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6일- 회개와 복음 (3)

조회 수 4544 추천 수 43 2006.05.16 23:23:47
2006년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 본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회개는 복음을 믿는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혹은 회개가 복음의 선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바꾼다는 의미의 회개 경험이 없다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노파심이 들어, 이 대목에서 아무래도 한 번 더 짚어야겠군요. 사람들은 회개를 지나간 일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 주인 허락을 얻지 않고 남의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서 과일 따먹은 것을 놓고 눈물 흘리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닌 후에, 술 마시고 담배 피운 것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건 회개가 아닙니다. 이런 건 단지 교양 문제에 불과합니다. 회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완성하실 하나님을 향해서 영혼의 관심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좀 추상적으로 들리시나요? 화끈하게 당신 죄인이야, 회개해! 뭐, 이런 식으로 나가야 마음에 와 닿나요? 서울의 아무개 목사는 ‘라이즈 업 코리아’라는 청소년을 위한 대형집회에서 회개를 그런 식으로 외치더군요. 한창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포르노 보는 건 죄라고 협박하더군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에요.
회개는 자기성취, 자기만족, 자기업적으로부터 생명의 신비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성이 회개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것은 회개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도덕성은 늘 순간마다 새롭게 결단해야 할 문제이지 어떤 도덕적 경지를 이루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교양이 있다는 걸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큰 착각입니다. 미국은 교양이 있지만 이라크를 침략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네요. 자기들에게는 수천기의 원자폭탄이 있으면서 북한을 향해서는 서슬이 퍼렇군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도덕, 교양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곧 회개의 증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생명의 신비인 하나님에게 마음을 돌린 사람은 시나브로 깨끗한 삶의 열매가 드러나겠지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냥 복음을 믿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복음은 단지 종교의 한 형식으로 나타나거나, 종교적 욕망의 확대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때로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때로는 종교적 도피로, 때로는 심리적인 자기 확신으로 작용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이 순전히 자신의 종교적 욕망에 사로잡혀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우리의 신앙을 너무 비판적으로만 말하고 있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큰 틀에서는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교회의 모임과 세계선교에는 열정적이지만 하나님의 통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제 진단이 옳은가요? 이런 현상은 설교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목회에 성실하고 말씀도 잘 전하시는 인격적인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하나님이 선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청중들입니다.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쳐서 복 받는 삶을 살고, 또한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와 목회가 왜 하나님의 통치와 상관이 없는지 제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모든 신앙적인 업무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계시에 관심을 쏟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이것 없는 믿음은 우상숭배로 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주님, 우리가 회개한 사람들인지 궁금합니다.

[레벨:8]김인범

2006.05.17 14:00:12

아멘입니다.
우상숭배적 신앙양성을 띤 오늘의 기독교.
거기서 자신있게 난 아니라고 큰 소리 칠 수 없음도 안타깝습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의미할찐대
목회마져도 세상의 평가기준으로 맞춰가니.....

그나마 여기와서 숨을 쉽니다.
감사합니다.

[레벨:18]은나라

2016.07.19 13:48:03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복음보다 회개가 먼저이지 않은 우리의 문제점을 잘 설명해 주셨네요..

우리의 믿음이 우상숭배로 떨어진 이유가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것임을..

하니님의 통치하심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그 의미도..

막연하게 아는것이 아닌 하나님의 통치하심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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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017)- 요 2:4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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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간(10)- 비종교화(6) [3]

  • 201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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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53) 요 16:1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2020-06-16
  • 조회 수 4588

예수 어록(353) 요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제 새로운 장이 시작한다. 14장부터 17장까지 이어지는, 소위 ‘고별 연설’의 후반부가 시작된 것이다. ‘실족’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실제 육체 활동에서도 발을 헛디딜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조심해도 이런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실족해도 발목이나 무릎 관절을 다치지 않으려면 평소 하체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근육을 키우려면 걷기나 뛰기, 또는 자전거 타기와 같은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근육 키우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5월6일 하나님의 나라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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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4582

2006년 5월6일 하나님의 나라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문장에서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부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존재하고 그의 나라가, 즉 그의 통치가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일치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로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죠. 앞에서 나라는 곧 통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결...

6월8일 예수의 형제들

  • 2007-06-08
  • 조회 수 4581

2007년 6월8일 예수의 형제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 본문이 나열하고 있는 예수의 가족에서 아버지 요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 이상합니다. 그가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대목만이 아니라 복음서는 전반적으로 요셉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설화에 잠간 등장하고 맙니다. 복음서 이외의 다른 신약성서는 요셉에 관해서 더 철저하...

믿음과 우상숭배 [2]

  • 2013-09-21
  • 조회 수 4579

9월21일(토) 내일 설교는 9월 첫 주일에 이어서 예레미야서가 본문이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의 운명 앞에서 그는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다. 목전에 처한 조국의 패망 원인이 우상숭배라는 그의 주장은 과연 옳은가? 이 문제를 풀어가려면 선지자들의 독특한 영적 통찰력이 무엇인지, 우상숭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낱말풀이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죽음과 인간 문명과 그것의 속성들이 다 연루되어 있다. 설교 시간에 이런 문제들을 시시콜콜 해명할 수는 없다...

2월15일 등경 위의 등불 [6]

  • 2007-02-15
  • 조회 수 4554

2007년 2월15일 등경 위의 등불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막 4:21)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21-25절에 나오는 두 개의 말씀은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편집자가 이곳에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1-20절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고, 26-3절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등불과 헤아림이라는 말씀이 들어갔습니다. 신학비평 문제는 우리의 묵상에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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