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175)

조회 수 1054 추천 수 0 2018.09.01 22:02:41

(175)

타종교 혐오

1985년도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독일에서 잠시 신학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한국교회에서 성결교회 중진 목사가 유럽 선교여행 중에 독일에 들려 후배 목사들을 위로하는 순서가 있었다. 형식은 예배였다. 그는 내가 속한 성결교회(기성)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가장 역사가 깊은 교회의 담임 목사이고 잘 나가는 부흥사였다. 아마 다른 직함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그의 발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승려 흉내를 우스꽝스럽게 재연하면서 기독교가 왜 불교보다 우월한지를 강조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불교를 희화화하고 비하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들은 우리나라 교회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사찰에 불을 낸다거나 부처상을 훼손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탁발하러 온 승려에게 우리는 교회에 다닙니다.’는 말로 거절하는 경우도 흔했다. 얼마 전부터는 이슬람교에 대한 혐오 발언이 주를 이룬다. 혐오를 넘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슬람교가 한국을 이슬람국가로 바꾸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음모를 꾸민다는 식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도 그런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짜 뉴스가 신자들 사이에 유통된다.

로마가톨릭교회에 비해서 개신교회가 타종교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이유에 대한 종교사회학적인 분석은 이미 나올 만큼 나왔으니 내가 여기서 보탤 필요는 없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경험을 통해서 구원의 빛에 가까이 간 사람에게 타종교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만 설명하면 된다. 나는 타종교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나는 지금 어머니 밥상에서 음식 먹는 행위의 절정을 향해서 나아가는 중이다. , 된장찌개, 김치, 각종 나물, , 불고기 등등, 먹으면 먹을수록 맛의 깊이가 더해진다. 옆집에서는 주로 빵과 스테이크 등의 양식을 먹는다. 나는 옆집 음식과 우리 집 음식을 비교할 생각이 없다. 이미 충분한 맛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말하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타종교를 부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시하지도 않고, 더더욱 혐오하지 않는다. 혐오한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영혼이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니 대신 타종교를 비난함으로써 상대적인 만족감을 얻으려는 것뿐이다.

한국교회에서 벌어지는 타종교 혐오는 목회적인 전략에서 나온 발상이다. 본인들이 의도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다.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목회는 늘 전략적이다. 해외선교사 파송을 경쟁적으로 펼친다거나 무리수를 쓰면서도 대형 교회당을 건축함으로써 회중들의 관심을 한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런 전략의 극단이 타종교의 악마화다. 목회의 구심력을 강화하는 데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게 없다. 이슬람에 의해서 한국의 기독교가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면 교회 내부에서의 다른 문제 제기는 잦아든다. 헌금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목회가 전략의 차원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목사의 영혼이 병들어간다는 조짐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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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구원(76) [4]

  •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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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동의하기는 어렵다. 돈은 좋게 봐서 책이나 골동품이나 자동차처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다. 소유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할 수는 있지만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돈 자체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아니다. 궁핍한 분들은 이런 말을 듣고 ‘저 사람 먹고 사는데 걱정 없으니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고상하다고...

국가주의를 넘어

  •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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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3일, 목 국가주의를 넘어 지난 설교에서 팍스 로마나와 팍스 크리스티를 대립적으로 설명했다. 그것의 구체적인 예로 예수 십자가를 들었다. 팍스 로마나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삼십대 초반의 유대인 한 남자를 반역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처형했다. 이 사건이 기독교의 단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역사에 등장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에게는 반역으로 몰릴만한 일들이 없었다. 로마에 세금을 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내지 말라.’ 하지 않고 ‘...

목사 구원(99)

  • 20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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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모세가 하나님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본 이유는 당시 이집트 파라오가 ‘스스로 존재하는 자’를 사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만이 아니라 고대의 모든 왕들은 스스로를 신으로 여겼다. 백성들은 왕을 신으로 받들면서 나름으로 신적 경험을 했다. 신으로서의 왕은 절대자이기에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늙어서 죽는다는 사실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파라오들은 죽은 뒤에 미라로 만들어짐으로써 그 신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성경은 하나님처럼 스스로 높아지려는 것을 죄라고 말한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

씨의 미래(1)

  •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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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9일 씨의 미래(1) 씨는 늘 씨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니다. 미래가 있다. 그 미래는 지금 씨의 현재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세계다. 상전벽해다. 그래서 현재의 씨는 그 미래를 현실로 느끼기 어렵다. 그럴만하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현실로 느끼기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여기 유리잔이 있다. 우리가 손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유리잔은 원래 빈 공간이다. 유리잔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 자체가 빈공간이기 때문에 유리잔도 궁극적으로는 빈 공간이라는 말이다. 원소의 핵과 전자 사이에 강력한...

예수 어록(094) 요 5:34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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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094) 요 5: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에게서 증언’은 예수에 대한 요한의 증언을 가리킨다. 그 내용은 요 1:19-34절에 나온다. 이 대목은 두 단락으로 나뉜다. 19-28절은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요한의 대답이고, 29-34절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 받은 이야기다. 두 단락 모두 요한이 예수를 증언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단락만 보자. 요한에게 세례 받기 위해서 오는 예수를 보고 요한이 한 말은 유명하다. 예수를 주...

목사 구원(160)

  • 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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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내가 생각하는 부활 생명은 하나님 안으로의 변화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아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안으로의 변화도 그림처럼 실증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안으로의 변화가 지금의 삶이 단순히 연장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해보겠다. 이런 비유도 잘 알려진 것들이다. 절대적인 세계에 대한 인식과 설명은 비유가 최선이다. 비유라고 해서 확실성의 근거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비유의 재료들은 하나님의 창조에 속하기에 그걸 도구로 하나님의 생명과 통치를 간...

영광 받으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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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0일 영광 받으심 예수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대제사장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그의 완전성에 놓여 있다. 그 완전성은 부활 승천, 즉 들림 받음이다. 이 들림 받음이 영광 받으심이라고 설교에서 말했다. 그게 무엇일까? 영광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또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존재를 가리킨다. 이런 용어들은 관념적이어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사실은 하나님이라는 용어 자체가 관념적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만났다거나 경험했다고 쉽게 말한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

누가복음 톺아읽기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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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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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98) 요 19:30 다 이루었다.

  •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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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398) 요 19:30 다 이루었다. 이제 한 인간으로서 예수는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그의 마지막 발언은 “다 이루었다.”이다. 이 발언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자기 인생이 여기서 다 끝났다는 것인지, 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을 마쳤다는 것인지 말이다. KJV은 이렇게 번역했다. “It is finished.” 우리말 번역으로 28절에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을 아셨다고 말이다. 이를 KJV은 “all things were now accomplished.”라고 번역했다. 피니쉬는 일이 끝났다는 의미가 ...

목사 구원(151) [2]

  • 201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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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삶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은 흔하디흔하다.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기독교인들은 명시적으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선물로서의 삶을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구원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이 문제도 선이 확실하게 그어지는 건 아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삶을 하나...

목사 구원(149) [4]

  • 2018-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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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다시, 가난한 교회의 목사는 행복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거꾸로 부자 교회의 목사는 불행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빈부 자체가 삶에서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듯이 가난한 교회와 부자 교회라는 조건이 목사의 삶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결정적인 요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숙명적으로 종속되는 게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생각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목사 구원(29) [2]

  • 2018-02-09
  • 조회 수 1058

(29) 존재 지향적 목회의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만 들겠다. 먼저 존재 지향적 설교 행위다. 존재 지향적 설교는 설교 자체에 집중하는 설교를 가리킨다. 설교 행위 자체가 아니라 설교를 들어야 할 회중들에게 집중하는 설교가 많다.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들은 설교의 목적이 회중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리고 신학대학 설교학 교수들이 그렇게 가르치기도 하겠지만, 설교 행위에 대한 오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설교 행위는 말하기에 앞서 듣는 것이다. 일단 하나님의 말...

제자의 삶(5)

  • 2017-09-08
  • 조회 수 1058

면죄부와 교황 절대권 종교개혁 500주년이 곧 다가온다. 1517년 10월31일 루터는 자신이 신학대학교 교수요 사제로 활동하던 비텐베르크 교회당 정문 위에 95개 신학 명제를 대자보 형식으로 게재했다고 한다. 95개 신학 명제의 핵심은 두 가지다. 1) 면죄부는 신학적으로 잘못되었다. 2) 교황 절대권은 오류다. 루터는 그걸 조목조목 짚었다. 각각의 명제가 짧은 문장으로 기술되었지만 어느 한 구석도 빈틈이 없다. 이 95개 신조가 당시 실용화된 금속활자 인쇄술 덕분으로 삽시간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핵심 명...

누가복음 톺아읽기 216

  • 2021-08-31
  • 조회 수 1057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16, 눅 9:49~50, 낯선 기적 행위자 https://youtu.be/laEoqLjmmvM

누가복음 톺아읽기 200

  • 2021-08-07
  • 조회 수 1057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00, 눅 9:7~9, 헤롯 이야기 https://youtu.be/dMVuHRUxnr0

예수 어록(294)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 2020-03-31
  • 조회 수 1057

예수 어록(294)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소위 ‘사랑 장’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 13장에서 1-3절이 인상적이다. 루터 성경을 번역해서 여기 싣는다. 내가 사람의 말을 잘하고 천사의 노래를 멋지게 부른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것입니다. 또 내가 예언을 말할 줄 알고 모든 비밀과 지식이 뛰어나며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내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내 ...

목사 구원(125)

  • 2018-06-23
  • 조회 수 1057

(125) 과학에 대한 불안감이 교회 안에 팽배한 이유는 과학이 하나님을 부정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다. 어린아이는 부모를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이 짧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자기 자신도 허물어진다고 여긴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부모와의 관계는 새롭게 정립된다. 비록 부모의 약점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삶을 파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물(物) 088- 찔레꽃 file [2]

  • 2022-07-02
  • 조회 수 1055

물(物) 088- 찔레꽃 찔레꽃은 한철 피고 끝나는 게 아니라 피고 지고를 구도자처럼 반복한다. 체스터턴의 멋진 설명에 따르면 자연에서 발생하는 똑같은 현상의 반복은 그런 일을 전혀 지루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의 창조와 생명 능력이 폭발적이라는 의미다. 얼마 전에 시들어가는 찔레꽃을 사진에 담았다. 미학(aesthetics)이 왜 가능하고 필요한지를 이번에 다시 절감했다.

누가복음 톺아읽기 282

  • 2021-12-01
  • 조회 수 1055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82, 눅 16:1~13 불의한 청지기 비유(2) https://youtu.be/yl2C28uOkrk

시원에 대해 [4]

  • 2016-12-02
  • 조회 수 1055

12월2일(금) 시원에 대해 설교에서 노아 홍수 이야기를 하면서 일상의 과잉으로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짚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시원적인 것에 대한 경험’이다. 시원(始原)이라는 단어는 ‘처음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하이데거가 자주 사용하는 독일어 Anfang(안팡)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말 성경은 이를 태초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어로는 아르케(요 1:1)다. 지구의 존재하는 여러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시원을 생각할 줄 안다. 그래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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