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2일- 놀라움 (4)

조회 수 2347 추천 수 25 2006.08.22 23:41:28
2006년 8월22일 놀라움 (4)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막 2:12)

아래의 글은 <복음주의신학 입문>에 나오는 바르트의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그는 “신학적 실존”을 놀라움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봅시다.

누구든지 신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학에서 손을 떼고 편견 없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야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놀라움의 경험이 솟아올라서 더 이상 상실된 상태에 있지 않고 계속 강건해져야 한다. 얼마동안 놀라움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놀라움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 놀라움의 경험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욱 곤란하다. 이러한 놀라움의 경험이 신학자에게 잘 이해되지 않으면 그는 신학 이외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전에 만난 적이 없었던 정신적인 현상이나 자연현상에 부딪칠 때 놀라움의 경험이 일어난다. 이 사람에게 그 현상은 일단 비상하고, 낯설며, 새로운 것이요, 이 사람의 지금까지의 가능한 것에 대한 표상들의 한계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요, 이것의 기원과 본질을 그는 뒤늦게 물어볼 수 있을 뿐이다. ... 여기서 우리가 말하려는 놀라움은 일시적으로 비상하고 낯설고 새로운 현상 앞에서 느끼는 일시적인 당혹과 질문 그 이상의 것이다. 이 일시적 현상은 학문의 전개과정에서 조만간 평범하고 낯익고, 그래서 지나가버릴 것이며, 결국은 인간을 별로 놀랄 일도 아닌 다른 현상에 관심을 돌리게 만든다.
신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엄습하는 놀라움이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이 놀라움은 인간을 놀라움으로 몰아넣고 배움을 강요한다. 신학자에게는 어느 날 배움을 끝내고 비상한 것이 평범한 것으로,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신학은 낯선 것을 결코 지배할 수 없다. 만약 누가 이 낯선 것을 지배한다면 그는 신학을 아직 착수하지 않았거나 신학 하는 것으로부터 이미 벗어난 것이다. 신학의 건전한 뿌리인 놀라움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놀라움”(Verwunderung)은 “기적”(Wunder)란 단어에서 왔다. 신학에 손을 댄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적과 관계한다. 상식적인 경험의 규범과는 상충되는 그 무엇의 현존과 역사가 일어난다. 신학은 필연적으로 기적의 논리이지만 이것만이 신학의 전부는 아니다. 만약 신학이 자신의 대상을 자신의 범주에 마음대로 집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면, 그리고 이 대상에 의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외면한다면 신학은 신학이기를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신학자가 신학자 될 수 있는 것은 과격하고 근본적인 놀라움에 의한 것이다. 신학자는 이 은혜를 수용한 사람으로서 이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신학활동을 한다. 또한 이 은혜의 수용자는 다만 자신만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즐기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지 못한 사람은 신학에서 손을 때고 하나님에 대한 놀라움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놀랄 필요가 없는 다른 활동을 택하여 거기에 헌신하는 편이 더 좋다. 신학은 하나님의 기적에 대한 놀라움과 자신에 대한 놀라움을 피할 수 없는 학문이다.  

긴 글의 일부만 발췌했기 때문에 바르트의 생각이 충분하게 전달되지는 않았겠지만, 신학적 실존의 성격은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건 비단 신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문제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지금 이 순간 놀라움의 깊이에 들어간 것일까요?

주님, 놀라움의 신앙적 실존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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