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예루살렘 성전에서(3)

조회 수 2004 추천 수 0 2009.02.03 23:33:32
 

2009년 2월4일 예루살렘 성전에서(3)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11:16)


예수님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기물을 둘러엎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복음서의 보도 중에서 유일한 폭력 사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니는 것을 막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에 나섰을까요? 어제의 묵상에서 설명한 대로 성전의 시장이 참배객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몰랐을 리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종교행위의 본질과 비본질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성전의 본질은 제사행위에서만 확보됩니다. 하나님에게만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종교의식인 제사행위가 바르게 실행되지 않는다면 성전의 존재의미는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본질이라는 게 당연하게 유지되는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본질은 아주 쉽게 비본질에 흡수되거나 농락당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본질에만 천착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예배를 생각해보십시오.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그 실질을 느끼고 경험하는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예배의 매너리즘에 쉽게 빠집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온갖 시청각자료를 사용하거나 현대음악을 사용하지만, 그것으로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의 본질로 들어가려면 각각의 예배 순서가 갖는 영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전체 예배의 통전성을 확보하는 게 일차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는 마치 클래식 연주회장에서 교향악단의 연주에 몰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선 음악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연주자들이 음악을 제대로 연주해야겠지요. 이런 과정이 없으면 연주회장에서 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좁니다. 예수님의 폭력은 성전의 본질에 대한 경각심에서 나온 게 아닐는지요.


[레벨:4]알고파

2009.02.04 10:00:25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너무나 큰 의미와 권능이 부여된 성례전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금 개신교는 성례전적인 힘은 아주 무시되고 설교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천주교 졸업미사를 참석한 적이 있는데
의미를 잘 살리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에 익숙한 사람들 생각은 또 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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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9.02.04 13:39:42

라라 님, 알고파 님,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지금 우리가 정확하게 그려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예수 상을 말하고 있지요.
이런 점에서 성서 해석은 성서신학만으로는 부족하고
조직신학적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답니다.
그것은 곧 기독교적 형이상학이거든요.
두분의 대글을 통해서
나도 많이 배웁니다.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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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9.02.04 23:47:00

성전은 제사행위의 장소인데
요한복음에서 성전과 예수님 자신의 육체를
동일시 하기까지하신 것을 생각해본다면,
십자가 사건 직전에
제사의 본질에 대한 완벽한 일치를 향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사, 성전, 성전된 자기 육신...
그 명확함 앞에서는 추호의 여지가 없는..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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