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8일 뿌리는 자

조회 수 2830 추천 수 53 2007.02.08 08:46:05
2007년 2월8일 뿌리는 자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막 4:14)

이 비유에서 뿌리는 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씨와 밭입니다. 즉 말씀과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뿌리는 사람의 역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이동시키는 일은 바로 농부의 몫입니다. 그가 없으면 씨앗이 뿌려지지 않듯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말씀이 사람들에게 심겨질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뿌리는 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뿌리는 자는 전반적으로 보면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렇지만, 오늘은 두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밭을 고를 줄 아는 눈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비유니까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농부들이야 잘 알겠지요. 어쨌든지 이 비유에 나오는 농부가 밭을 골라가면서 씨를 뿌릴 능력이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을 비롯해서 사람은 사람의 중심을 뚫어보지 못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은 많을 겁니다.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기대했는데, 영 아니올시다일 경우도 있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전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만 볼 수 있습니다. 중심을 보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가능한대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겠지요.
씨 뿌리는 자의 무능력은 씨의 생명 현상과 연관됩니다. 그는 뿌릴 뿐이지 그게 어떻게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지 상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배타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기독교가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구원의 씨를 뿌릴 뿐이지 거기에 생명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일은 우리의 능력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뿌리는 일을 감당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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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4]임마누엘

2007.02.08 11:42:48

언제나 교리적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시다라고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의 사고 속에는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의 능력으로 구원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 처럼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날마다 Q.T에 은혜 받고 있습니다.

스티그마

2007.02.08 21:55:08

목사님,
뜻밖의 댓글로 충격을 받고 곧장 이리 왔습니다.
농담을 놓았던 게 누군가에게 분노를 촉발하였군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경솔한 농담...용서하십시오.(목사님, 명경지수 님)

대신 덕분에 저는 컴퓨터에 시간을 덜 빼앗길 것 같군요.
목사님의 저서 '법과 자유'를 읽다가 둘러보고 자야겠다 생각하고
아이가 잠시 컴을 비우길래 들어와 봤는데요.

앞으로 잡지를 통해서 뵙겠습니다.



스티그마

2007.02.08 21:56:00

낮에 올린 댓글은 지웠습니다.
용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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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08 23:38:19

임마누엘 님,
안녕하세요?
다비아가 편안한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큐티에 도움을 받는다고 하니,
저도 뿌듯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비록 짧은 글이지만 정성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드는군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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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08 23:40:59

스티그마라는 이름으로 바꾸셨지요?
왕년의 브레쓰 님이.
웬 충격?
지구가 박살나는 일 말고
그렇게 놀랠 일이 있나요?
농담입니다.
나도 충격받을 때가 많습니다.
아마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요.
아자!!!!!!!

[레벨:0]복음자랑

2007.02.09 07:37:35

내용 그 자체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말씀 묵상이라는 것이 성령님께서 그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려고 하는 바를 찾고
그 결과를 원리화하여 삶에 적용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사자의 느낌,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차라리 칼럼란에 적절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매일 묵상의 내용을 글로 올리시어 깨달음을 나누심에는 감탄과 감사,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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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09 08:05:25

복음자랑 님,
옳은 지적입니다.
삶의 적용이 별로 없지요?
그런 걸 제가 잘 할 줄 몰아서 그렇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려고 하는 바"를
제가 잘 알지 못하거든요.
이 글이 칼럼에 가깝다고 보시는군요.
그것 옳습니다.
칼럼은 에세이지요.
저는 지금 성서적, 신학적 에세이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유의 큐티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큐티와 달라서
조금은 어색하게 보이는 것 같군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 바르트를 흉내내고 있는 중입니다.
몇년 전에 바르트의 신학묵상을 공역했는데,
나는 그게 굉장히 은혜되더라구요.
그렇다!
신학적인 큐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거지요.
지금 그렇게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왕에 말이 오는 김에 한 마디 더 하지요.
저는 이 큐티가 모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젊은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성서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예를 들어보이는 중입니다.
목사는 그게 옳든 그르든 일단 성서텍스트와
영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구요.
좋은 하루.

[레벨:0]복음자랑

2007.02.10 08:52:35

성실한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제 글이 적용에 대한 강조라고 생각하시는 듯 하네요.
전혀 아닙니다.
저는 한 개인이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의 정의를 제 나름대로 옮긴 것입니다.
정의 자체에 적용이 포함된다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위의 비유가 밭을 골라가면서 뿌릴 능력이 없는 농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이러한 내용 자체가 저는 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기하고자 하는 바는 과연 본문이 그러한 내용을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냐는 것입니다.
정 목사님은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왠지 목사님께서 다른 분들의 설교를 비평하실 때에 주장하시는 것과는 다르다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설교 비평에서 주장하시는 바가 본인의 묵상에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물론 묵상을 설교와 동일한 비중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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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10 08:45:38

복음자랑 님,
말씀하신 부분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

[레벨:23]브니엘남

2007.02.17 11:25:13

씨 뿌리는 자는 여기서 주님이신데 중요하지 않다(?)

[레벨:0]쩡따

2007.02.17 20:15:22

목사님의 글을 가지고 새벽기도회의 말씀뼈대를 새우고 있습니다. 내용을 조금만 지금 내용의 두배정도로 늘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저는 독창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학적 깊이와 전망을 해 나가시는 목사님의 글을 많이 사용해 가고 있습니다. 표절은 아닙니다. 제가 완전히 소화해서 나가기 때문이고 출저를 밝힙니다. 꼭 내용을 좀더 늘려주세요.

[레벨:0]쩡따

2007.02.17 20:14:45

목사님, 설교비평을 김삼환, 소강석, 엄기호, 길자연, 스펄전, 칼빈설교, 웨슬리, 오정현, 강준민, 피종진, 이종윤등은 안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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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17 23:35:28

정따 님,
저의 한구절 성서묵상을 좋게 봐주니, 감사합니다.
분량을 두 배로 늘리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기독교사상에 설교비평 연재를 끝낸 다음에나 가능하겠네요.
위에서 열거해주신 분들에 대한 비평은 차츰 보아가면서 다루어야겠네요.
목회에 승리하세요.
좋은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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