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285)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막상 그 일이 일어나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들이 따르던 선생이 십자가 처형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제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그것 자체로 비참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운명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십자가 처형이 예수에게서 현실이 되었을 때 제자들은 혼비백산 흩어지고 말았다. 예수 부활 후에 관한 복음서의 보도만 본다면 예수 부활을 제자들이 즉시 경험한 것처럼 보이긴 한다. 최소한 부활 신앙에 이르지는 못했어도 안식일 다음 날 빈 무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후기 형식으로 요한복음에 들어온 요 21장에 따르면 상황이 다르게 전개된다. 베드로는 십자가 처형 뒤의 그 황망한 순간에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라고 동료들에게 말한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원래의 직업인 어부로 살겠다는 뜻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베드로는 실제로 디베랴 호수(갈릴리 호수)에서 이전처럼 고기를 잡다가 부활의 예수를 다시 만난다. 그때까지도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부활을 알지 못했다는 증거다. 세월이 흐른 뒤에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예수의 공생애에서 접한 예수의 발언과 행위가 무슨 뜻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처럼 신비롭게, 비밀스럽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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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3일- 버림과 따름 (1) [2]

  • 2006-05-23
  • 조회 수 4284

2006년 5월23일 버림과 따름 (1)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을 들은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시몬 형제의 그물을 왜 언급했을까요? 사실 어떤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에 그물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 마가의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그것의 명확한 실체를 잡아내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겠지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

5월23일- 버림과 따름 (1) [2]

  • 2006-05-23
  • 조회 수 2049

2006년 5월23일 버림과 따름 (1)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을 들은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시몬 형제의 그물을 왜 언급했을까요? 사실 어떤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긴박한 순간에 그물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 마가의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그것의 명확한 실체를 잡아내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겠지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

5월24일 - 버림과 따름 (2) [1]

  • 2006-05-24
  • 조회 수 3392

2006년 5월24일 버림과 따름 (2)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막 1:18절 말씀에서 “따름”이 핵심이긴 하지만 “버림”과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어제 스쳐지나가듯이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서 자기 영혼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이외의 것을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본문의 묘사를 그대로 따른다면,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물은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도구였습니다. 매일 그물을 챙겨 들고 배를 타고 고기...

5월24일 - 버림과 따름 (2) [1]

  • 2006-05-24
  • 조회 수 1854

2006년 5월24일 버림과 따름 (2)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막 1:18절 말씀에서 “따름”이 핵심이긴 하지만 “버림”과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어제 스쳐지나가듯이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서 자기 영혼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이외의 것을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본문의 묘사를 그대로 따른다면,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물은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도구였습니다. 매일 그물을 챙겨 들고 배를 타고 고기...

5월25일- 버림과 따름 (3) [4]

  • 2006-05-25
  • 조회 수 5675

2006년 5월25일 버림과 따름 (3)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우리의 현실적인 신앙에서 “버림”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니까, 이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유와 같은 복음찬송에서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크게 버린 것처럼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렸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딱히 내세울게 없을 겁니다. 물론 여기에도 개인 차이가 큽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을 것...

5월25일- 버림과 따름 (3) [3]

  • 2006-05-25
  • 조회 수 1728

2006년 5월25일 버림과 따름 (3)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우리의 현실적인 신앙에서 “버림”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니까, 이 문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유와 같은 복음찬송에서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크게 버린 것처럼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버렸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딱히 내세울게 없을 겁니다. 물론 여기에도 개인 차이가 큽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을 것...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2]

  • 2006-05-26
  • 조회 수 6199

2006년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 1:19)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도의 대표를 베드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명의 수제자에는 베드로를 포함해서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산위에서 신비한 모습으로 변화하던 그 순간에 함께 했으며, 공생애 마지막에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실 때도 함께 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가 먼저 부름을 받았고, 그 뒤로 야고보와 요한...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2]

  • 2006-05-26
  • 조회 수 1952

2006년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 1:19)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도의 대표를 베드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명의 수제자에는 베드로를 포함해서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산위에서 신비한 모습으로 변화하던 그 순간에 함께 했으며, 공생애 마지막에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실 때도 함께 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가 먼저 부름을 받았고, 그 뒤로 야고보와 요한...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1]

  • 2006-05-27
  • 조회 수 3940

2006년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본문의 상황 설명을 근거로 추정해본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경제적으로 꽤 괜찮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 품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물론 이 본문만으로 아버지가 선주이고 그 밑에 여러 명의 품꾼을 쓸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가복음 기자가 시몬 형제의 소명 장면에서는 단순히 그물을 버렸다고만 묘사한 것에 비해서 여...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 2006-05-27
  • 조회 수 2520

2006년 5월27일 영성과 소유 (1)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본문의 상황 설명을 근거로 추정해본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경제적으로 꽤 괜찮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 품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물론 이 본문만으로 아버지가 선주이고 그 밑에 여러 명의 품꾼을 쓸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마가복음 기자가 시몬 형제의 소명 장면에서는 단순히 그물을 버렸다고만 묘사한 것에 비해서 여...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 2006-05-28
  • 조회 수 4058

2006년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그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하던 거상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외아들인지, 큰 아들인지, 또는 여러 아들 중의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후계자였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2세였던 셈이지요. 프란시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합니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를 창설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준비하지 않은 채 오직 구걸의 방식으로 살아가...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 2006-05-28
  • 조회 수 1677

2006년 5월28일 영성과 소유 (2)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막 1:20)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그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하던 거상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외아들인지, 큰 아들인지, 또는 여러 아들 중의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후계자였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2세였던 셈이지요. 프란시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합니다. 그리고 탁발수도회를 창설합니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준비하지 않은 채 오직 구걸의 방식으로 살아가...

5월29일- 안식 (1)

  • 2006-05-29
  • 조회 수 3529

2006년 5월29일 안식 (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뜻일까요?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진술과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좀 곤란합니다. 안식일 논쟁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안식일을 율법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식일을 민중들에게 억압적으로 적용하지 ...

5월29일- 안식 (1)

  • 2006-05-29
  • 조회 수 1740

2006년 5월29일 안식 (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아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뜻일까요?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진술과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면 좀 곤란합니다. 안식일 논쟁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안식일을 율법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식일을 민중들에게 억압적으로 적용하지 ...

5월30일- 안식 (2) [3]

  • 2006-05-30
  • 조회 수 4264

2006년 5월30일 안식 (2)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저는 어제의 묵상 말미에서 우리가 참된 안식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약간 모순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안식을 얻으려는 것인데, 그걸 두려워한다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거니까요. 형식으로는 그 말이 옳습니다만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 자신을 속일 정도로 은밀하게 이런 두려움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호흡을 가다듬고 천...

5월30일- 안식 (2) [3]

  • 2006-05-30
  • 조회 수 1771

2006년 5월30일 안식 (2)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저는 어제의 묵상 말미에서 우리가 참된 안식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약간 모순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안식을 얻으려는 것인데, 그걸 두려워한다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거니까요. 형식으로는 그 말이 옳습니다만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 자신을 속일 정도로 은밀하게 이런 두려움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호흡을 가다듬고 천...

5월31일- 가르침 [1]

  • 2006-05-31
  • 조회 수 3343

2006년 5월31일 가르침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다는 말은 그가 랍비(선생) 역할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예수님은 문맹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던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수준을 생각한다면 이런 주장의 개연성은 높습니다. 더구나 복음서도 예수님이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가 전달하고 있는 예수님의 ...

5월31일- 가르침 [1]

  • 2006-05-31
  • 조회 수 1592

2006년 5월31일 가르침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다는 말은 그가 랍비(선생) 역할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예수님은 문맹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던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수준을 생각한다면 이런 주장의 개연성은 높습니다. 더구나 복음서도 예수님이 무슨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가 전달하고 있는 예수님의 ...

6월1일- 놀라운 가르침 [1]

  • 2006-06-01
  • 조회 수 3664

2006년 6월1일 놀라운 가르침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 1:22) 예수님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무식한 목수의 아들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종교의 본질을 가르쳤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놀랐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놀랐을까요? 마가는 그것에 대해서 별로 상세한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놀랐다’는 말만 전합니다. 아마 앞으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마가복음서의 방향을 여기서 암시하는 ...

6월1일- 놀라운 가르침

  • 2006-06-01
  • 조회 수 1646

2006년 6월1일 놀라운 가르침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 1:22) 예수님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무식한 목수의 아들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종교의 본질을 가르쳤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놀랐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놀랐을까요? 마가는 그것에 대해서 별로 상세한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놀랐다’는 말만 전합니다. 아마 앞으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마가복음서의 방향을 여기서 암시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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