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은 ‘최후의 심판’을 중심에 두고 있다. 복음서는 이를 여러 비유로 묘사한다. 마 24, 25장에 집중적으로 그 이야기가 나온다. 재난의 징조, 가장 큰 환난, 인자가 오는 것, 무화과나무,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 비유, 인자의 심판이 그것이다. 마 25:31-46절에 나오는 인자의 심판 이야기만 보자. 인자(人子)는 세상 마지막 때 세상에 와서 심판하실 자를 일컫는 묵시사상 용어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으로 놓는다. 오른편으로 분류될 이들은 구원받을 자들이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 왼편으로 분류될 이들은 심판받을 자들이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심판의 기준은 지극히 작은 자를 어떻게 대했느냐, 하는 점이다. 즉 마지막 심판은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실행된다는 사실이다.
최후의 심판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느 미래의 한 시점에 득달같이 일어나겠지만, 지금 여기에 선취의 방식으로 발생한다. 심판은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왔다. 종말은 3절에 나오는 거듭난다는 말을 설명할 때 짚은 것처럼‘이미’(already)와 ‘아직 아님’(not yet) 사이에서 변증법적인 긴장을 보이는 것과 같다. 이런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추상적으로 들릴 것이다. 지금 이미 심판이 비밀스럽게 일어났다는 말은 예수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4). 나병이 치료된 열 명 중에서 한 사람만 예수에게 와서 감사의 예를 바쳤다는 이야기에서 예수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 이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으로서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하고 나중에 늙어 죽겠지만 구원받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런 해방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실 최후의 심판을 갈망하면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