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11)

조회 수 3192 추천 수 0 2013.07.06 23:09:44

 

누가복음의 ‘가난한 자’와 마태복음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다르게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들을 가리킨다. 가난은 삶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팔복이 선포되던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고아, 과부, 종들은 가난한 자를 대표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에 망명 온 이들이나 빌붙어 사는 이들도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삶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노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도 막혀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완전한 변혁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도 역시 자기에게 생명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비록 경제적인 가난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가난한 자다.


여기서 삶의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게 어떻게 보면 자신감의 결여, 패배주의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런 심리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요소는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 세상의 그 어디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구원과 위로를 기대할 수 있었다.


신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마태의 ‘심령’은 훗날 추가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추가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마 11:5절에 따르면 예수에게 일어난 메시아적 표징은 분명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마태의 팔복도 역시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는 뜻이다. 당시에 가난한 자는 의로운 자와 비슷한 의미였다. 사 61:1절의 가난한 자는 사 66:2절의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는 자’와 같았다. 에두아르트 쉬바이처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 2이사야 시대에도 여전히 가난한 자들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나라를 빼앗기고 이방에서 살고 있는 전 이스라엘을 위한 용어였지만, 후세에는 점점 더 사회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이 용어를 통해 지도층과 구별되었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과 의로운 자들은 대체적으로 병행 개념이 되었다.”(국제성서주석, 마태오복음 90쪽)


오늘 누가 가난한 자인가? 성서가 말하는 가난한 자를 오늘은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구조 자체가 성서시대와 오늘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난한 자나 부자나 모두 경제 논리에만 묶여 있다. 2천 년 전과 비교한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상대적으로 부자들이다. 더 큰 부자들을 부러워하면서 돈에만 자기의 영혼을 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성서가 말하는 가난한 자가 될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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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굶주린 늑대 

2013.07.08 10:41:21

다른 주석 등에서 신약시대 사회 분위기 중에 
'부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 이라는 사회인식이 어느정도 있었다는 해석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가난한 자와 의로운 자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시대상황이 잘이해되지 않습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가치관 차이이거나
학자들의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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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7.08 23:49:56

부자가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들이
당시 여러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런 표현이 구약성서에도 나옵니다.
유대교와 구약성서에 다양한 사상이 나와요.
서로 반대되는 것들도 있고요.
거기에는 통속적인 것도 있고,
영적으로 깊이 있는 것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역사적 검증을 통해서
살아남거나 발전되기도 하고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흐름 중에서 가난한 자가 의로운 자라는 생각이
구약성서에서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제 신약성서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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