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일
보좌
어제 설교 본문은 사 6:1-8절이었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단어들이 여럿 나온다. 보좌, 옷자락, 스랍, 합창, 숯불 등이다. 이런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낯설다. 샤갈이나 피카소의 그림을 대하는 것 같을 것이다. 그들의 그림은 누군가 해석을 해줘야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도 그렇다. 특히 상징성이 강한 본문은 더 그렇다.
이사야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다.’고 말한다. 이런 본문을 아무 생각 없이 자꾸 읽다보면 하나님이 옥황상제처럼 높은 보좌에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실제로 왕이신 하나님의 오른 쪽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신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걸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저런 표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는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없다. 태양을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었지만 ‘내 얼굴은 못 보고 등만 볼 것이다.’는 말씀을 들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왜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가? 그래서 그런 묘사가 하나님 자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가? 착각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독자들의 읽기 능력이 성경을 따라가지 못해서 벌어지는 오해다. 이런 상징만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성경을 직접 읽거나 설교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텍스트 읽기 능력을 키우는 게 좋다.
하나님은 보좌 같은 데 앉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어느 한 공간에 자리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본문이 보좌 운운한 이유는 하나님의 존엄이 지극하다는 사실을 묘사하려는 데에 있다. 여기서 다시 질문이 가능하다. 도대체 하나님의 존엄이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무엇 이런 식으로 진술되는 것들은 도무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존엄...
언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각자 갖고있는(떨치려 노력하지만)
그 어떤 상이 언어와 만나 때로 의미를 만들기도 하고, 변질시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고요.
어렵습니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