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의 일치

조회 수 3822 추천 수 0 2013.11.13 23:31:29

11월13일(수)

 

이번 주일 설교를 들은 어떤 신자가 하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무엇인지

딱히 손에 잡히는 게 없어서

집에 갈 때까지 계속 그걸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내 설교가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시 물어야겠다.

예수와의 일치가 도대체 무얼 가리키나?

 

우리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는 사람과 사람의 일치는

결혼관계나 친구관계 등을 가리킨다.

그런 관계는 다른 이들이 들어올 수 없는 특별한 관계다.

또는 자전거나 등상 동호회 활동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전거와 등산을 통해서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고유한 경험을 나눈다.

그 경험은 배타적이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부되어 있다는 뜻이다.

전자는 사람끼리의 관계이고

후자는 어떤 일이나 모임을 통한 관계이다.

 

예수와의 일치도 이런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예수라는 인격체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그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예수와의 인격적인 일치다.

결혼을 통한 사람들끼리의 일치는 분명하게 느끼지만

믿음을 통한 예수와의 일치를 분명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를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차원은 예수에게 일어난 사건과의 일치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우리가 그 하나님 나라를 희망한다면 그와 하나가 된 것이다.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믿는다면

그것도 역시 우리가 그와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전거 타기나 등산은 실질적으로 느껴지는데 반해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와 부활은 그렇지 못한 이유는

예수에게서 일어난 그 사건을 실질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럴 때 예수와의 일치가 추상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경구에 따른다면

기독교의 세계를 아는 것만큼 일치를 경험할 것이다.

대개의 기독교 신자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신앙생활이라는 게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교회 나가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직분 받고.. 등등.

예수와의 일치보다는 자기 삶을 위로해주는 어떤 조건에 심취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죽을 때까지 신앙의 진보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구원받는데도 지장이 없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 기독교 신앙의 진수에 이르지 못할 뿐이다.

내게 자신의 말을 전하신 그분은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은총이리라.


[레벨:18]르네상스

2013.11.14 10:49:28

저는 나름대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 또는 하나님과의 일치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소설이나 연극, 영화 등을 보면
주인공이 있죠.
우리가 소설을 읽더라도
그냥 읽는 것과 소설의 주인공의 인격과 삶에 감정이입을
해서 읽는 것과는 다른 것이지요.
내가 그 주인공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서
그 주인공이 기뻐할 때도 감정이입을 하고
슬퍼할 때와 분노할 때도 감정이입을 하면
내가 그 주인공과 일치가 되는 것이고
주인공이 겪는 사건과 경험에서도 역시
내가 그와 일치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거나 공부하고 묵상할 때도 역시
성경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또는 하나님의 존재와 행위 속으로 들어가서
감정이입을 할 때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그분이 겪으신 사건 하나하나와 나 자신이 철저하게 일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그 상황에서 어떠셨을까, 그 사건 속에서 어떠셨을까를 생각하면서
내가 성경이라는 드라마 속의 주인공 또는 주연배우인 예수님이 되어서
연기를 한다면 완벽하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예수님과의 일치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예수님을 흉내만 낸다면 그것은 프로의 연기가 아니라 아마추어의 연기이지요.
우리가 프로페셔널한, 정말 탁월한 연기자, 배우가 되려면 그 배역에 철저하게
감정이입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요즘 하는 말로 '발연기'(발로 하는 연기)가 되어 버립니다.

셰익스피어가 그런 말을 했다죠.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은 무대이고 인간은 배우라고요.
성경도 하나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의 세계와 역사는 무대이고
거기에 나오는 예수님과 그 외의 성경인물들은 배우라고 할 수 있고
성경이라는 연극의 대본을 쓰신 분은 하나님, 성경이라는 연극의 연출자는 성령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이라는 소설이나 드라마 혹은(성경 자체가 소설이라는 뜻이 아니라 비유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역사라고 하는(인생이라고 해도 좋고) 소설이나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 '인간'(또는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내가 성극무대 위에서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역할을 철저한 감정이입을 통해
탁월하게 연기할 때 예수님과의 일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에 성극공연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어서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3.11.14 22:18:13

ㅎㅎ 우리가 예수님의 역할을 연기(감당)하는 거는 아니고요.
그분을 따라가는 것뿐이에요.
그러나 뭐 일치라는 걸 비유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있겠군요.

[레벨:4]파란하늘지붕

2013.11.14 21:25:05

 언제나 짧지만 울림과 깊이가 있는 목사님의 묵상들을 훔쳐보듯 읽기만 하다 글을 남깁니다. 목사님의 비유를 읽고 있자니 왜 주님께서 ㄹ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비유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정말 보이지 않고 실재로 느껴지지 않는 세계가 어렴풋이 알게되는것 같으니 말입니다. 부부로 묘사된 예수님과나의 배타적 관계, 동호회로 묘사된 예수님경험. 상투적으로까지 들리는 '예수님을 그대는 인격적으로 만났는가?'라는 질문에 다시 겸허해집니다. 남은 시간동안 어린아이처럼 설레며 물가에서 한발씩 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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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11.14 22:21:37

안녕하세요, 파란지붕 님,
글을 남기려고 마음 먹기도 힘들고
마음 먹었다고 해도 실행하는 더 어렵지요?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상투적인 언어의 깊이를 새롭게 느끼셨군요.
앞으로 그런 경험들이 많아지기 바랍니다.
그게 신앙의 본질이랍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레벨:4]파란하늘지붕

2013.11.14 21:26:50

예수님과의 일치를 바라는 삶이 될수  있기를... 목사님의 묵상 늘 감사히 공유하고 있습니다. 

[레벨:5]존재

2013.11.15 11:19:18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맛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에 별 아쉬움이 없는 저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간헐적으로 목마름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이렇게 나마 글을 올리면서 생각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좋네요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삶을 확인하려고 하는지를 질문해 봅니다.

다 지나가는 것들 상대적인 것들을 절대화 시키고  거기에 매몰된 채 살아간 날들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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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11.15 22:54:42

존재님의 솔직한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별 아쉬움 없이 이 세상에 익숙한 채 살아도 큰 문제는 아닙니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실망한 채 그냥 돌아간 사람처럼
우리는 익숙한 삶을 포기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분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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