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89)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인자로서의 정체성과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선한 일을 행한 자와 악한 일을 행한 자라는 표현이 29절에 나온다. 인자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것과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의 관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늘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늘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이 말하려는 핵심은 선한 일과 악한 일을 구분하려는 게 아니라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을 구분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요한복음에는 끊임없이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요한복음이나 성경만이 아니라 신구약성경 전체와 인간의 모든 문명과 문화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생명을 얻는 것이 곧 구원이다.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는 생명을 잃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인간만이 그 사실 앞에서 전율할 줄 안다. 생명이 파멸되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도 그렇게 명확한 게 아니다. 모든 것들이 빨리 지나기 때문이다. 빨리 지나갈 뿐만 아니라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길도 없다. 정치적이거나 학문적인 업적을 남길 수는 있으나 그것도 그렇게 확실한 게 아니다. 후손을 남기는 것도 결정적인 게 아니다. 도대체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확실성을 잡기 힘든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실재(reality)를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화하고, 생겼다가 소멸되는 과정에 있다. ()이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창조와 종말이 하나다. 창조와 종말 사이에 수많은 것들이 나타났다가 없어진다. 그 전체가 실재다. 그 안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것들은 실재가 아니라 실재를 이루는 구성 요인일 뿐이다.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고 참여하는 생명 현상은 이런 점에서 실재의 한 부분인 셈이다. 이런 사정을 어느 정도는 인식할 수 있으나 총체적으로 포착할 수는 없어서 실재를 모른다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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