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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죽음(5)

  • 2010-11-16
  • 조회 수 2235

성서는 하나님이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세우신다고 말하오. 죽음이 없는 영생의 세계요. 성서가 말하는 영생이 도대체 무엇이오?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하게 산다는 말에 실감이 가오? 어제 묵상에서 영생은 곧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소. 죽음을 전제할 때가 삶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오. 의미는 무슨 의미, 그냥 오래, 아니 영원히 살았으면 무조건 좋겠다고 생각하시오? 오래 전에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소. 어떤 사람이 신으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았소. 세월이 흘러 자...

죽음(3) [3]

  • 2010-11-13
  • 조회 수 2235

나는 1953년 1월4일 생이오. 그대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나에게도 스무 살 시절이 있었소. 아, 스무 살의 청년 시절이라! 더 어린 시절도 있었소. 부분적으로 기억이 나오. 나의 사춘기와 청년 시절이라고 해봐야 거의 교회에서 보냈기에 뭐 특별한 것은 없소. 그래도 기분은 다른 청년들과 다를 게 없었소. 여자 청년들에 대한 호기심도 똑같이 많았소. 헷세, 루이제린저, 전혜린, 릴케, 도스토예프스키, 에릭 프롬 등의 책을 밤새워 읽던 시절이오. 그 시절이 꿈결처럼 지나갔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옛 추억의 그림자를 (아주) 간...

8월31일 기도의 능력(9) [4]

  • 2008-08-30
  • 조회 수 2235

2008년 8월31일 기도의 능력(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판넨베르크가 서른두 살의 젊은 신학대학 교수로 활동하던 1960년 5월9일에 부퍼탈 신학교 아침 기도회에서 ‘기도’(시 143:1-12)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 발췌했습니다. 첫째, 우리가 오늘 이 시편 말씀에서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 점은 우리가 어떤 토대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

5월6일 하나님의 나라 (3) [4]

  • 2006-05-06
  • 조회 수 2235

2006년 5월6일 하나님의 나라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문장에서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부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따로 존재하고 그의 나라가, 즉 그의 통치가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일치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로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죠. 앞에서 나라는 곧 통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결...

원당일기(1) [4]

  • 2011-04-06
  • 조회 수 2234

두 딸이 집을 떠나면 들어가 살 작정으로 작년에 시골집을 하나 마련했소. 경북 영천시 북안면 원당리 113-2번지요. 시골이라서 땅값은 얼마 하지 않소. 판넬 조립식으로 16평의 집을 지었소. 아직은 가서 살지 못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글을 쓰거나 마당 손질을 하고 있소. 원래 집이 있던 터라고 하는데, 우리가 땅을 구입할 때는 아무 흔적도 없었고, 이웃집의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었소. 동향 언덕배기에 자리한 땅이오. 바로 앞과 왼편에 집이 한 채 씩 있고, 오른 편은 숲이고, 뒤편은 산이오. 숲과 산이 마음에 들어서 ...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1]

  • 2006-05-16
  • 조회 수 2233

2006년 5월16일 회개와 복음 (3)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오늘 본문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회개는 복음을 믿는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혹은 회개가 복음의 선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바꾼다는 의미의 회개 경험이 없다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은 노파심이 들어, ...

3월6일 작은 세계 (4)

  • 2007-03-06
  • 조회 수 2233

2007년 3월6일 작은 세계 (4)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큰 사람이 되라.” 하는 덕담을 자주 합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 있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교회 교육도 역시 성공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기독교인이 사회의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것이 선교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설교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젊은 조안 바에즈 [14]

  • 2016-11-10
  • 조회 수 2232

11월10일, 목 젊은 조안 바에즈 요즘 대중음악이 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튜브에 들어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처음 유튜브를 알게 된 건 구 아무개 집사 덕분이다. 그 이전부터 유튜브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 관심 밖이었다가 구 아무개 집사가 다비아에 유튜브 음악을 올리면서 유튜브 메커니즘을 알려주는 바람에 접속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에게 그것의 순 기능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유튜브를 통해...

7월3일 예수를 팔 자(3) [5]

  • 2009-07-02
  • 조회 수 2232

2009년 7월3일 예수를 팔 자(3)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줄 둥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14:20) “나는 아니지요?” 하는 제자들의 근심어린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이런 문장은 고대 유대인들의 식사 습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헬라어 ‘트뤼블리온’은 접시, 쟁반, 그릇, 수프접시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전식입니다. 이 접시에 과일 잼이나 소금물이 담기는데, 사람들은 빵을 거기에 찍어서 먹...

여행(35)- 영화 찍기 file [6]

  • 2016-10-12
  • 조회 수 2231

10월11일 늦은 저녁을 숙소에서 먹고 잠시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다가 방금 들어왔습니다. 한창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집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해도 ‘이렇게 춥고 늦은 밤에 나가는 거 싫어. 당신 혼자 갔다 와.’ 할 테니까요.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이 바덴바덴 시에서 제법 떨어진 곳으로 처음에는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더군요.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습니다. 언덕 정상인 셈이지요. 그 위로는 집이 없고, 야산이 이어집니다. 그 너머로 더 가면 공동묘지가 나옵니다. 구름 사이로 달빛이 ...

죽음 이후, 5월2일, 수 [2]

  • 2012-05-02
  • 조회 수 2231

주님,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젊으나 늙으나 아무 차이도 없이 우리는 모두 결국은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죽음 이후에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육체가 원소로 해체된다는 명백한 사실뿐입니다. 영혼의 운명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지, 어느 쪽이 다른 쪽에 속했는지, 신비한 방식으로 하나인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우리의 몸은 없어지지만 영혼만은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말이 옳은지, 몸과 영혼이 동시에 죽고 종말에 부활한...

12월29일 그가 살아나셨다(12) [2]

  • 2009-12-28
  • 조회 수 2231

2009년 12월29일 그가 살아나셨다(12)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복음서에는 부활을 연상시키는 사건이 간혹 나옵니다. 두 군데만 확인하겠습니다. 첫째, 요한복음 기자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사로가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님이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자 죽은 시체가 수의를 그대로 걸...

2월28일 키리에 엘레이송!

  • 2008-02-27
  • 조회 수 2231

2008년 2월28일 키리에 엘레이송!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는 지 이미 사흘이 자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막 8:2) 예수님은 먹을 것이 없는 무리를 불쌍하게 여기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중 급식이라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단초입니다. 불쌍하게 여기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 속성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오늘 성서기자의 보도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마가복음의 진술처럼(막 2:5) 예수님의 구원 행위에서 사람들의 ...

교회의 공공성(7), 1월15일(화)

  • 2013-01-16
  • 조회 수 2230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앞의 글을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공공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회 내부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외부의 문제다. 교회는 내부적으로 하나다. 개교회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구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게 한국교회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형식적으로 노회나 총회가 있긴 하지만 교회 일치 정신은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다. 교회의 정치적인 성격만 확대된다. 총회장이나 총무 같은 교권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개...

11월6일 생명과 법 (3)

  • 2006-11-06
  • 조회 수 2229

2006년 11월6일 생명과 법 (3)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5)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들은 앞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종의 법실증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안식일 법을 문자적으로 수호하는 것에만 모든 것의 무게를 놓는 신앙적 태도가 바로 완악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10월5일 안식일 (1)

  • 2006-10-05
  • 조회 수 2229

2006년 10월5일 안식일 (1)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 2:2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한 사소한 행동을 문제 삼아 이렇게 트집을 잡았습니다. 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가?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먹는 행위는 구약성서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동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밀 이삭을 자른 제자들의 행위가 안식일 법이 금지한 노동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것...

주기도(22)

  • 2010-08-10
  • 조회 수 2228

-당신의 나라(2)- 아래는 특강 발제문의 두 번째 인용이오. 예수 사건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오. 이런 설명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지, 혹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오? 그 대답은 이 자리에서 하지 않겠소. 언젠가는 저저로 알게 될 것이라 믿소. 예수님의 축귀와 치유 사건도 하나님 나라와 직결된다. 축귀와 치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인 해방과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을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과학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원당일기(4) [3]

  • 2011-04-30
  • 조회 수 2227

오늘 오후에 하양 동네에서 가까운 화원에 들렸소. 집사람이 원당 농가에 심을 영산홍 묘목이 더 필요하다는 거요. 원당 농가는 얼마 전 묘목과 꽃을 심은 지금도 어설프기는 매한가지요. 특히 평토하느라 언덕을 절개했는데, 그 부분이 마치 3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처참하기 짝이 없소. 그 부분을 조금이라고 가리려고 영산홍을 심어야겠다는 거요. 그래봤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소. 집 옆에 지천으로 널린 대나무를 옮겨 심는 게 훨씬 낫소. 사실 나는 영산홍보다는 다른 걸 마음에 두고 화원에 들어갔소. 모과나무요. 묘목도 있지만 ...

바벨론에서의 고통스런 기억

  • 2011-06-22
  • 조회 수 2226

아래는 수요성경공부 강의 초안이오. 결론 부분이 어렵소. 원수 증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요. 시편기자는 직접 원수를 갚기 위해서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탄원을 드렸다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하오. 자기가 직접 원수를 갚지 않는 이런 신앙 태도로 원수 갚기의 악순환이 끊어지는 게 아닌가 싶소. 하여튼 이 문제는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하오.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6월22일, 저녁 8시, 시편 137편 바벨론에서의 고통스런 기억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기원전...

5월28일 달리다굼

  • 2007-05-28
  • 조회 수 2226

2007년 5월28일 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비웃는 사람들을 내보시고 아이의 부모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를 번역하면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을 오늘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저의 입장에서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펄쩍 뛰었을 겁니다. 죽어 누워있는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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