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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본 어린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참 묘한 동물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 세상에는 묘한 동물이 많다. 그것들도 다 나름으로 존재이유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생김새도 묘하긴 마찬가지다. 행동거지도 묘하다.
발이 없어서 여행도 할 수 없다는 어린왕자의 말을 듣고 뱀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나 당신을 멀리 데려다 주는 일이라면 배 같은 건 나를 당할 수 없지.” 그리고 어린왕자의 발목을 칭칭 감았다. “내게 닿는 녀석은 누구나 그 놈이 태어난 흙으로 돌려보내주지.” 어린왕자가 지구에서 지낼 것을 걱정하면서 뱀은 또 말한다. “만일 네가 네 별이 못 견디게 그리워져서 돌아가고 싶어지면 언제나 내가 널 도와 줄 수도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어린왕자는 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수께끼는 내가 전부 풀어.”라고 뱀은 말한다. 그 뒤에 이 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죽어야 지구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자기의 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다. 신학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면 된다. 그 먼 여행, 그 마지막 여행에서 우리를 도와줄 이는 뱀이다. 그 뱀으로 인해서 죄가 들어왔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니까. 어떻게 보면 뱀은 절대적인 순간에 우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뱀도 존재이유가 있는 셈인가? 악도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가?
ㅎㅎ 성경보다 <어린왕자>에서 은혜를 더 받으면 곤란한데요.
어린왕자와 같은 인문 문학의 경지를 뛰어넘는 게 성경이거든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린왕자는 성경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거지요.
셍텍쥐페리가 인정하든 않든지요.
시민권 등등의 발언은 성속 이원론이거나 내세주의가 아니라
이 세상과 그 생명의 신비를 뚫어보는 통찰력이에요.
그런 영적 통찰력이 교회에서는 무시되고
욕망이나 허무의 도구로 사용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이건 분명한 겁니다.
<어린왕자>가 대학생 철학도라고 한다면
<성경>은 원로급 철학자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눈꽃 님은 아시겠지요.
좋은 한 주간이 되시기를...
어린왕자와 같은 인문 문학의 경지를 뛰어넘는 게 성경이거든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린왕자는 성경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거지요.
셍텍쥐페리가 인정하든 않든지요.
시민권 등등의 발언은 성속 이원론이거나 내세주의가 아니라
이 세상과 그 생명의 신비를 뚫어보는 통찰력이에요.
그런 영적 통찰력이 교회에서는 무시되고
욕망이나 허무의 도구로 사용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이건 분명한 겁니다.
<어린왕자>가 대학생 철학도라고 한다면
<성경>은 원로급 철학자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눈꽃 님은 아시겠지요.
좋은 한 주간이 되시기를...
뱀은 지혜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성서에서는 악을
상징하기도 하구요. 이 땅에서의 삶에 지혜는 절실히 필요한데 ...지혜와 악의 공존, 선과 악 어찌보면 선 속에 악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여행, 나그네 길, 본향,시민권이 하늘에 있다.
이 기독교 세계관이 어쩜 이 세계를 긍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지요?
긍정할 필요가 없고 가치 없는 세계는 결국 니힐리즘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왜 이세상을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땅에 충만하라! 번성하라! 성서를 읽다 보면 자체 모순점을 여러 군데 발견하게 되는데 당혹스럽죠
무조건 올씀니다. 지당하십니다. 할 수 없어져 버린 나!
이건 인문학 때문인거 맞습니다. ㅎㅎ
성서, 신학 서적이 그것들이 삶과 유리된 고서, 논리적 관념론이 아닌 삶을 풍요롭게하고 세상을 긍정할 수있는 것이 되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고민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