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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주기도(5) [1]

  • 2010-07-24
  • 조회 수 2215

우리말 주기도는 이렇게 시작하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헬라어나 영어, 독일어의 어순을 따르면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이라오. 주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요. 일반적으로 기도는 혼자 드리오. 예수님도 혼자서 미명 시간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를 드리곤 하셨소. 잡히시기 전날 밤에도 감란 산에서 혼자 기도하셨소. 아무도 하나님 앞에 우르르 몰려 갈 수는 없소. 단독자로 서야 하오. 그러나 주기도는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라 특별한 기도요. 기도의 전범이며, 진수라 할 수 있소.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

6월27일 유월절 만찬 준비(2) [3]

  • 2009-06-26
  • 조회 수 2215

2009년 6월27일 유월절 만찬 준비(2)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14:13) 유월절 양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죽음의 운명이 빗겨간다는 보장은 단지 약속이었지 확실한 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 양의 피가 실패로 끝나면 민족 전체가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몰살당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생명의 축제입니다. 양의 피로 인해서 그들은 결...

4월11일 귀신들린 사람 (7) [9]

  • 2007-04-11
  • 조회 수 2215

2007년 4월11일 귀신들린 사람 (7)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막 5:5) 괴성을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해치는 이 사람에게서 우리는 현대인의 자학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그렇지만 특별히 자녀 교육에서 이런 현상은 극에 달합니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아무리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어떻게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구조화된 문제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학교와 학원과 개인과외 학습에 매달리고 있...

일상에 대해(3) -보기와 듣기- [2]

  • 2011-01-06
  • 조회 수 2214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보고 듣소.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은 예외요.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오. 우리 비장애인들은 보고 듣는 것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소. 보고 듣는 것이 제한적인지는 여기서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이오. 오히려 거꾸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때문에 더 근원적인 것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소. 우리의 시각과 청각은 철저하게 상대적인 감각 기능이오. 상대적이라 하더라도 보고 듣는 행위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주기도(30) [1]

  • 2010-08-18
  • 조회 수 2213

-당신의 뜻(3)-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오. 기도 무용론은 기독교 안에서 설 자리가 하나도 없소. 그걸 전제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기도가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것이오. 그런 공부 없는 기도는 결국 외식과 중언부언으로 빠질 수밖에 없소. 지금 한국교회의 예배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도를 지나치게 자유기도로 드린다는 것이오. 그것의 장점도 있소. 성령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오. 내가 보기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

주기도(13) [1]

  • 2010-07-31
  • 조회 수 2213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초월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가리키오. 초월(超越)은 인간의 인식이나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오. 하나님이 초월적인 존재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온 것이오. 철학도 그런 개념을 말하오. 플라톤의 이데아는 초월적인 세계이자 능력이오. 이런 초월개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소. 기분 나쁜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별로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소.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들을 실증적으로만 계량하고 판단하는 세상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

하나님 나라(14)

  • 2010-03-12
  • 조회 수 2213

이제 우리는 교회의 권능에 대하여 말할 단계에 이르렀다.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타당성, 그리고 예수의 메시지에 놓인 하나님 나라의 중심적 위치, 또한 예수의 생애에 관한 모든 기독론적 진술에 놓인 하나님 나라의 중심적 역할 등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현재의 정치적인 사회 형태들은 개인의 삶이나 공동의 삶에서 여전히 인간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만 교회의 존재가 정당화된다. 만일 현재의 사회구조가 잘된 것이라면 교회가 존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8월29일 기도의 능력(7) [8]

  • 2008-08-28
  • 조회 수 2213

2008년 8월29일 기도의 능력(7)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기도에 대한 앞서의 묵상에서 기도에 대한 생각이 더 혼란스러워진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간질병을 고친 기도의 능력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면 바로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던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이 완전히 몸에 각인된 분들에게는 저의 설명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3월22일 잠든 예수

  • 2007-03-22
  • 조회 수 2213

2007년 3월22일 잠든 예수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7) 갈릴리 호수를 항해하고 있는 배 안에서 예수님이 졸았다고 합니다. 왜 졸았을까요? 피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가장 적절한 대답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피고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긴장해 있으려고 해도 그게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제자들도 졸았습니다. 그 순간에 그 유명한 예수님의 경구가 나...

2월5일 메시아의 비밀 [6]

  • 2007-02-05
  • 조회 수 2212

2007년 2월5일 예수와 함께 한 사람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막 4:11) 비유에 대해서 질문한 사람들에게 이제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제자들과 몇몇 측근들에게는 알려주었지만 외인들, 즉 예수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왜 그래야만 하나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면 속 시원할 텐데 왜 밖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으시나요? 여기에는 마가복음의 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곧 ...

주기도(4)

  • 2010-07-23
  • 조회 수 2211

스텐리 하우어워스가 쓴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읽어주겠소. 이 기도에서처럼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참 하나님이 아닌> 어떤 신을 더듬어 찾는 것이며, 그런 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고, 그런 신을 ‘내가 필요한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님을 자기 형상대로 만들어 내려하고, 급기야 어떤 이들은 ‘...

하나님 나라(12) [1]

  • 2010-03-10
  • 조회 수 2210

하나님 나라(12)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라는 칭호의 의미를 바로 이해한다면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보다 심층적이고 명백한 교회관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칭호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예수의 주된 관심은 불가분리로 결합되어 있다. 예수가 지상에서 행한 모든 활동은 그의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었으며, 그리스도 칭호는 자신의 사명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절대적이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사귐은 세계의 미래인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 나라...

1월7일 그는 살아나셨다(21)

  • 2010-01-06
  • 조회 수 2210

2010년 1월7일 그는 살아나셨다(21)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예수 부활이 기독교 신앙에서 절정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

목사공부(31) [3]

  • 2014-05-14
  • 조회 수 2209

사회자 예배의 시작은 ‘예배의 부름’이다. 그 부분은 사회자가 간단히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활절 셋째 주일입니다.’ 하고 인사한 후 주보에 나온 내용을 읽는다. 예배 진행에서 사회자의 역할은 중요한다. 사회자라는 호칭보다는 진행자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교회의 예배는 설교자와 사회자가 구분된다. 그때 사회자는 대부분 목사다. 대구샘터교회 예배의 사회자는 일반 신자가 맡는다. 이 경우의 사회자는 소위 헌신예배 때 여신도회나 남신도회 회장이 사회를 보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어색한 ‘님’ [1]

  • 2011-02-24
  • 조회 수 2209

우리말의 특징이 평말과 높임말의 구분에 있다는 사실을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거요. 웃어른에 대한 예의가 말버릇에 그대로 나타난 거요. 극진 높임말도 있고, 중간 높임말도 있소. 그런 것을 다 가려서 쓰기가 쉽지 않소. 오해되는 경우도 많소. 쓰지 말아야 할 높임말이지만 습관적으로, 또는 인간관계 상 어쩔 수 없이 쓰는 경우도 있소. 젊은 목사 부인들에게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오. 자기 남편을 아무개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게 습관이 되어서 신학대학교 스승이나 선배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자기 남편을 가리켜 ‘목사님’...

하나님에 관한 경험(18)

  • 2010-12-13
  • 조회 수 2209

지금 그대에게 하나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소. 이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요. 성서도 바로 그것을 말하오. 그 이외의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이오. 신약에서는 하나님 경험을 예수 경험으로 말하오. 두 경험이 동일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소. 그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요. 오늘은 소명에 대한 것이오. 하나님 경험, 또는 예수 경험은 소명과 연결되오. 그대가 성경을 꼼꼼히 읽었으면 하나님 경험과 소명, 예수 경험과 소명이 깊숙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

11월2일 한 몸 [8]

  • 2008-11-01
  • 조회 수 2207

||0||02008년 11월2일 한 몸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막 10:8) 위 구절은 창 2:24절의 인용입니다. 인간 창조에 관한 창세기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간혹 여자의 갈빗대 숫자보다 남자의 것이 하나가 적다는 낭설이 나돈 적이 있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갈비뼈로 여자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신화적인 차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기 위해서 그를 잠들게 했다는 것도 별로...

7월27일 오병이어 (2)

  • 2007-07-27
  • 조회 수 2207

2007년 7월27일 오병이어 (2)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떡 몇 개나 있는지 알아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일어난 사건의 총체를 코드화 한다면 바로 이 오병이어(五餠二漁)라는 단어일 겁니다. 이것은 민중의 굶주림이 해결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이 나타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는 별로 많은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1월9일 예수의 비유 (1) [1]

  • 2007-01-09
  • 조회 수 2207

2007년 1월9일 예수의 비유 (1)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막 4:2) 예수의 가르침은 주로 비유의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구약성서에 대한 재해석이나 간단한 경구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비유로 진행되었었습니다. 비유는 어떤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다른 것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이유는 가르침의 내용이 다른 방식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우리는...

소말리아 해적 [3]

  • 2011-05-06
  • 조회 수 2206

<소말리아 해적 가족을 도웁시다!>라는 캠페인을 <복음과 상황>이 펼치고 있소. 이번 5월호 52쪽에는 4월호에 실린 이만열 칼럼 ‘소말리아는 왜 해적의 나라가 되었을까’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소. 그것을 퍼왔으니 읽어보시오. 소말리아의 비극은 여기에서 거치지 않는다. 여러 군벌로 나뉘어 내전에 열중하는 동안 소말리아 영해는 다른 나라의 불법 어장으로 변해갔다. 외국 어선들은 소말리아 어장에서 닥치는 대로 고기를 잡아갔고 자국의 쓰레기를 내버렸으며 심지어는 핵폐기물까지 버려 바다를 아예 죽여 버렸다. 가련한 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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