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9일 예루살렘 성전에서(8)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11:19)
위 구절은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 일행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조용히 빠져나갑니다. 이런 장면만 보면 차라리 낭만적입니다. 날이 저문 시간에 잠잘 곳을 찾아, 추측컨대 베다니로 나갔을 테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 단초가 바로 예루살렘 성전 청결사건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크게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 바로 이 사건이었으니까요. 이 사건은 보기에 따라서 폭력적이기에, 예수님의 다른 사건과 구별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전체 삶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구했습니다. 그런 삶은 결국 권력과 탐욕의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충돌은 반드시 기득권자들과의 사이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습니다. 민중들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빌라도가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을 때 민중들은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을 열광적으로 따르던 이들도 자신들의 기대에 예수님이 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되었을 때 쉽게 떠났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 구한 예수님에게 성전청결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매매행위를 본 이상 거기에 항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일종의 배수진을 친 것입니다. 당대 최고 종교권력과 맞섰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할 뿐입니다.
모든 직분을 벗고 노숙자로 나섰다구요.
잘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우 짐 진 자들아 ..."하는 주님의 말씀에서
그 짐은 종교를 가리킵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것 처럼
동굴 안에서 발에 쇠사슬을 매고 살면서도
그것이 운명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한국교회에 적지 않을 겁니다.
대안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당분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큰 일이 날 것은 없어요.
피곤하다면 쉬시고,
어쩌다 주일 저녁에 시간이 넉넉하면
서울 샘터교회 예배에 참석해보세요.
천안이면 1시간이면 넉넉히 오시겠군요.
여러 교회에도 가보시고,
성당의 미사에도 참석해보세요.
절의 예불은 어색할 겁니다.
그냥 산에 놀라가는 셈 치고 가보는 건 괜찮겠지만요.
교회 봉사를 그만 둬도 하나님에게 벌 받는 일이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ㅎㅎ
가까운 곳에 함께 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가 눈에 뜨이길 바랍니다.
주의 은총이.
제가 아닌 것에 아니오 한 것인지... 그냥 치기인지... 두고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