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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11월16일 두려워 말라.(1) [2]

  • 2007-11-15
  • 조회 수 1658

2007년 11월16일 두려워 말라.(1)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 6:50) 본문 50절을 자세하게 보세요.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되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랐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험에 관한 성서의 묘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구조입니다. 아직 동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놀랐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

11월15일 놀라는 제자들

  • 2007-11-14
  • 조회 수 1391

2007년 11월15일 놀라는 제자들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 6:50)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섰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기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앞 절에 묘사된 유령 운운도 역시 이 놀라움에 대한 서술입니다. 놀라움은 바로 하나님 경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

11월14일 유령인가?(3) [3]

  • 2007-11-13
  • 조회 수 1672

2007년 11월14일 유령인가?(3)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성서 텍스트는 해석되어야 한다는 저의 주장이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르겠군요. 모든 게 해석되어야 한다면 결국 성서의 중심까지 해체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그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의 신화적 요소를 무조건 제거하자는 게 아니라, 즉 불트만 식으로 탈(脫)신화화하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담아내려는 구원의 현실들을 바르게 찾자는 말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님에 관한 많은 경...

11월13일 유령인가?(2) [2]

  • 2007-11-12
  • 조회 수 1787

2007년 11월13일 유령인가?(2)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어제의 묵상에서 저는 성서의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호수 위에서 새벽 네 시에 바람과 싸우고 있는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물위를 저벅저벅 걸은 것인지 아니면 해변을 걸은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텍스트는 물론 물위를 걸어서 오셨다고 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유추해석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성...

11월12일 유령인가?(1) [3]

  • 2007-11-11
  • 조회 수 1683

2007년 11월12일 유령인가?(1)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막 6:49) 자신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인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만 보면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게 분명한 사실처럼 보입니다. 저는 사람이 물위를 걸을 수 없다는 일반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예수님이 물위를 걸은 게 아닐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가능한대로 성서 기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뿐입니다. 다시 마음을 열고 이렇게 질문해야겠군요. 성서...

11월11일 물 위를 걷다.(3) [2]

  • 2007-11-10
  • 조회 수 1652

2007년 11월11일 물 위를 걷다.(3)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막 6:48) 제자들의 예수님 경험은 예수님의 공생애와 그 이후에 따라서 약간씩 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그것을 주도면밀하게 구분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관점이 복음서에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즉 하나님으로 고양되기 전과 후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

11월10일 물 위를 걷다.(2) [2]

  • 2007-11-10
  • 조회 수 1688

2007년 11월10일 물 위를 걷다.(2)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막 6:48) 어제 저는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보도에 관한 하나의 해석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물위를 걸은 게 아니라 해변을 걸으신 것인데, 경황이 없었던 제자들이 물위를 걸으신 것으로 착각한 것인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런 해석에 강하게 반발하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인간의 합리적 인식 안으로 끌어낼 수 있...

11월9일 물 위를 걷다.(1) [3]

  • 2007-11-08
  • 조회 수 1595

2007년 11월9일 물 위를 걷다.(1)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막 6:48) 어제의 묵상에서 짚은 대로 제자들은 지금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날은 저물고, 역풍이 불고, 예수님은 뭍에 계십니다. 그 시간은 새벽 4시입니다. 바로 그 장면에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성서기자는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다고 묘사합니다. 이런 보도 앞에서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성서의 진술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

11월8일 저물매(2) [2]

  • 2007-11-08
  • 조회 수 1582

2007년 11월8일 저물매(2)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막 6:47)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동안에 이미 날이 저물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나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군요. 저물지 않은 시간이라도 하더라도 배를 젓는 일은 만만하지 않은데, 하물며 저문 시간이라고 하니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배는 바다 가운데 있다고 하네요. 일반적으로 인생을 항해로 비유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역시 영적인 항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에 저문 시간...

11월7일 저물매(1)

  • 2007-11-06
  • 조회 수 1442

2007년 11월7일 저물매(1)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막 6:47) 벳새다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앞서 가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제자들은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벳새다 쪽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날이 저물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시간 계산을 잘못했는지, 아니면 바람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인지, 또는 처음 배를 탈 때부터 날이 기울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오병이어 이야기와 시간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한다면 세 번 째 경우에 해당될지 모르겠군요. 오...

11월6일 산으로 가신 예수님 [3]

  • 2007-11-05
  • 조회 수 1575

2007년 11월6일 산으로 가신 예수님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려 산으로 가시니라.(막 6:46) 예수님이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가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영적인 삶의 진수인 기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우리의 종교행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야겠지요. 예수님의 공생애는 광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광야도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거기서 그는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시고, 마귀에서 세 가지 시험을 당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 ...

11월5일 기도하시는 예수님 [3]

  • 2007-11-04
  • 조회 수 1745

2007년 11월5일 기도하시는 예수님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려 산으로 가시니라.(막 6:46)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민중들을 흩어지게 하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릴지 모르겠군요. 예수님은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셨겠지요. 그러나 조금 다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이건 그렇게 이상한 질문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일치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

11월4일 제자들과 함께 [7]

  • 2007-11-03
  • 조회 수 1723

2007년 11월4일 제자들과 함께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막 6:45) 오늘부터는 예수님이 바다(호수) 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런 이야기도 호사가들에 의해서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강조하는 단서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병행구인 마태복음의 보도에 따르면 베드로가 물위로 뛰어들었다가 빠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보다 더 좋은 믿음을 자랑하려는 듯 믿음으로 물위를 걸어보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는 ...

11월3일 오병이어 (100) [9]

  • 2007-11-02
  • 조회 수 1688

2007년 11월3일 오병이어 (100)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는 양날의 검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작은 데서 큰 사건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육체의 배부름에만 마음을 두는 인간의 본심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오병이어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이런 구조인 것 같습니다. 지식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지만 인간의 지적인 허영심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건강은 삶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도...

11월2일 오병이어 (99) [4]

  • 2007-11-01
  • 조회 수 1569

2007년 11월2일 오병이어 (99)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여기서 아무래도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조금 구별해서 설명해야겠군요. 천국(天國)을 그대로 풀면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뉘앙스에서 차이가 납니다. 천국이 종말론적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입니다. 쉽게 말해서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을 천국이라고 한다면,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평화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에도 이 두 단어가 조금 씩 구별...

11월1일 오병이어 (98)

  • 2007-10-31
  • 조회 수 1381

2007년 11월1일 오병이어 (98)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이 세상에서 먹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기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향한 민중들의 요구도 그치지 않을 겁니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요구하는 민중들에게 오늘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요? 조금만 기다리면 하나님이 만나를 내리듯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었듯이 놀라...

10월31일 오병이어 (97) [2]

  • 2007-10-30
  • 조회 수 1716

2007년 10월31일 오병이어 (97)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땅의 양식이 아니라 영을 배부르게 하는 하늘의 양식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다른 게 아니라 똑같은 의미라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을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고, 대충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설마 실제로 그렇다는 말은 아니겠지 하고 조금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이론적으로 알아들어도 실제 ...

10월30일 오병이어 (96)

  • 2007-10-29
  • 조회 수 1459

2007년 10월30일 오병이어 (96)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오병이어의 기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하늘의 빵을 구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상충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기도가 가르치는 일용할 양식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먹을거리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은 생존의 아래층으로 마음을 낮추라는 말씀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이미 그것을 허락하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생존의 ...

10월29일 오병이어 (95)

  • 2007-10-28
  • 조회 수 1488

2007년 10월29일 오병이어 (95)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오병이어에 관한 요한복음의 후일담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건을 전합니다.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빵인 만나는 먹어도 죽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인 예수를 먹으면 영원히 산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더 이상 따르지 않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추종자들, 즉 민중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생명...

10월28일 오병이어 (94) [2]

  • 2007-10-27
  • 조회 수 1472

2007년 10월28일 오병이어 (94)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막 6:43,44) 요한복음이 보도하는 오병이어 사건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기적을 본 사람들이 예수를 억지로라도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예수는 그들을 피해서 산으로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민중은 빵을 원합니다. 그것도 아주 풍족한 빵을 원합니다. 빵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가 곧 그들에게 메시아입니다. 민중들의 이런 욕구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이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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