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1)

조회 수 2717 추천 수 0 2019.09.03 20:11:03

베드로전서 강해

 

11-2 <디아스포라 나그네>

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전서(이하 벧전)1세기 후반 10년 어간에 기록되었다. 요한복음의 시기와 비슷하다. 베드로는 이미 64년에 로마에서 순교 당했기에 벧전은 베드로의 저술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벧전 1:1절은 저자를 사도 베드로라고 한다. 베드로가 생존 시 작성했던 문서가 훗날 교회에 회람되었을 수도 있고, 베드로의 신앙을 잘 알고 있던 제자가 베드로의 이름으로 저술했을 수도 있다. 벧전 5:12절이 이런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준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로 굳게 서라.” 실루아노는 바울의 제자였던 실라를 가리킨다. 이 구절에 따르면 베드로가 벧전을 직접 쓰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구술하고 실라가 받아썼을 수는 있다. 바울은 빌빕보 감옥에 실라와 함께 갇힌 적이 있다(25). 벧전에 바울 신학이 적지 않게 나온다는 사실에서 벧전의 저자는 베드로와 바울을 함께 잘 아는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누가 벧전을 실제로 썼는지는 모른다. 어떤 경우이든지 우리는 벧전을 통해서 1세기 후반의 교회 형편과 구성원들의 신앙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벧전 1:1-2는 인사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서신은 이런 인사말로 시작한다.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부른다. 사도는 일반적으로 예수가 제자로 부르는 열두 명을 가리킨다. 명단은 마태복음 10:2-5에 나온다. 베드로부터 시작해서 가룟 유다에 이른다. 이런 명단이 마태복음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게 예상외다. 병행구인 막 6:6:7-13과 눅 9:1-6에는 열두 제자를 예수가 부른 일과 사명을 맡긴 일만 나온다. 부활 목격자 명단을 다루는 고전 15:5 이하에는 게바와 열두 제자가 분리되어 나온다. 부활의 예수가 게바에게 먼저 나타나신 후에 다시 게바를 포함한 열두 제자에게 나타났다는 것인지 게바와 열두 제자가 원래 다르다는 뜻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앞의 의견이 옳을 것이다. 고전 15:7에는 모든 사도가 거명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도는 열두 제자와는 다른 집단으로 보인다. 그들이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열두 제자 못지않게 초기 기독교에서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들로 추정된다. 당시 사도라는 호칭이 열두 제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사도 문제에서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은 바울이다. 고전 9: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사실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대목이 자신의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모른다. 바울은 예수 생전에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더구나 자인하듯이 그는 초기 기독교를 박해했다. 당시 기독교 주류라 할 수 있는 유대 기독교가 유대교에 대해서 취한 입장과 이방 기독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바울이 취한 입장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예루살렘을 본거지로 하는 유대 기독교는 유대교의 종교 관습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이방 기독교는 포기했다. 바울은 유대교와의 관계는 끊었지만, 유대 기독교와의 관계는 끊을 수 없었다.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않으면 복음 사역이 힘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와의 화해를 여러 번 시도했으나 결국에는 실패했다. 사도행전 21:17절 이하에 따르면 바울은 야고보를 방문하여 야고보의 조언대로 성전에 들어가 결례를 수행했으나 유대인들에게 트집이 잡혀서 결국 로마 권력에 의해서 체포당한다. 그 뒤로 우여곡절 끝에 로마로 호송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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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2019.09.03 22:40:17

혹, 베드로전서 강해를 '매일묵상' 편으로 분류하신 것이 맞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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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09.04 21:41:58

예, 좀 이상하지요? 근데 분류는 맞습니다. 일단 이렇게 매일 묵상에 올리고

나중에 정리가 끝나면 '성서마당'으로 옮길까 생각 중입니다.

제가 한달 반 후에 베드로전서로 강의해야하기에

미리 준비할 겸 매일묵상으로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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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6: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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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61 16:4 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둘째 천사에 의해서 바다의 모든 생명체가 죽자, 이제 셋째 천사는 강과 물의 근원에 대접을 쏟았습니다. 바다와 마찬가지도 강과 물의 근원도 피로 변했습니다. 물의 근원은 강물의 시발점을 가리키겠지요. 바닷물과 담수 모두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절박한 상황은 없겠지요.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나, 숨을 쉬는 공기가 너무 흔하고, 마실 물이 너무 흔해서 우리는 그 소중함을 놓치곤 합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계 16:3 [5]

  •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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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60 16: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둘째 천사의 대접이 바다에 쏟아지자 바닷물이 피같이 되어서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애굽의 바로에게 내린 재앙 중에서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출 7:21) 성서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나일강이 종종 홍수범람으로 핏물...

계 16:2 [1]

  • 2023-10-25
  • 조회 수 42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9 16: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을 숭배한 자들은 로마 체제에 순응한, 더 정확히 말하면 굴복한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가 발행하는 매매 허가증을 받았고, 로마 황제 형상 앞에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런 일들이 당시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민등록증을 받고 국기 앞에서 예를 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국방의 의...

계 16:1 [1]

  • 2023-10-24
  • 조회 수 33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8 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이제 진노의 일곱 대접이 쏟아질 순간이 왔습니다. 일곱 대접 이야기는 일곱 천사의 일곱 나팔(8:6-11:9) 이야기와 연계됩니다. 일곱 나팔 이야기에서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졌다고 합니다. 땅 삼 분의 일이 불타고 삼림도 삼 분의 일이 불탔습니다. 이렇게 일곱째 천사의 나팔소리까지 이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그에 앞서 5:...

계 15:8 [2]

  • 2023-10-23
  • 조회 수 46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7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이제 마지막 재앙이 펼쳐질 순간이 되었습니다. 하늘 성전에 연기가 가득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본성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재앙의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일까요? 참상은 곧 하나님의 부재나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뜻일까요? 우리 인생살이에서도 종종 막막한 안개의 시간이 찾아온다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뜻일까요? 큰 수...

계 15:7 [1]

  • 2023-10-20
  • 조회 수 35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6 15: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이 대목에서 ‘네 생물’이 다시 등장하는군요. 이 생물(living creature)은 계 4:6절 이하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수호자를 의미하겠지요. 첫째 생물은 사자 모양이고, 둘째는 송아지 같고, 셋째는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는 독수리 같다고 합니다.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감시하는) 눈이 가득합니다. 밤낮 쉬지...

계 15: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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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5 15: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재앙과 천사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여기 등장하는 천사의 모습이 화려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재앙을 내리려면 어딘가 험상궂게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설적인 묘사입니다. 일곱 천사는 ‘세마포’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어떤 사본에, 보석’이라는 각주가 달렸습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옷을 입었다는 뜻이겠지요. 성경 원본은 없습니다. 구약도 없고 신약...

계 15:5 [1]

  • 2023-10-18
  • 조회 수 34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4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요한은 신비한 광경을 다시 봅니다. 하늘에서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광경입니다. KJV이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e temple of 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 in heaven was opened.” 이미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여기 15:5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

계 15:4 [2]

  • 2023-10-17
  • 조회 수 41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3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로마 황제숭배를 거절한 (순교 당한) 무리가 부르는 찬양이 4절에도 이어집니다. 여기서 저는 두 문장만 짚겠습니다. 하나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다.’라는 문장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여러 번 나온 문장입니다. 구약성경에도 종종 나옵니다. 하나님 경험은 곧 거룩함에 대한 경험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세...

계 15:3 [1]

  • 2023-10-16
  • 조회 수 383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2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3절에서 명시적으로 ‘모세의 노래’가 언급됩니다. 짐승에게 엎드리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노래가 곧 홍해를 건넌 뒤에 부르는 모세의 노래와 같습니다. 홍해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노래’라고 다시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뒤에서는 애굽 기마병이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

계 15:2 [1]

  • 2023-10-13
  • 조회 수 41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51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홍해를 암시, 또는 상징합니다. 모세를 중심으로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애굽의 막강한 기마병들이 쫓아오는 가운데 남녀노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넌다는 건 ‘미션 임파시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셨다고 그들은 믿었고, 그렇게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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