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3일 예루살렘을 향하여(3)

조회 수 1576 추천 수 1 2008.12.12 23:29:39
||0||02008년 12월13일 예루살렘을 향하여(3)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4)

수난을 묘사하는 단어의 강도가 에스카레이트 방식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능욕, 침, 채찍질, 죽임이라고요.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면서도 일인칭이 아니라 삼인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문장은 더 두드러집니다. “그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이는 곧 수난, 죽음, 부활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이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신경의 내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시비를 겁니다.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빌라도로 직접 이어지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말입니다. 나사렛과 갈릴리 호수 근방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죄인과 세리들과 어울리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그 역사적 예수 말입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사도신경의 신앙은 반쪽에 불과합니다.

만약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에만 초점을 둔 신앙의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옳습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이미 교부들도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가현설주의자들과 치열하게 투쟁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어느 한 순간에도 예수의 인성을 포기하거나 약화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역사적 활동에 대한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사도신경의 신앙을 배척한다면,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도덕적이고, 이타적이고, 혁명적인 휴머니즘의 화신이기에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그 구원을 성취할 분이기 때문에 믿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길은 곧 수난, 죽음, 부활을 통한 인류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그것 이외에 우리가 예수를 믿을 더 중요한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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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8.12.13 01:26:37

오늘 말씀을 묵상 하면서,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는가,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지금 어떤 답변을 드리며 사는가,
착잡한 마음이 들어서예요.
저는 아직도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주님은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라고 웅얼거릴 뿐입니다.
그것만은 분명하니까요.
그런데,가끔 이게 사도들의 고백을 흉내내고 있는 건가,
생각도 해 보지요.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요.
제가 가끔 그 분들의 신앙고백에 감격하니까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거,
이제 교리서 읽듯 말고 진짜 제 영혼의 고백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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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시와그림

2008.12.13 11:05:51

신앙고백에서의 예수의 실제성, 즉
실물예수의 부재에 관한 비판적 시각들이
현실 개혁의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정 부분 일리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개혁성향'에 마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현실집중, 더 실제적으로는 사실과 힘의 집중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이유입니다
나 역시 현실에 거주하고,
그리고 비틀어진 현실은 개혁되어야 한다고 동의하지만
근원적인 평안과 구원의 빛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으며
우리에게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은 실물예수만이 아닌
'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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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2.13 20:18:11

교리와 영성의 관계는 긴밀하면서도 멀 수가 있더군요.
교리는 영적 경험의 합리적 진술이고,
영성은 그것 너머의 어떤 절대적 생명에 대한 경험이거든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통치가
2천년 전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모든 삶을 몰입해가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그 사실, 혹은 그 사건으 어느 정도로 심층적으로
이해하는가 하는 게 관건이겠지요.
우리가 모두 위대한 음악가나 시인이 될 수 없듯이
뛰어난 영성가나 신학자가 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예술품을 깊이 감상할 수 있듯이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영적 깊이를 맛볼 수는 있겠지요.
교리화로 떨어지지는 말되
교리의 세계로 들어갈 필요는 있답니다.
대림절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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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8.12.13 20:23:33

신학적으로 좀 멋 있게 써 볼려고 노력하셨군요. ㅎㅎ
그래도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으니
점수는 깎지 않겠습니다.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에게도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
그 빛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지요.
그것만이 궁극적 구원의 토대인 거지요.
하나님의 행위 앞에서
우리의 행위는 초라하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히 인식하는데서부터
이런 은총의 빛이 열리겠지요.
대림의 빛이여,
우리를 비추소서.

[레벨:7]늘오늘

2008.12.13 22:56:45

참 이상한 것이, 신학 또는 교리에 대한 글을 읽으면,
또는 읽고나서 한 동안은, 기분이 별로(?)에요.
겉핥기 후의 떨떠름한 뒤끝 같은,, ㅋㅋ^^;
그래도 꾸준히 접하다보면, 동네바둑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오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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