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 서기관 (1)

조회 수 2342 추천 수 28 2006.08.02 23:17:17
2006년 8월2일 서기관 (1)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막 2:6)

여러분은 중풍병자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서 전체가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하니까 일단 예수님이라는 대답은 빼놓고 생각합시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이 바로 주인공일까요?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주목하셨으니까 그럴 만도 합니다. 많은 설교자들도 이 네 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우리도 그 네 명처럼 고통당한 사람들과 영적 마비된 사람들을 주님에게 데리고 와야 한다고 설교할 겁니다. 저도 앞에서 이런 뉘앙스로 설명하긴 했지만, 이런 성서읽기는 그렇게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큐티’ 방식의 짧은 공부로는 허용될 수 있지만 중풍병자 이야기 전체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예배의 설교 주제로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중풍병자가 곧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그는 이 사건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결국 예수님이 그의 중풍병을 고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도 역시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거론하고 있는 서기관들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에서 다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로 어투를 바꾸었다는 사실과 민중들이 이 사건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그 단초는 예수님을 향한 서기관들의 딴죽걸기에 있습니다. 만약 서기관들의 이런 시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전승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사건이 치유 행위의 일반에 속하지 않고 개별 사건으로 전승된 이유가 서기관의 태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서기관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셈입니다.
서기관들은 오늘날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 율법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가르치던 그들의 머릿속에는 진리에 대한 규범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규범에서 볼 때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보여준 치열한 학문성과 구도적 자세를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학자들이 없었다만 유대교는 근동의 다른 종교와 혼합되고 말았을 겁니다. 이런 신학적 전통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삼위일체론, 종말론, 구원론, 칭의론과 성화론 같은 모든 그리스도교 교리는 신학자들에 의해서 현재의 형태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루터와 칼빈도 역시 신학자입니다. 어쨌든지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운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서기관들도 실제로는 유대교를 바르게 세워온 신학자들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기관들이 신학의 본질과 근원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 했다고 합니다. 중풍병자와 예수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을 직시하지 않고 이미 자신들의 생각 속에 정해진 틀을 진리 규정의 준거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신학과 교리는 어떤 생명 사건을 해명하기 위한 해석학적 틀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리 규정을 절대적인 규범으로 작용하게 되는 경우에 생명 사건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명색이 넓은 의미로 신학자 군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창조와 종말에 이르는 조직신학적인 틀로 무조건 신앙현상을 재단하는 잘못 말입니다. 설교비평 작업도 그 교회 공동체만이 안고 있는 고유한 영적 현실을 무시하고 공소한 이론적 논리에 빠질 위험성이 없지 않습니다. 발을 헛딛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 마음속의 생각을 너무 확신하지 말아야겠지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현실들을 조금 더 개방된 자세로 보아야겠지요.

주님, 나 자신의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기 원합니다. 아멘.

[레벨:11]권현주

2006.08.09 15:05:21

밀린 다비아 큐티를 다 읽고 이제 여기에 도착했읍니다.
오늘말씀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뒤에는 배를 버려야하듯이,
생명현상에 주목하기위해서는 해석학적 틀을 버릴때를 알아야한다는 말씀이신것같은데,
사랑은 깨뜨릴 때를 알아야한다는 "기독교사상"의 짧은 글과 연결지어 생각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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