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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월27일 포도원 농부 비유(6) [4]

  • 2009-02-26
  • 조회 수 1940

2009년 2월27일 포도원 농부 비유(6)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우리가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12:7) 이야기의 긴장감이 강도를 더해갑니다. 계약 조건에 따라서 일정한 양의 포도나 그 값에 해당되는 돈을 받으려고 온 주인의 종들을 두드려 패기도 했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주인의 아들이 왔습니다. 농부들은 이렇게 작당을 합니다. 주인의 아들은 포도원을 유산으로 받을 자인데, 그를 죽이면 유산이 자신들의 것이 된다고 말입니다. 이런 말을 나눌 때 그들의 눈빛이 어땠을...

2월26일 포도원 농부 비유(5) [7]

  • 2009-02-26
  • 조회 수 1898

2009년 2월26일 포도원 농부 비유(5)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면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12:6) 어제의 묵상에서 저는 우상숭배가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의 원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어떻게 작용되었는지를 보충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를 자칫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이런 질문부터 시작해도 좋아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예언자들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복적으로 우상숭배에 떨어진 이유가 무엇...

2월25일 포도원 농부 비유(4) [2]

  • 2009-02-24
  • 조회 수 1890

2009년 2월25일 포도원 농부 비유(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을 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12:4,5) 비유의 분위기가 고조됩니다. 포도원 주인이 처음에 보낸 종은 농부들에게 크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습니다.(3절) 주인은 다시 종을 보냈습니다. 처음에 보낸 종이 무슨 실수를 해서 얻어맞았는지 모르니까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일을 처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농부들은 두 ...

2월24일 포도원 농부 비유(3) [4]

  • 2009-02-23
  • 조회 수 2117

2009년 2월24일 포도원 농부 비유(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12:3) 예수님의 비유는 거의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합니다. 겨자씨 비유(막 4:30-32) 큰 잔치 비유(마 22:1-10), 잃은 양의 비유(눅 15:1-7),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눅 15:11-32) 등이 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직접적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곧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존재하...

2월23일 포도원 농부 비유(2) [1]

  • 2009-02-23
  • 조회 수 1838

2009년 2월23일 포도원 농부 비유(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12:2) 어제 저는 이 비유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이 오늘의 다국적 기업가와 비슷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오해가 있을지 몰라 우선 보충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요즘의 다국적 기업가라고 한다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본문의 포도원 주인도 그런 이미지로 보는 건 잘못입니다. 비유는 비유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오히려 (소작) 농부들의 잘못이 핵심입니다. 이 비유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픽션인...

2월22일 포도원 농부 비유(1)

  • 2009-02-21
  • 조회 수 3944

2009년 2월22일 포도원 농부 비유(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12:1) 포도원 농부 비유는(막 12:1-12)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또한 도마복음서(65)에도 나온다고 하는데,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도마복음의 이야기가 전승사적으로 앞선다고 합니다. 어쨌든지 공관복음서의 세 이야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비슷합니다.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었다는 ...

2월21일 권위에 대한 논쟁(7) [2]

  • 2009-02-20
  • 조회 수 1720

2009년 2월21일 권위에 대한 논쟁(7)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1:33) 대제사장 집단은 예수님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그들이 처음에 던진 질문에 대해서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위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뭔가 권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주 시시하게 끝났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종...

2월20일 권위에 대한 논쟁(6) [2]

  • 2009-02-19
  • 조회 수 1723

2009년 2월20일 권위에 대한 논쟁(6)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11:32)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대제사장 집단은 세례 요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요한의 세례가 하늘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해야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합니다. 그들의 딱한 처지에 동정을 느낄 ...

2월19일 권위에 대한 논쟁(5) [3]

  • 2009-02-18
  • 조회 수 1775

2009년 2월19일 권위에 대한 논쟁(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11:31)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하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대제사장 그룹은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뻔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던 거지요. 그들이 왜 세례 요한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한 설명이 복음서에는 없습니다. 원래 요한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명문...

2월18일 권위에 대한 논쟁(4) [2]

  • 2009-02-17
  • 조회 수 1628

2009년 2월18일 권위에 대한 논쟁(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11:30) 예수님이 되던진 질문은 요한의 세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질문이 좀 엉뚱하게 들립니다.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권위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되묻는지요. 보기에 따라서 대답이 궁하니 질문을 피해보려는 요령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는 서로 물고 물리는 알력관계가 내재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예언자입니다. 그는 철저...

2월17일 권위에 대한 논쟁(3) [3]

  • 2009-02-16
  • 조회 수 2079

2009년 2월17일 권위에 대한 논쟁(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11:29)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고위 성직자들과 권위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이 의존하고 있는 권위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되묻겠다고 하십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면 자신도 대답하겠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회하는 방식으로 반응하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예...

2월16일 권위에 대한 논쟁(2) [4]

  • 2009-02-16
  • 조회 수 1856

2009년 2월16일 권위에 대한 논쟁(2)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11:28) 산헤드린을 분점하고 있는 세 정파의 대표자들인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건네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이런 일’이라는 것은 좁게는 성전청결이고, 넓게는 공생애에서 행한 모든 일을 가리키겠지요. 이런 질문으로만 본다면 그들도 예수님의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권위를, 즉 자격을 문제 삼는 겁니다. 당신은 대제사장...

2월15일 권위에 대한 논쟁(1) [2]

  • 2009-02-14
  • 조회 수 1885

2009년 2월15일 권위에 대한 논쟁(1)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11:27) 마가복음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세 번째로 들어간 셈입니다. 첫 번째는 나귀를 타고 들어가신 것이며(막 11:1절 이하), 두 번째는 성전 청결 사건이 일어날 때이고,(막 11:15절 이하) 위 구절 이하가 세 번째입니다. 상황이 점점 험악해집니다. 급기야 세 번째 입성에서 사단(事端)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거닐 고 있을 때 대제...

2월14일 짧은 어록(3): 용서 [4]

  • 2009-02-13
  • 조회 수 2355

2009년 2월14일 짧은 어록(3): 용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11:25) 용서에 관한 위 구절은 기도에 관한 일련의 가르침인 마 6:5-15절의 마지막 대목에도 나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가는 긍정문으로, 마태는 부정문으로 진술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내용은 똑같습니다. 용서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실천...

2월13일 짧은 어록(2): 기도 [8]

  • 2009-02-13
  • 조회 수 2692

2009년 2월13일 짧은 어록(2): 기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4) 기도에 관한 위 구절의 원래 형태는 다음과 같은 마태 21:22절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기도에 대한 어록이 전승의 과정을 통해서 복음서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한 것입니다. 어쨌든지 위 구절은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진술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

2월12일 짧은 어록(1): 믿음 [8]

  • 2009-02-11
  • 조회 수 2269

2009년 2월12일 짧은 어록(1): 믿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11:23) 무화과나무 사건 이후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세 어록을 열거합니다. 믿음(23절), 기도(24절), 용서(25절)가 그것입니다. 이 어록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에 가깝습니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어록은 마가복음 이전에 형태를 갖춘 것들인데, 공관복음서에서 각각 독립적인 전승의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먼...

2월11일 하나님을 믿으라 [4]

  • 2009-02-10
  • 조회 수 2216

2009년 2월11일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11:22) 무화과나무가 말랐다는 베드로의 보고를 받은 예수님은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아침에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가 저녁에 말랐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믿는 것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씀일까요? 그 대답은 어제의 묵상에서 이미 주어졌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다...

2월10일 무화과나무의 죽음

  • 2009-02-09
  • 조회 수 2116

2009년 2월10일 무화과나무의 죽음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11:20,21) 유월절 축제를 지키기 위해서 갈릴리에서 먼 길을 돌아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을 드나들고 있는 중입니다. 예루살렘에 딱히 머물 곳이 없었을 것이며, 대신 베다니에 숙소가 마련된 탓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저주를 내린 무화과나무는 베다니, 혹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중간에 있었을 겁니다. 예수...

2월9일 예루살렘 성전에서(8) [7]

  • 2009-02-09
  • 조회 수 2177

2009년 2월9일 예루살렘 성전에서(8)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11:19) 위 구절은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 일행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조용히 빠져나갑니다. 이런 장면만 보면 차라리 낭만적입니다. 날이 저문 시간에 잠잘 곳을 찾아, 추측컨대 베다니로 나갔을 테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 단초가 바로 예...

2월8일 예루살렘 성전에서(7)

  • 2009-02-07
  • 조회 수 1622

2009년 2월8일 예루살렘 성전에서(7)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11:18) 성전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행동과 가르침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것만 보고 그들을 불한당이라거나 상대 못할 인격 파탄자라고 보면 곤란합니다. 그들은 당대의 최고위 성직자이며 신학자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모든 인품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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