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3월22일

조회 수 1168 추천 수 0 2020.03.22 22:40:3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322, 사순절 넷째 주일

 

1) 심판- ‘심판이라는 단어는 뭔가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심판은 구원과 같은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요 9:39절에서 예수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요 12:47절에서는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구원이고 구원은 곧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는 것이 심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이 선포는 정말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보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무시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은 아는 게 없고, 가진 거도 없고,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세상에서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인생이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세상의 고정관념에 묶여서, 또는 생명에 대해 닫혀 있어서 참된 생명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죄입니다. 예수를 바르게 믿는다면 자신이 하나님에게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고 믿게 될 것입니다. 별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꽃향기를 맡는다는 게 생명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평화와 기쁨과 안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혹시 이번 총선에서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까 하여 걱정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떤 결과가 나와도 최소한 하나님 나라를, 생명의 나라를 보는 데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2) 온라인 예배- 오늘 다섯 번째로 온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현장에는 설교자와 사회자와 반주자와 카메라 촬영 담당자, 이렇게 4명만 모였습니다. , 카메라 촬영 담당 집사의 아내와 어린 딸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현장 예배 분위기가 어떨지 상상은 하겠지만 실감은 하지 못할 겁니다. 썰렁하지요. 설교에 집중하려고 저도 애를 씁니다. 오늘 박*연 집사가 예배 진행을 맡아줘서 저는 부담을 크게 덜었습니다. 박 집사에게 교인들이 없으니 자리에 앉아서 진행해도 된다 했지만, 평소처럼 사회자석 앞에 서서 진행하겠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라이브 예배 방송을 아프리카TV에서 유튜브로 갈아타려고 준비 중입니다. *희 집사가 수고합니다. 오늘 실험적으로 해봤는데, 어디가 문제인지 실패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인터넷 선이 유튜브 영상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집사가 좀더 연구해서 오는 주일에 다시 시도해보겠습니다. 유튜브로 갈아타는 이유는 교우들이 접속하기에 편하기도 하고, 동영상 파일 관리에도 좋은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들은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지요. 대다수 교우는 실제로 예배당에 들어와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릴 겁니다. 컴퓨터나 노트북을 책상이나 식탁 위에 올려놓고 주보도 출력해서 앞에 놓은 다음 부부가 그 앞에 나란히 앉아서 영상에 나오는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일어설 때 일어서고, 찬송가 부를 때 함께 부르는 겁니다. 준비가 잘되면 모이는 예배 때보다 집중력이 더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은 영상을 틀어놓고 틈틈이 다른 일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건 예배를 참관하는 거지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닙니다. 329일까지는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초중등 학교의 개학이 46일로 결정되면 우리는 45일 주일부터 모일 수 있습니다. 대구는 특수 상황이니 학교도 개학이 더 늦어질지도 모르지만요. , 속히 함께 모일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3) 강단- 오늘 영상으로 강단을 보셨을 겁니다. 설교단의 모습이 매 주일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달라지는 모습을 찾아보는 일도 작은 재미입니다. 왼편의 제라늄의 꽃송이가 처음에는 꼭대기에만 달렸다가 이제는 세 군데로 늘어났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됩니다. 잘 찾아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소소하지만 따뜻하고 풍성하며 재미있는 일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그런 소소한 것에 영혼의 눈을 뜨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는지요. 오늘 오른편에 새로운 꽃이 놓였습니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베고니아라고 합니다. 꽃은 아무리 봐도 신비롭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들이 꽃을 주제로 시를 많이 지었나 봅니다. 베고니아 노랑 색깔이 화사하지요? 오는 주일에 베고니아를 다시 가져갈지 아니면 보라색 꽃이 핀 바이올렛을 가져갈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런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강단 벽면의 십자가상에 걸쳐진 보라색 천을 보셨지요? 예배 알림 시간에 말씀드렸는데, 제가 작년까지 입던 목사 가운에 걸치던 후드입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십자가상도 제가 제작한 겁니다. 제가 사는 집 언덕에서 자라던 나무를 잘라서 만들었지요. 나무 이름은 까먹었습니다. 옛날에는 약용으로 심던 나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오는 주일에는 십자가상에 보라색 천을 어떻게 걸쳐야 예술적인 멋이 풍길지 연구해봐야겠습니다.

 

4) 꽃길- 요즘 집에서 교회를 다녀오는 길에 꽃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고속도로에서도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영남신학대학교 가까이 진량 부근에 오면 개나리가 보입니다. 이름에 가 붙으면 좀 수준이 낮아 보이지만 멀리서 개나리 군집을 보면 다른 꽃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정감을 불러옵니다. 과수원 복숭아 꽃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대구 시내에는 이미 지난 주일부터 목련꽃이 만발하더군요. 대구 MBC부터 구 동부 시외버스정류장까지 양쪽은 벚꽃길입니다. 오늘 돌아오다 보니 이제 막 피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일이면 아마 주변이 환해질 정도로 활짝 피겠지요. 벚꽃 지는 순간도 멋집니다. 벚꽃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2-3초입니다. 더 짧을까요? 한창 많이 떨어질 때는 눈보라가 치듯 합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광은 그야말로 마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멋지고 예쁘고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도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었습니다. 아주 작은 야생초가 마당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꽃으로는 가장 처음 핀 친구가 산수유이고, 다음은 매화입니다. 지금 한창인 꽃은 목련이고, 개나리가 조금씩 피기 시작했습니다. 살구꽃도 부분적으로 피었고 조금 있으면 벚꽃이 나오겠지요. 오늘 찍은 목련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죽어가던 녀석을 제가 정성 들여서 살려냈습니다. 오랜 병치례를 한 사람처럼 아직은 삐쩍 마른 게 볼품은 없습니다. 한반도의 3월 중하순부터 4월은 어디를 가나 꽃길 천지입니다. ‘꽃구경가실까요? 코로나19로 인해 쉽지 않으니, 대신 제가 자주 들었던 장사익 선생의 꽃구경을 들어보시지요. 꽃과 죽음과 사랑, 눈물 나는 노래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EL1AQQU0MpY

    IMG_2786.jpg     

5) 헌금: 1,690,000(322일 낮 1시까지 통장 이체)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레벨:13]쿠키

2020.03.23 12:01:00

' 그건 예배를 참관하는거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구, 깜짝이야!
늘 모든 교우들이 돌아간 뒤 사택에서 유튜브로 혼자 예배드리는 저에게 ' 참관' 이란 낱말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되는 슬픈 현실입니다. ㅠㅠ
그래도 교회 곳곳에 심어논 히아신스의 꽃향기가 넘 황홀한 봄날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0.03.23 20:16:46

ㅎㅎ 교회당 관리를 하고 계시니 주일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으시겠군요.

교회 마당에 핀 히아신스 꽃향기에 취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을 느낄 수 있다면 ...

[레벨:13]쿠키

2020.03.25 10:18:12

저희 교회는 주중이나 주일이나 수도원 영성으로 늘 차분하여 정신은 늘 살아 있답니다.ㅎㅎ 다만 식사 인원에 비해 식당과 주방이 비좁아 배식 할때 잠깐 영혼이 나갔다 들어온답니다. 근데 고 경험도 꼭 나쁜건 아니고 재미있답니다.^^

목사님, 예배 참관과 예배 드림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네요~ 내 삶도 참관자의 자세로 살아온 건 아닌지... 내 생명에 깃든 하나님을 마음껏 경험하며 누리며 소중히 여기고, 맡기신 일을 능동적으로 살아내야 겠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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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25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이적을 일으키는 목표는 땅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앞 절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람들은 그런 이적, 놀라운 일에 미혹 당하기 쉽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어떤 목사가 교회 개척 10년 만에 1만 명 교인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주목합니다. 다른 목사들도 그 목사를 추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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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9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니라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하기는 하나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낯섭니다. 그냥 어린 양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세 단어를 짚어야 합니다. 1) ‘죽임당함’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누구나 여러 이유로 죽습니다. 십자가 처형의 방식으로 죽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 방식의 처형이 너무 잔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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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8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요한은 로마 제국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반복해서 묘사하는 중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용에게서 권세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과 싸웁니다. 사실 그 싸움은 싸움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당할 뿐입니다. 그래도 싸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로마 제국이 힘으로 제압한다고 해서 끝나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으로 하인을 괴롭히는 주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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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7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짐승이 하나님을 비방한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비방하는 것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세 번째 항목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한다는 말은 신성을 모독한다는 뜻이겠지요. 우리는 로마 제국을 매우 폭력적인 체제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에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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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6 13: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한 권세를 받으니라 모두에게서 경배를 받는 짐승인 황제와 그런 황제 체제를 고수하는 로마의 제국주의는 ‘입’이 있습니다. 듣는 귀는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 입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위대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신성 모독입니다. 위대한 일은 자기 자랑이고, 신성 모독은 자기 신성화입니다. 두 가지는 서로 묶여 있습니다. 자기의 업적을 과대 포장해야만 자기 신성이 두드러지고, 자기 신성화가 먹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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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5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3절에서 언급된) ‘온 땅’이 용과 짐승에게 경배한다는 말은 로마 황제의 신격화를 의미합니다. 황제의 신격화나 황제숭배가 오늘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닙니다. 황제숭배를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강요되는 측면이 있긴 했으나 자발적인 측면이 더 강합니다. 실용적으로 필요한 제도, 체제, 이데올로기...

계 13: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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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4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여기 3절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짐승에 달린 일곱 개 머리 중에서 하나가 죽을 지경이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겁니다. 온 세상이 놀라서 그 짐승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성서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머리 운운은 당시 민간에게 전승되던 ‘네로’ 환생 이야기라고 합니다. 앞에서 초기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대표 황제 두 사람은 네로와 도미티아누스라고 말...

계 13:2 [1]

  • 2023-08-22
  • 조회 수 28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3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이 본 짐승 형상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다니엘이 7장에서 묘사한 네 짐승과 여러모로 닮았습니다. 용이 능력(power)과 보좌(throne)와 권세(authority)를 짐승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당시 만인지상의 존재인 로마 황제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절대 권력입니다. 누구도 황제 앞에서 다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그...

계 13:1 [1]

  •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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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2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요한은 한 짐승의 출현을 다시 봅니다. 이 짐승은 바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앞서 12장이 언급하는 용은 하늘에서 시작했습니다. 용과 짐승의 형태가 비슷합니다. 그들은 각각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나 달렸습니다. 용의 머리에는 ‘왕관’(계 12:3)이 있고, 짐승의 머리에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12:3절을 설명하...

계 12:17 [1]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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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1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이제 12장 마지막 절입니다. 자기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용은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바닷가 모래 위에 섰다고 합니다. 바다는 고대인들에게 악한 세력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계 13장에는 바다에서 괴물이 등장합니다. 용이 괴물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완전히 신화적인 이야기입니...

계 12:16 [1]

  • 2023-08-17
  • 조회 수 27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10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위기의 순간에 땅이 강물을 삼켰다고 합니다. 이런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면 정말 장관이겠군요. 여자가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 광야로 날아갔다는 14절 말씀을 전제한다면 이 장면은 홍해와 요단강 이야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 14:21)라는 표현이 나오고, 요단강을 건널 때도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계 12:15 [1]

  • 2023-08-16
  • 조회 수 28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09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3~17절 단락에는 용(δράκων)과 뱀(ὄφις)이 혼용됩니다. 이런 혼용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은 악한 세력을 가리키는 똑같은 용어로 보면 되겠습니다. 위 15절에서 뱀은 물을 토했고, 그 물이 강을 이뤘습니다. 정말 만화 같은 묘사입니다. 이런 묘사는 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순식간에 익사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는 사실에 대한 상징입니다. 요한계...

계 12:14 [1]

  •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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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08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는 광야로 피했다고 합니다. 독수리 날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독수리 날개 표상은 출애굽기에도 나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셨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모세오경 마지막 책인 신명기에도 나옵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

계 12:13 [1]

  • 2023-08-14
  • 조회 수 22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07 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0~12절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에 관한 찬송이 언급된 뒤에 13절부터 다시 악한 세력을 표상하는 용이 등장합니다. 9절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용은 하늘에서 쫓겨나 땅에 내려왔습니다. 적그리스도인 용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에게 맞설 수 없고 대신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할 뿐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심한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긴 합니다. 지금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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