의 귀국은 아주 분명히 최선의 양심에 의해서 행해진 거다. 나는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은, 개인적이든 일반적이든 상관없이 내 생애에서 지우려고 하지 않아. 지금 내가 감옥에 있는 것도 내가 결단해서 독일의 운명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과거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가책 없이 현재의 일을 받아들이지. 다만 나는 인간적으로 혼란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6월10일 선지자의 고향

  • 2007-06-10
  • 조회 수 2305

2007년 6월10일 선지자의 고향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막 6:4) 선지자와 고향 운운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마 유대인들의 속담인 것 같습니다. 그런 속담을 빗대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신 거겠지요. 복음서가 보도하는 예수님의 진술 중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도 있고, 사도들에 의해서 추가된 것도 있고, 혹은 성서기자의 가필도 있으며,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구약이나 속담에서 인용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일...

2월3일 예루살렘 성전에서(2) [2]

  • 2009-02-02
  • 조회 수 2304

2009년 2월3일 예루살렘 성전에서(2)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11:15)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돈벌이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매매하는 자들, 돈 바꾸는 자들, 비둘기 파는 자들이 그들입니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 성전 시장이 아주 크게 열렸다고 합니다. 중요한 절기에는 이방인의 마당에서 열렸는데 가로 475m, 세로 300m의 넓이였습니다. 거기에다가 다른 마...

8월21일- 놀라움 (3)

  • 2006-08-21
  • 조회 수 2304

2006년 8월21일 놀라움 (3)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오늘 본문에서 중풍병자가 침대를 들고 나가는 걸 보고 청중들이 놀란 이유는 그들이 그런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일상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일을 실제로 경험한 그들은 놀랐습니다. 놀람의 실체는 바로 이것입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근거가 흔들리...

하나님 나라(4) [6]

  • 2010-02-21
  • 조회 수 2302

하나님 나라(4)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를 미래에 속하는 현실성(reality)이라고 선포했다. 이것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대망의 한 전통적 관점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주장은 기본적으로 오고 있는 그의 통치에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이해가 새로운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의 통치와 그의 존재는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는 아직 존재의 과정에 놓여 있다.(75) 그대에게 꺼림칙하게 들리는 구절이 위 ...

바르트 신학 이야기(6) [5]

  • 2011-01-22
  • 조회 수 2301

여기서 의미하는 인간적인 사고와 언어는 저 말씀에 대한 대답으로서 무엇보다도 말씀의 창조행위에 의해서 촉발되며, 실존하고, 현실적이 된다. 이 말씀의 선행이 없이는 본래의 신학, 곧 복음주의 신학이 있을 없다. 물론 신학이 저 말씀을 실제로 해석하고 해명하며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다. 신학은 저 말씀의 증인들의 말들을 해석하고, 해명하며, 이해시킨다. 말씀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해석조차 하는 것이 아니다. 저 말씀은 모든 해석에 선행하여 말씀되었고, 수용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선포되었다. 신학이란 위의 사실을 전제...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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