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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008년 11월4일 이혼(2)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막 10:9)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위의 명제는 살인하지 말라는 명제와 마찬가지로 옳습니다.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살인과 단순히 관계를 끊는 이혼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고 말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이 두 사건은 엄청나게 다르겠지만 심층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혼도 역시 생명의 파괴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입니다. 이 특별한 관계는 그들 사이에서 후손이 나온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관계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생명과 직결됩니다.
이혼 가정에서 흔히 목격하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은 자기의 생명을 잃는 것과 같은 고통스런 경험을 합니다. 만약 그런 고통 없이 이혼의 상처를 쉽게 극복했다면 그는 아직 결혼이라는 사태의 깊이를 전혀 몰랐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또한 어떻습니까? 당장 갈라서고 싶지만 자식 때문에 참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혼 가정의 자식들은 겉으로 드러나거나 또는 드러나지 않는 영혼의 타격을 받습니다. 그것은 곧 생명의 결정적인 손상입니다.
오늘 이혼이 많다고 합니다. 황혼 이혼도 많다고 합니다. 피치 못한 경우는 제외하고, 이렇게 이혼율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혼의 의미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는지요. 결혼 자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결혼을 단순히 자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통로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으니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는 훨씬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막 10:9)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위의 명제는 살인하지 말라는 명제와 마찬가지로 옳습니다.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살인과 단순히 관계를 끊는 이혼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고 말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이 두 사건은 엄청나게 다르겠지만 심층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혼도 역시 생명의 파괴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입니다. 이 특별한 관계는 그들 사이에서 후손이 나온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관계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생명과 직결됩니다.
이혼 가정에서 흔히 목격하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은 자기의 생명을 잃는 것과 같은 고통스런 경험을 합니다. 만약 그런 고통 없이 이혼의 상처를 쉽게 극복했다면 그는 아직 결혼이라는 사태의 깊이를 전혀 몰랐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또한 어떻습니까? 당장 갈라서고 싶지만 자식 때문에 참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혼 가정의 자식들은 겉으로 드러나거나 또는 드러나지 않는 영혼의 타격을 받습니다. 그것은 곧 생명의 결정적인 손상입니다.
오늘 이혼이 많다고 합니다. 황혼 이혼도 많다고 합니다. 피치 못한 경우는 제외하고, 이렇게 이혼율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혼의 의미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는지요. 결혼 자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결혼을 단순히 자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통로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으니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는 훨씬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직 미혼이라 결혼에 대해 심각해지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