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26)

조회 수 1128 추천 수 0 2019.10.05 20:34:10

38-12 , ,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이 대목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다섯 가지 충고가 나온다. 1)마음을 같이하여 2)동정하고 3)사랑하며 4)불쌍히 여기고 5)겸손하라.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핵심적으로는 상대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으려면 삶의 차원이 달라져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거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신앙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른다 해도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 힘들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타자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삶의 태도가 숙명처럼 우리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데에 머물러 있는 기독교인은 신앙의 진보를 이룰 수 없고, 부단히 자기를 성찰하면서 신앙의 근본을 붙드는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란다. 한마음, 동정, 사랑, 연민, 겸손이 우리 신앙의 열매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베드로 사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말을 한다. 8절의 내용은 교회 안의 교우들이나 일반적인 대상을 향한 삶의 태도라고 한다면 9절은 악한 사람을 향한 삶의 태도다. 파격적이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고 한다. 바울은 살전 5:15에서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악과 욕을 당해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 복을 빌라고 조언한다. 이것도 우리 평범한 기독교인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고수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악과 욕에 저항할 때는 저항해야 한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태도와 저항하는 태도는 상황에 따라서 다르니 본인이 판단해야 한다. 어떤 상황이라도 자기가 당한 것만큼 앙갚음해야겠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 저항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한마음, 동정, 사랑, 연민, 겸손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이게 물론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한 그 단계까지 올라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단계에 이르면 생명을 더 충만하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바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라는 바울의 호소에 상응하는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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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1]

  •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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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18) 황지우 안도현 대개의 사람들은 설교 한 편, 시 한줄, 소설의 한 대목에서 삶의 격정이나 깊이를 종종 경험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시인 두 사람이 내 기억에 선명하다. 한 사람은 황지우다. 한예종 총장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잘렸다. 그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 뭔가 삶의 아득함을 경험했다. 글이나 말을 통해서 그의 시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표제가 된 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다시 읽겠다. 초경을 막 시작한 ...

천기누설

  •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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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3일 천기누설 어제 설교 초반부에서 선동적인 표현을 한 가지 했다. 요 16:12-15절을 소개하면서 ‘들을 귀를 가지신 분들은 천기누설과 같은 차원의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정신 차리고 내 설교에 귀를 기울이라는 선동이었다. 없는 말을 한 건 아니다. 실제로 성경은 천기누설과 같은 세계를 말하고 있다. 거기서 천기누설과 같은 충격을 받지 못한다면 성경을 오해하거나 성경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실용적인 문헌으로 대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그대로 살면 실...

목사 구원(73) [2]

  • 2018-04-12
  • 조회 수 1107

(73) 막 10:17-22절에는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사태인지 절감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관복음에 다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와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뜻이다. 윤리적인 관점에 해당되는 질문이다. 이 사람은 유대의 지혜 전통에 따라서 성실하게 인생을 살았기에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눈높이에 따른 질문을 한다. 십계명의 몇몇 항목을 말씀하셨다. 이...

목사 구원(107) [6]

  •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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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다른 한 가지는 예배다. 전업 목사는 눈만 떴다 하면,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밥 먹듯이 예배를 인도하기에 자칫 예배의 매너리즘에 떨어질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배를 이벤트처럼 진행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 곁길로 빠져드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젊은이들이 나와서 율동을 곁들인 찬양을 부르게 하거나 관현악단이 포함된 성가대 역할을 확대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에서 대형 빔 프로젝터 사용은 일반화된 것 같다. 예배를 쇼나 대중가요 콘서트처럼 진행하는 교회도 제법 된다. 교회 형편에 따라서 이색적인 ...

주간일지 11월11일 file

  •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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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샘터교회 주간일지 2018년 11월11일, 창조절 11주 1)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설교에 가장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설교자 자신이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느낍니다. 이런 점에서는 설교자로 산다는 건 행운이겠지요. 오늘 설교에서 ‘가난하니까 할 수 없는 일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간략하게 열거했습니다. 만약 가난하게 살아도, 아니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삶을 소비하지는 않겠지요. 이게 단순히 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

목사 구원(58) [2]

  •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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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하루를 맞는 아침 시간이 나에게는 황홀하다. 여명이 찾아오면서 내가 침실로 사용하는 서재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60대 중반인 지금은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두발로 서는 순간의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발목의 힘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늙고 가난하고 외롭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런 느낌의 중심에 지구의 중력과 내 몸의 교감이 자리한다. 그 교감이 예술적인 차원에 이르면 우리는 전...

예수 어록(342) 요 15:17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2020-05-29
  • 조회 수 1106

예수 어록(342) 요 15: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을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서로 사랑하는 말이 예수의 고별 연설을 다루는 이 대목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상투적으로 들린다. 요즘도 “성도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발언을 종종 듣는다. 이런 발언은 아무리 상투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과 신앙을 살리는 능력이기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삶의 현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운전면허...

예수 어록(326)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2020-05-07
  • 조회 수 1105

15장 예수 어록(326) 요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서만의 특수한 전승인 예수 연설이 15장으로 이어진다. 정확하게는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읽는 게 옳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아버지로 불린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내 아버지”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의 아버지”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아들이기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예수의 경우와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예수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이...

렘 1:4 [2]

  • 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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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 렘 1:4 어제의 묵상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를 좀더 보충하겠다. 본문이 대화 식으로 전개되지만 그것을 실제 대화로 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성경에 종종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화했고, 모세도 그렇다. 그런 대화는 문학적 수사다. 수사에 매달리지 말고 본문의 핵심을 붙들어야 한다. 그 핵심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렘 1:4)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발언은 천기누설처럼 위험하다. 말씀이 임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건 하나...

생명, 최초의 30억년(11) [4]

  • 201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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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5일 생명, 최초의 30억년(11) 마지막으로 우리는 뗏목을 해안으로 돌린다. 헬리콥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다가와 발굴을 끝내야 할 시간임을 알리기 전에 한 번 더 노두를 살펴볼 생각이다. 배를 시냇가 자갈 위로 안전하게 끌어올려 놓고, 우리는 앞에 치솟은 베이지색의 절벽을 뜯어본다. 어디서 본 듯한 암석들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30억 년의 자연사 여행을 한 후, 마침내 코투이칸 강변의 캄브리아기 절벽에 다시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엘리엇이 깨달았듯이 이 암석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

예수 어록(008)- “나를 따르라!”(2) [4]

  • 2018-12-13
  • 조회 수 1105

예수&로고스 008, 요 1:43 “나를 따르라!”(2)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린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지 왜 남을 따르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자신의 내면에서 진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를 따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이 충실하지 못한 증거라는 말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일단 어느 누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당연히 스승을 떠나는 게 옳다는 사실이다. 동서양의 대다수 스승들은 제자들이 어...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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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서 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054, 눅 2:1 https://youtu.be/qR2EYyv3thA

어린이 번제 의식

  • 2017-07-05
  • 조회 수 1104

7월5일, 수 어린이 번제 의식 창 22:1-14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시도 사건은 구약성경에서도 아주 드문 이야기다. 딱 한번 사사 입다 이야기에 나온다. 입다는 전쟁에서 이기고 집으로 돌아갈 때 자기를 환영하러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미친 서원이다. 그는 아마 자기 종들 중의 하나가 먼저 나올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입다의 무남독녀가 나왔다. 딸은 두 달의 말미를 얻어 친구들과 산에 들어가서 지내다가 돌아온다. 입다는 딸을 번제물로 바쳤다고 한다(삿 11:39). 고대 이스라...

예수 어록(347) 요 15:22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 2020-06-05
  • 조회 수 1103

예수 어록(347) 요 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세상이 핑계할 수 없는 죄는 21절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예수 이전에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예수 이후에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에게서 하나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 기자들과 오늘 우리까지 포함해서 모든 기독교인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믿는다. 이는 곧 예수가 하나님...

예수 어록 (193)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 2019-11-15
  • 조회 수 1103

예수 어록(193)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진리 말씀은 진리에 속한 자에게 들린다. 생명은 생명에 속한 자에게 보이고 경험된다. 예수는 진리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말씀이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마음이 온통 자신에게 기울어진 사람에게 이 말씀은 헛소리다. 설교도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자기 귀에 들리는 설교, 그게 바로 자기의 영적인 수준이다. 시도 그렇다. 시에 마음의 귀를 연 사람에게나 시...

루터(18) [3]

  • 2017-10-26
  • 조회 수 1103

10월26일, 목 루터(18) 롬 1:17절의 첫 문장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다. 복음은 예수 사건이다. 예수의 오심, 하나님 나라 선포,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는 그의 운명이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구원 등등의 뜻이다. 예수 사건이 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말인가? 가장 원론적인 대답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죄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는 욕망이며, 죽음은 두려움의 원인인 자기 소멸이다. 이게 인간 실존이다. 여기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

예수 어록(089) 요 5:29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2019-04-12
  • 조회 수 1103

예수 어록(089)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인자로서의 정체성과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선한 일을 행한 자와 악한 일을 행한 자라는 표현이 29절에 나온다. 인자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것과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의 관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늘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늘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이 말하려는 핵심은 선한 일과 악한 일을 구분하려는 ...

물(物) 168- 고량주 file [2]

  • 2022-10-26
  • 조회 수 1102

북안면에 있는 중국집 식당에서 정말 오랜만에 125ml짜리 고량주인가 뭔가 하는 중국 술을, 사진에서 보듯이 정확히는 이과두주를 반만 마시고 반은 가져와서 저녁때 다 마셨다. 알코올도수가 자그마치 56도다. 술은 역시 도수가 높아야 제맛이다. 중세기 수도사들이 왜 술을 마셨는지 조금씩 더 실감하는 중이다.

주간일지 9월12일 창조절 2주 file

  • 2021-09-13
  • 조회 수 110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년 9월12일, 창조절 2주 1) 지혜 ‘너머’- 9월12일 창조절 둘째 주일 설교의 주제는 ‘지혜’였습니다. 정말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물론 지혜 ‘너머’입니다. 그 ‘너머’를 이해하려면 지혜를 먼저 알아야 하기에 지혜 문제를 많이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기독교 신앙도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지혜롭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다른 사람들이 돈벌이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그런 대세를 거스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기적으로 사는데, 자기만 이타적으로...

누가복음 톺아읽기 217

  • 2021-09-01
  • 조회 수 1102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17, 눅 9:51~56, 사마리아에서 https://youtu.be/m0j5RNpLh_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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