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4일 제자들의 화

조회 수 1870 추천 수 5 2008.12.23 23:27:12
||0||02008년 12월24일 제자들의 화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10:41)

야고보와 요한의 행태를 보고 제자들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럴 만도 합니다. 하나는 열 두 제자가 똑같이 고생한 마당에 그들 형제들만 특별대우를 받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는 예수님의 상황이 제자들의 자리를 배려해줄만한 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행은 십자가형의 길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 명의 나머지 제자들이 화를 냈다는 건 아무래도 모양이 우스워 보입니다. 도반의 길을 간다는 사람들이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숨겨 줘도 괜찮을만한 이야기를 마가복음 기자가 이렇게 까발리는 것은 이런 문제가 단지 제자 공동체만이 아니라 마기복음 공동체에서도 여전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오늘 신자들 사이에도 ‘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우문입니다. 당연히 일어납니다. 요즘 서울의 아무개 교회가 기독교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교회 신자는 90% 이상이 대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적인 교회입니다. 담임 목사를 중심으로 지지파 당회원과 반대파 당회원들이 이전투구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많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화가 아니라 평화 공동체이어야 할 교회에서 이런 노골적인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는 교회가 본질로부터 이탈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여기서 신학적으로 무슨 거창한 본질을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최소한 섬김 공동체라는 본질에만 충실해도 잡음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신자들끼리도 섬김의 관계이어야하지만, 대사회를 향해서도 역시 이 섬김의 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에서 어떤 권한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섬김으로만 정체성을 유지한다면 서로에게 화를 낼 일은 없겠지요.

[레벨:4]알고파

2008.12.24 09:29:08

예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목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자기' 안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
우리는 너무 '자신'에게 사로잡혀서 살면서
이웃은 '의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한 환자를 진료 하면서
'나'에게 너무 사로잡혀 있는 나를 보면서
집에까지 와서도 계속 제 마음이 힘들었던 하루를 보냈습니다.
거창하게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기 전에
자기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12.24 09:58:24

그렇지요.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능력이 없답니다.
그런 마당에 원수사랑을 요구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더 막막하게 만들지요.
이런 말씀들을 그저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사랑의 명령은 우리의 영성을 오히려 파괴한답니다.
그건 그렇고,
자기 집중에서 벗어나는 게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며,
그것을 곧 자기 초월인데,
그것이 주어진 경지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사랑에 동참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자기 초월도 그냥 주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평생 도를 닦아도 다시 도로나무아비타불이 될 때가 많지요.
기독교 신앙은 그것이 밖에서 주어진다고 믿지요.
그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답니다.
profile

[레벨:10]slowneasy

2008.12.24 11:54:46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이타성에 이르는 변화의 과정을 전통 교리에서 성화라 하고... 목사님 말씀 중 구원이 밖에서 주어진다는 의미도 본인의 의지나 노력과 무관한 '순간의 변혁'이라기 보다는 알고파 형제가 고민하는 '의지적'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물론 의지적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행위 구원식의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감'에 기인한 것이어야 하겠구요... 제 생각이 맞는지요?

[레벨:4]알고파

2008.12.24 16:40:32

'자기'에게 얽매이지 않는 것을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정신과의사인 스캇펙이 사랑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많은 사람들이(바리새인 빼고) 예수에게 가면 예수께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시대의 세리나 창녀들이 어떻게 예수에게 갈 수 있었을까요?
분명 예수가 거창한 휴머니스트여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역사 안의 한 인간으로서 '자기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많은 것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기도 하지만
매 시간 하루 종일을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는데 사로잡혀 있는 것이 제일 문제인 것 같군요.
예수에게서 '된' 것이 나에게서 꼭 '안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예수에게서 이루어진 '구원' 나에게도 같이 이루어지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 바로 '믿음' 아닌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549 1월19일 아, 예루살렘!(2) 2009-01-19 1504
1548 1월18일 아, 예루살렘!(1) 2009-01-17 1712
1547 1월17일 믿음과 구원(4) [2] 2009-01-16 1729
1546 1월16일 믿음과 구원(3) 2009-01-15 1825
1545 1월15일 믿음과 구원(2) [4] 2009-01-14 1876
1544 1월14일 믿음과 구원(1) [3] 2009-01-13 1903
1543 1월11일 보기를 원하나이다(3) [2] 2009-01-10 1694
1542 1월10일 보기를 원하나이다(2) 2009-01-09 1879
1541 1월9일 보기를 원하나이다(1) [2] 2009-01-08 1921
1540 1월8일 맹인의 겉옷 [7] 2009-01-07 2467
1539 1월7일 주님의 부르심 [4] 2009-01-07 1866
1538 1월6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 [8] 2009-01-05 2013
1537 1월5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2) [9] 2009-01-05 1921
1536 1월4일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1) [3] 2009-01-03 2253
1535 1월3일 길가에 앉아서 [4] 2009-01-02 2114
1534 1월2일 시각 장애인 바디매오 [5] 2009-01-01 2425
1533 2009년 1월1일 여리고에서 [2] 2008-12-31 2000
1532 12월31일 대속자 예수(2) [5] 2008-12-30 2028
1531 12월30일 대속자 예수(1) 2008-12-29 1966
1530 12월29일 집사(4) [2] 2008-12-29 1805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