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4일 - 버림과 따름 (2)

조회 수 3384 추천 수 44 2006.05.24 23:17:49
2006년 5월24일 버림과 따름 (2)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막 1:18)

막 1:18절 말씀에서 “따름”이 핵심이긴 하지만 “버림”과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어제 스쳐지나가듯이 지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서 자기 영혼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이외의 것을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본문의 묘사를 그대로 따른다면,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물은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도구였습니다. 매일 그물을 챙겨 들고 배를 타고 고기를 잡던 그들이 그물을 버렸다는 건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방식을 근본적으로 포기했다는 의미이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에게서 비범한 카리스마가 풍긴다고 하더라도 시몬 형제가 처음 만난 사람을, 연배도 크게 차이가나지 않는 사람을 따라나서기 위해서 그런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게 말입니다. 아마 앞에서 한번 언급한 것 같은데, 예수님과 시몬 형제와의 만남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일정한 정도의 기간 동안 서로 친분을 나눈 후, 서로 의기투합이 이루어져 시몬 형제가 예수님처럼 출가하게 된 것이겠지요. 성서는 예수님의 메시아성(性)을 확인해주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건의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읽는 우리는 당연히 그런 내막을 어느 정도 내다보아야만 합니다. 이런 예측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성서 텍스트를 생생하게 읽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문학적 상상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몬 형제가 그물을 버린 건 잘한 일인가요? 모르긴 해도, 시몬 형제들의 땀이 배어 있는 이 그물은 바로 그들의 가족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시몬 형제들에게 부양할 가족이 없다는 의미이거나, 혹은 그들이 가족 부양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는 의미이겠지요. 아무리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소중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허물어버린다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오늘 본문에서 조금 뒤로 가면 30절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이 걸린 사건이 나옵니다. 장가까지 간 사람이 그물을 버렸다는 건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그들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는 성서의 진술이 실제로 가족과의 인연까지 끊고 출가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훨씬 느슨한 출가일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유월절 예루살렘 방문 같은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만 예수님과 동행을 하고 평상시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일상적인 일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순전히 필자의 상상력에 불과하니까 그냥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어쨌든지 완전한 출가이든지, 느슨한 출가이든지 시몬 형제는 가족관계로부터 나사렛 예수 공동체로 자리를 이동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정황을 복음서 기자는 그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다고 묘사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사도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출가의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물을 버렸다는 것만은 기억해야 합니다. 구질서로부터 새로운 질서로, 땅의 질서로부터 하늘의 질서로, 가족 공동체로부터 예수 공동체로 삶의 중심을 이동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버려야 하는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각자 자기의 몫입니다. 자기가 선택하고 결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결단의 자리입니다.

주님, 우리는 나사렛 예수 공동체로 삶의 자리를 옮긴 사람들답게 살기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레벨:7]늘오늘

2006.05.25 17:43:53

어디론가 가는 길에서, 내가 할 일은 걷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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