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57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오직 칭찬만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 교회 앞에 열린 문이 있다네요. 천국 문입니다. 그 문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은 물론 문학적인 메타포입니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를 가리킵니다. 여기 ‘소리’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발성과 노래연습을 수행하듯이 합니다. 서편제를 반복해서 부릅니다. 보통 사람이 볼 때 그는 이미 소리를 무척 잘합니다. 그래도 본인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계속 연습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순간에 소리의 깊은 넓은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명창의 단계이고, 득음의 단계입니다.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들어가지 못하는 거는 천지 차이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밖에 머물면 평생을 가도 신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과 권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생명의 리얼리티로 경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도 겉으로는 얼마든지 멋진 신앙인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흉내를 내는 것이지요. 하나님 경험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흉내는 더 잘 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앞에는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닫힌 거겠지요. 우리가 열린 문 안에 들어섰는지, 여전히 닫힌 문밖에서 머뭇거리는지를 조금 더 진지하게 돌아봤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이 먼저 돌아보겠습니다.
"열린 문"
어떻게 해야 열린 문 안으로 쑥 들어갈 수 있을까요?
도서관에 갔다가 800쪽도 넘는 두꺼운 책 한권 모셔왔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문 안으로 좀 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이런류의 책에 눈길가게 하나 봅니다.
정말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공동번역 [3:8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네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너는 내 말을 잘 지켰으며 나를 모른다고 부인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너를 위해서 문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다.]
새번역 [3:8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보아라, 내가 네 앞에 문을 하나 열어 두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다.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문 밖에 있는 것을 좋아해서, 어느 중심에 들어가는 것을 즐겨 하지 않습니다.
요즘 말로 인싸(인사이더) 보단 아싸(아웃사이더)를 더 좋아해서요.
그 문에 들어가려면 이번만큼은 아싸의 마음을 조금 접고,
진정성의 인싸가 되기 위해 더 집중하고 노력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