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가 자기의 존재 자체를 자기의 목적으로 할 때, 그것은 존재할 권리를 상실한다. 세속 사회는 교회를 필요로 한다. 교회가 사회와 분리된 하나의 제도로만 자리한 채 현재 세계 질서로 하여금 그 잠정성을 깨닫게 하지 않는다면 세속 사회는 세상의 방식으로 그 잠정성을 깨닫지 못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삶의 전체성을 지시함으로써 이 잠정성을 각성시켜야 한다. 이렇게 교회가 자기의 과업에 충실할 때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교회가 이 과업을 상실하면 세속 사회는 제도를 절대화하고, 자신의 잠정성을 망각한 채 인류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게 된다.(판넨베르크, 신학과 하나님 나라, 130 쪽)

 

     그대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는 초기 기독교 이래로 계속 문제가 되었소. 교회가 사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 교회는 정신적으로 사회보다 상위라는 주장, 교회와 세계는 일치해야 한다는 입장, 서로 역설적이라는 입장 등등, 여러 입장들이 긴장관계에 있었소이다.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복잡한 상황에서 개진되고 주장되었소. 한국교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생각은 교회가 세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일 거요. 가능한 대로 세상일에는 관심을 끊고 저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기다리는 주장이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그대로 진작 인정하실 거요. 다른 건 접어두고 창조의 관점에서만 본다 하더라도 이건 분명한 사실이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소. 문제는 어디까지 상관하는가에 있소. 모든 일에 간섭할 수는 없는 법이오. 그건 가능하지도 않소. 교회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 무엇이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세상으로 하여금 잠정성을 인식하게 하는 거요. 이런 설명이 좀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소만, 실제로는 단순 명료한 사실이라오. 이 세계에서 잠정적이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보시오. 하나도 없소. 한 인간은 70, 80년이면 끝나오. 국가도 영원하지 않소. 심지어 태양도 끝이 있소이다. 모든 것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평소에 별로 인정하지 않소. 인정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망각하오. 그래서 자신이 행하는 일들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거요. 교회가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은 바로 이런 망각과 착각을 교정하는 것이오. 예배는 그런 과업의 예전적 행위요.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리고, 사람은 모두 피조물과 죄인으로 자기를 낮추는 예배에서 인간과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가 잠정적이라는 사실은 두드러지오.

     사실 사회를 향해서 뭐라 말하기보다는 교회 자체를 말하는 게 더 시급한 것 같소. 교회의 망각은 더 철저하오. 세상은 망해도 교회는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고 있소. 그대도, 나도 잠시 후면 세상을 떠나야 하오. 잠시 후에! (2010년 5월1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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