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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12월30일 그는 살아나셨다(13) [10]

  • 2009-12-29
  • 조회 수 2180

2009년 12월30일 그는 살아나셨다(13)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부활에 관한 설명에서 어려운 점은 우리가 그것을 아직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확인해볼 수 있겠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의 우편으로 옮기셨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단 한번 일어난 그 부활을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

2월9일 예루살렘 성전에서(8) [7]

  • 2009-02-09
  • 조회 수 2180

2009년 2월9일 예루살렘 성전에서(8)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11:19) 위 구절은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 일행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조용히 빠져나갑니다. 이런 장면만 보면 차라리 낭만적입니다. 날이 저문 시간에 잠잘 곳을 찾아, 추측컨대 베다니로 나갔을 테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 단초가 바로 예...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 2006-12-17
  • 조회 수 2180

2006년 12월17일 사탄이 분쟁하면?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막 3:26)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사탄을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시대의 아들”이니까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생각과 판단에 오류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현실에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오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보통 인간들과 ...

6월26일 예수, 헤롯, 요한 [2]

  • 2007-06-26
  • 조회 수 2180

2007년 6월26일 예수, 헤롯, 요한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막 6:14)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BC 4년에 아버지 헤롯 대왕이 죽자 16세에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예수님의 전(全)생애 동안 군주였다는 말이 된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으리라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예수님과 헤롯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고 그 사이에 다른 한 사람...

목사공부(9) [2]

  • 2014-04-20
  • 조회 수 2179

앞에서 소명은 한 순간의 어떤 특별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전체 삶에서 심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일상의 소명과 일치하는 이야기다. 삶 전체로서의 소명과 일상으로서의 소명을 연결해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한 사람의 전체 삶은 일상으로 구성되며, 일상은 전체 삶에서 완성된다. 일상이 있어야 전체 삶이 가능하고, 전체 삶 안에서 일상은 의미를 얻는다. 부분과 전체가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다. 이걸 아는 사람은 삶과 일상을 수행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것을 억지로 떠맡거나 자...

11월14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4) [2]

  • 2009-11-13
  • 조회 수 2179

2009년 11월14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15:34) 우리의 의문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즉 메시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목말라하고, “엘리 엘리 ...” 운운 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은 자존자이십니다. 존재의 근거를 내부에 갖고 있는 분이십니다. 무소불위와 전지전능이 바로 그분의 속성입니다. ...

누가복음 읽기 023

  • 2020-12-03
  • 조회 수 2178

대구 성서 아카데미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읽기』 023, 눅 1:38 https://youtu.be/IrikoqkZr7M

평창올림픽 유감 [4]

  • 2011-07-12
  • 조회 수 2177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가 강원도 평창으로 결정됐다. 삼수만이다. 독일과 프랑스와의 경합에서, 그것도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오랜만에 지역의 차이, 여야의 차이,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즐거워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유치위원들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흘린 땀의 결실일 것이다. 모두가 평창 올림픽 결정 사실에 열광한다. 경제 효과가 50조 이상이라는 말도 나온다. 상징적으로 어느 티브이 방송 앵커는 그 사실을 보도하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나는 별로 흥이 나지 않...

1월14일 씨 (2) [3]

  • 2007-01-14
  • 조회 수 2176

2007년 1월14일 씨 (2)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막 4:3) 씨 뿌리는 행위가 곧 예배라는 어제의 말을 뒤집으면, 예배는 곧 씨 뿌리는 행위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철저하게 자연에 깃든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듯이 예배도 역시 철저하게 자신과 구별되는 영에 의존합니다. 그 영은 아버지의 영이고 아들의 영인 성령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예배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예배의 주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물론 형식적으로 사람이...

11월23일 병자 (3)

  • 2006-11-23
  • 조회 수 2176

2006년 11월23일 병자 (3)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막 3:10) 병 치료는 거룩한 구원행위입니다. 이런 점에서 의사도 역시 목사요 사제입니다. 그들은 모두 인간의 생명에 자기 실존을 건 사람들입니다. 목회와 의료행위는 생명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경제논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생명이 거룩하다면 그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의 행위도 역시 거룩하니까요. <기독교사상> 11월호 포지인물로 장기려(1911-1995) 박사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슈바이처, 살...

12월27일 전통과 계명 [1]

  • 2007-12-26
  • 조회 수 2175

2007년 12월27일 전통과 계명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 7:9) 오늘 본문 9절은 8절의 강조입니다. 8절은 단순히 사실 전달이라고 한다면 9절은 원인 분석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려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는 지적이겠지요. 이런 지적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로들의 전통, 즉 바리새인의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을 좀더 구체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이 삶의 모든 문제...

부활 단상(5), 4월14일(일)

  • 2013-04-14
  • 조회 수 2174

기독교 장례식 때 목사들은 유족들에게 보통 이렇게 말한다. “고인의 육체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 품에 안길 것입니다.” 영혼은 죽지 않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신학적으로 옳은가? 영혼은 불멸하는가?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하다. 아무도 그것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영혼 불멸설은 원래 성서의 가르침이라기보다는 헬라 철학에 가깝다. 플라톤이 그런 주장을 했다. 그러나 교부들에 의해서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은 초기 기독교에 받아들여져서 정식 교리가 되었다. 이 영혼 불멸설은 ...

7월2일 예수를 팔 자(2) [3]

  • 2009-07-02
  • 조회 수 2174

2009년 7월2일 예수를 팔 자(2)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14:19) “나”를 팔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근심하면서 제 각각 자기는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니지요?”라는 문장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해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일 수도 있고,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을 행하게 될 것인가를 물어본 것일 수도 있고,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던지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장을 해석하기 어려운 근...

예수님의 시험 (4), 4월28일 [2]

  • 2006-04-28
  • 조회 수 2174

2006년 4월28일 예수님의 시험 (4)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3) 예수님이 사탄에게 받은 두 번째 시험은 다음과 같은 요구였습니다.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마 4:5,6) 만약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11월15일 영생에 대한 질문(2) [4]

  • 2008-11-14
  • 조회 수 2173

||0||02008년 11월15일 영생에 대한 질문(2)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7)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는 인간의 적나라한 실존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일종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영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바벨탑과 피라미드, 파라오의 미라, 중국 황제들의 지하 무덤 등, 인류 문명은 영생을 향한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어디 그런 것들 만이겠습니까? 자식을 ...

빛이 있으라 하시니

  • 2011-07-09
  • 조회 수 2172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셨다고 전하오. 태초라고 한다면 아직 사물이 있기도 전이고, 따라서 사물의 이름이 있기도 전인데 ‘빛’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거요? 성서기자가 그런 문제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요. 하나님이 빛을 존재하게 하셨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소. 하나님은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라는 뜻이오. 이 말을 이해하시겠소? 하나님이 누구냐 하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소.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오....

안철수 교수

  • 2011-11-03
  • 조회 수 2172

‘안철수’는 이제 자연인의 이름이 아니라 보통명사가 되었소. 참 신기한 일이오. 한국사회가 역동적이라는 말인지, 아니면 가볍다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소. 그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나설 수 있다는 말 한 마디로 50% 이상의 지지를 받더니, 박원순 씨에게 시장 후보를 양보한 뒤로 순식간에 박근혜를 넘어서는 대중적인 지지도를 보이고 있소. 내가 보기에 이건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니오. 이 현상은 기존의 정치권이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증거일 뿐이오. 좀더 삐딱하게 보면, 안철수처럼 성공하고 싶다는 대중의 로망이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질문(3)

  • 2010-11-24
  • 조회 수 2172

내재(內在)는 안에 있다는 뜻이고, 초월(超越)은 넘는다는 뜻이오. 하나님은 세상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하는 분이라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표상의 한 단면이오. 각각의 뜻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소. 문제는 양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이오. 내재면 내재고 초월이면 초월이지 어떻게 내재이면서 동시에 초월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이오. 우리 인간은 철저하게 역사에 내재하오. 역사의 모든 조건에 제한받는다는 말이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그래도 계속 먹지 않으면 죽소. 밥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

9월4일 기독교 신앙의 양면성(1) [2]

  • 2008-09-03
  • 조회 수 2172

2008년 9월4일 기독교 신앙의 양면성(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막 9:30)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갈릴리를 지나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유를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 때문이라고 보도합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앞에서 몇 번 확인했듯이 메시아 비밀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비밀이 유지되려면 가능한 대로 사람들이 그 사실을 눈치 채...

9월14일 누가 크냐?(2) [4]

  • 2008-09-13
  • 조회 수 2172

2008년 9월14일 누가 크냐?(2)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막 9:33) 인간의 속성이나, 인간이 모인 사회의 매카니즘은 기본적으로 “누가 크냐?” 하는 명제에 묶여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생명의 세계를 추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도 역시 그런 논란에 휩싸였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상할 게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집단이 아니라면 오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었을 테니까요. 오늘 한국교회는 “누가 크냐?” 하...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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