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1), 3월23일

조회 수 4914 추천 수 111 2006.03.23 23:15:14
2006년 3월23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복음 1>

한국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같은 이름의 교단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복음’을 간판으로 내건 교단도 있습니다. ‘복음교회’가 그 교단입니다. 복음교회는 그렇게 보수적이지만도 않고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만도 않은, 비교적 건전한 교단입니다. 복음을 간판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복음교회보다 훨씬 더 복음이라는 단어와 밀착된 교단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가 그 교단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회도 나뉘어졌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정확한 명칭을 기억할 수는 없네요. 어쨌든지 이 하나님의 성회는 이런 공식 명칭보다 소위 ‘순복음 교회’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순복음이라는 속칭이 그들의 공식명칭을 제치게 된 이유는 조용기 목사님이 시무하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순복음이 교파 이름인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순복음이라는 이름이 재미있군요. 세상에 가짜 복음도 있을까요? 가짜 복음은 아예 복음도 아니지요.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진짜 순복음교회’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겁니다.
신앙적 성향을 가리킬 때 우리는 ‘복음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전통을 지키고 전도를 중요한 사명으로 인식하며, 사회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신앙인들의 태도를 복음주의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본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복음주의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보수주의, 또는 근본주의입니다. 모든 부분에서는 이런 보수주의와 맥을 같이 하지만 비교적 에큐메니칼 운동을 향해서 열린 태도를 보이는 이들의 신앙적 태도를 ‘신복음주의’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개인구원에 치우친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사회구원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과 어느 정도 대화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1970대 말,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던 세계대회 이후로 그들은 사회정의에 대해서 발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앙과 신학의 경향을 보수와 진보,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만 ‘복음주의’를 앞세워 교통정리하는 건 개념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는 로마 가톨릭을 제외한 모든 개신교회를 ‘복음교회’(evangelische Kirche)라고 부릅니다. ‘에방겔리쉐 키르헤’가 문자적으로는 복음교회지만 실제로는 ‘개신교회’(protestant)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왜 그런 식으로 부르게 되었는지는 교회사의 관점에서 연구해야겠지요. 엄격하게 말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도 역시 복음주의 교회입니다. 마가복음이 첫 구절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고 여기는 기독교 공동체는 그 형식이 어찌 되었든지 기본적으로 복음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바람을 독점할 수 없듯이 복음을 독점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예수 사건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며, 또한 진보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복음은 일정한 경향을 보이는 교회가 소유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일 뿐입니다. 실제로 복음에 충실하기 원하는 사람은 바로 이 사실을 전폭적으로 믿고 따르는 일에만 전념해야합니다. 만약 보수적인 교회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복음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교회의 전통을 복음적으로 수호해야만 합니다. 만약 진보적인 교회가 복음적인 교회로 남으려면 복음의 방식으로 오늘의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서로의 특성을 살려 복음의 능력을 확장시켜나간다면 서로 적대적으로 싸울 일이 없겠지요. 그런 날이 언제나 올까요?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요? 복음적인 보수와 복음적인 진보가 서로 신뢰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이길용

2006.03.24 20:03:56

성결교도 몇년 전 까지는 복음교회였죠. 그 영어명칭이 evangelical church였으니까요. 그러다가 holiness라는 단어가 첨가되긴 했지만. 그 단어가 가지는 서구권에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때문에 고심을 했겠지만..

여하튼 여전히 한국에서 복음은 애매함과 넓은 오지랖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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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6.03.24 23:38:22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결교회는 원래 영자로 holiness church로 쓰다가
미국의 성결파와 구분한다는 뜻으로
앞에 evangelical을 붙인 거요.
그래서 지금은 아마 evangelical holiness church로 표기하는 것 같소이다.

이길용

2006.03.25 00:32:09

예 처음엔 holiness church로 쓰다가, 미국쪽 성결운동파와 구별하기 위해서 evangelical church로 사용하다가, 그럼에도 성결교회라는 정체성을 명칭에 둬야 하지 않는가란 소리가 나와 다시 evangelical holiness church가 되었죠~ 대략 20여년전만해도 evangelical church라고 사용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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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07.04.02 22:12:17

일본 animation 중에 "신세기 evangelion"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미래가 배경인데 정기적으로 "사도"라 불리는 괴물이 나타나서 도시를 공격합니다
그 "사도"를 막기 위해 전투로봇을 만들어 대항하구요
제일 처음 나타났던 사도의 이름은 "아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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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이길용

2007.04.02 22:46:06

PSTM님 제가 에바평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나보군요~ ^^;;

제 개인 블로그에 오시면 에바평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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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07.04.03 12:16:17

헉!!!!!!!!!!!!!전혀 몰랐습니다!!!!!!!!

찾았습니다 회원 정보에 있군요
근데 다음블로그나 네이버블로그가 아닌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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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 (1) 4월4일

  • 200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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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4일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5) 요단강 (1) 4절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5절에 따르면 세례를 베푼 곳은 요단강입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의 북쪽에 위치한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서 남쪽의 사해에까지 흘러드는 물줄기를 요단강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요단강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사진을 통해서 대충 감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한강이나 낙동강같이 큰 강을 끼고 살...

회개의 세례, 4월3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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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3일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4) 회개의 세례 요한의 이름에는 대부분 ‘세례’가 따라다닙니다. 요한은 세례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흡사 예수님에게 ‘그리스도’라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처럼 사용된 현상과 비슷합니다. 요한에게 세례자라는 이름이 따라붙은 가장 기초적인 이유는 요한의 주요 활동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데에 있겠지요. 예수님도 그에게 세례를 받을 정도니까 그 당시에 요한의 세례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베풀어졌는지, 그리고 그가 베푼 세례의 권위가 얼마...

회개의 세례, 4월3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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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 4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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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2일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4) 세례 요한 공관복음서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복음서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설명하기 전에 세례 요한을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심지어 세례 요한의 출생설화를 예수님의 출생설화와 연결시키기까지 합니다. 요한은 이미 가임기가 끝난 엘리사벳의 몸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는 동정녀인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여섯 달 간격으로 태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 뒤로도 요한과 예수...

세례 요한, 4월2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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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1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주의 ‘길’ 이사야가 말하는 주의 ‘길’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이 일어나야 할 장소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와 함께 광야에 뚫린 길을 통해서 오십니다. 이사야의 선포에 따르면 하나님의 사자는 바로 그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마가는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서 이제 세례 요한의 사명을 설명하는 중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가야할 길을 준...

주의 '길' 4월1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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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31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3) 광야는 별로 낭만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그곳에는 티브이도 없고 노래방도 없고, 테니스장도 없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즐길만한 그 무엇도 없습니다. 광야는 동창회를 열거나 계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즐겁게 사는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입니다. 영적인 광야도 역시 재미난 곳은 결코 아닙니다. 그곳은 입담 좋은 부...

광야 (3), 3월31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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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30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2)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 40장의 말씀은 소위 ‘제2 이사야’의 글입니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부터 귀환하게 될 사람들에 관한 소식을 들고 광야를 가로질러오는 메신저를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 메신저는 ‘하나님의 대로(大路)’를 내는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그 사실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광야 (2), 3월30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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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1), 3월29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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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9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광야 (1) 마가가 3절에서 인용한 글은 이사야서 40:3절 말씀입니다. 물론 이사야의 글을 문자적으로 인용한 게 아니라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이사야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마가복음은 이사야의 글을 한 절만 인용했지만 누가복음은 이 뒤로 이어지는 이사야...

광야 (1), 3월29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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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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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주님의 사자(使者), 3월28일 [3]

  •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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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8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주님의 사자(使者) 만약 마가복음이 학위 논문이었다고 한다면 불합격 처리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엉뚱하게 말라기서의 글을 인용했으니까 말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아의 글이라고 인용한 본문 2절은 말라기서 3장1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글은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착각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굳이 구분해서 두 사람의 원작자를 거론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했...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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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의 글, 3월27일 [10]

  • 20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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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7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 마가는 지금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인용하고 있는 글은 분명히 이사야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마가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곤란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성서 기자들의 글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 문제입...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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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6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 1:2) <선지자 이사야> 요즘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각주를 달듯이 마가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의 속을 내가 뚫어볼 수는 없지만, 아마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독자들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선지자들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왕이며, 종교적인...

선지자 이사야, 3월26일 [1]

  •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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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3) 3월25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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