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25일 포도원 농부 비유(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을 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12:4,5)
비유의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포도원 주인이 처음에 보낸 종은 농부들에게 크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습니다.(3절) 주인은 다시 종을 보냈습니다. 처음에 보낸 종이 무슨 실수를 해서 얻어맞았는지 모르니까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일을 처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농부들은 두 번째 종에게 더 심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가장 위험한 머리에 상처를 내고 모욕을 주었다고 합니다.(4절) 주인은 다시 종을 보냈습니다. 주인도 끈질깁니다. 농부들은 한술 더 떴습니다. 그 종을 죽였습니다. 그 뒤로도 많은 종들을 때리거나 죽였다고 합니다.(5절)
우리는 이 비유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는 거겠지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불순종은 당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종말까지 계속되는 문제 아닐는지요.
불순종은 인간에게 숙명과 같습니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카인은 이런 불순종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인간의 불순종이 이렇게 원죄처럼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기심, 생존 본능, 악한 문화 등등, 나름의 대답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대답 중의 하나는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은 우상숭배로 인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이 만든 것을 절대화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런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면 결국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생명의 소리를, 그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부름을 거부하게 되겠지요.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참 생명의 소리를 보내지만, 인간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의 틀에 얽매어,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하며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로 통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확신해 버립니다.
마치 지나친 열정이 영성으로 둔갑하는 것처럼.
이제 내일 Q.T가 기다려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