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7일 “귀신아!”(5)

조회 수 2199 추천 수 18 2008.08.16 23:12:16
2008년 8월17일 “귀신아!”(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우리는 성서가 왜 귀신을 거론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악한 힘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게 첫 번째 대답입니다. 이 대답은 제가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이지만, 여기서 다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겠습니다. 이런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들이 일단 여기에 연루된 개념들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힘과 존재입니다. 우선, 힘은 어떤 실체가 아니라 변화이며 움직임입니다. 실체가 아니지만 여전히 분명한 현실입니다. 일상에서 바람이 그런 힘인데, 우리는 단지 감각적으로만 느낄 뿐이지 그것의 속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고대인들에게는 악한 힘이 곧 귀신인데, 그 힘은 인격적이기도 했습니다.
존재 개념은 인문학적 훈련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포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존재는 우리가 만들고 소비하고 소유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에 의해서 계량되거나 개량되지 않는, 그것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설정하는 어떤 범주에 제한받지 않습니다. 노자의 도(道)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군요. 고대인들이 귀신을 이렇게 존재의 깊이에서 생각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게 왜 중요한지 아직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은 성서의 깊이에 들어갈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지 예수님이 “귀신아!” 하고 불렀다고 해서 귀신의 실재를 인정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귀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악의 존재론적 차원이 중요합니다. 그 당시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에게도 그 차원이 귀신 표상으로 나타난 것뿐입니다.

[레벨:22]머리를 비우고

2008.08.19 10:36:27

귀신아!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결국 존재는 하지만 실체는 없는 악의 표상이라는 건가요?
그 시대의 사고방식과 우리 시대의 사고방식이 차이가 나는건 알겠지만...
예수님께서 귀신아! 라고 부르셨던 그 존재는 여전한 것이겠지요?
계속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레벨:0]팡세

2008.08.19 12:26:26

영적 체험이 별로? 없으신 정목사님께 질문하시는 머리는 비우고 님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해 드리겠습니다. 방금전 저의 글에 대글을 올리신 분이신것 같은데요..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귀신의 실체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나..
성경에서 왜 그리 부분을 나면서 부터 귀먹거리요 앉은뱅이요, 군대 귀신이 들어가서 물에도 들어가고 불에도 들어가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아이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차지하며 성경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은 눌린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것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백성을 위해 예수 시대에 오셔서 그분의 권세로 그 악의 세력을 파쇄한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만이 그 고통을 알고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진실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귀신에 대한 정보나 지식 역시 중요하지만, 그 실체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워치만 니의 "영의 속한 사람" 이란 책을 읽어 보세요.. 확실히 영적인 세계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도로 불리운 20세기 위대한 전도자 -스미스 위글스워스의 책을 읽어보세요. 하나님은 여전히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겁니다. 오늘날과 같은 영적 무지와 무감각이 오히려 악한 세력이 더 기세를 부리고 있다는 반증일 것 입니다.
끝으로 저의 마음을 대신할까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아마도 에베소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실체가 없는 악의 표상이니 추상적? 으로 생각되는 그 무엇이라면 사도바울이 쓴 이 성경 구절은 과연 성령의 조명으로 만이 그 뜻을 알수 있을 겁니다.
신학박사라 하더라도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선 에베소서의 그 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로 해석하려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결론을 말씀드리면 성경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느니라." 고전 4:20

[레벨:22]머리를 비우고

2008.08.19 14:03:56

팡세님... 외국에서는요... 자국어로 논문을 쓰거나 글을 쓸 때는 사전을 옆에 두고 글을 씁니다.
자기가 쓰는 글이 정확한지 다른 사람들이 읽었을 때 내 이야기를 잘 이해 할 수 있는 지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선 아쉬움이 있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토론을 하는게 아니라 말꼬리 잡기 놀이를 합니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나 법정에서 다투는 사람들... 방송에서 하는 토론 프로그램들 보면 아시죠?

정목사님께서 이곳에 글을 올리시고 리플을 달 수 있도록 하고
또 일일이 답글을 주시는 것에 전 감사함을 느낍니다.

왜냐구요?
우리 나라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이기 때문에 토달면 안되는 거였죠.
또 너무 따지듯이 물어 보는 것도 믿음 없는 것으로 보이는 거구요...

또한 우리 나라 강단의 설교자들은 절대로 자기 말에 대해 비평적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 설교에 대한 칭찬만 들으면서 편식하다 보니 칭찬 중독증에 걸린거겠죠...(비약이 심했군요... )

아무튼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의견을 논하는 것은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정체를 밝히라는 식의 흑백논리를 내세우면 대화가 되겠습니까?
팡세님의 글을 보면 '뉴죠'(뉴스앤조이)에 글을 올리신 박창진 님과 별 차이가 없는 감정의 글입니다.

님이 주장하신 영적 체험과 하나님 능력을 이야기 하시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내 부모님이 나를 부양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모님께 통장의 잔액을 밝히고 나에게 고급 장난감을 사 주어서
능력을 보여달라고 우기는 자녀가 좋은 자녀인가요?

영적인 무지와 악한 세력의 기세 운운하시는데
그렇죠 기독교인의 삶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들고 나와서 결국 "혈과 육"이 아닌
"자기 주장과 합리화"의 싸움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요?

여기에 글을 올리고 리플을 다는 사람들이 어디 안티 기독교 회원이라도 됩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 끌어 들이려는 이단이라도 되냔 말입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만 바울의 그 말을 이해 할 수 있다는데 그 성령의 조명이란게 뭡니까?
그건 바울의 말이지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밝히고 싶은 악의 표상을 팡세님이 정확하게 아신다면
여기서 하나님 경험을 논하지 마시고 그 악의 세력들과 직접 싸우십시오.

영적 체험이 별로 없으신 정목사님이라는 말을 책임 지실 수 있나요?
그리고 머리를 비우고 님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해 드리겠다고 하셨죠?
제가 팡세님에게 충고 들을 일을 했나요?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을 찾는 사람에게 충고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끝으로... 저 워치만 니 별로 입니다. 개인적으로....

[레벨:20]신완식

2008.08.19 16:17:07

팡세님~~~
팡세님의 신학과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계신 분이
<워치만 니>시군요. 맞는지요?
<워치만 니>를 절대기준으로 삼아 신학자들이나 여타 신앙인들에게
평가를 가하는 일은 신대원 시험으로 치면 별로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하는 작업입니다.
저도 가끔 그의 제자 겪인 <위트니스 리>의 설교를 어느 영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신학적 기반이 너무 빈곤하다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두 분 다 지방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분들이지요?
지방 교회는 이단 논란에도 자주 휩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맞는지요?
저도 한 10여 년 전에 신대원을 졸업했는데 교회 사역 때문에
신학 공부를 더 깊고 넓게 못한 게 늘 애석합니다.
균형있는 신학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 팡세 님의 신학적 입장과 다른 분들과
보다 객관적으로 진지하게 대화하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팡세님께 아무런 인신공격을 가하신 적이 없는 정목사님께 이런 방식으로
비난을 하는 일은 신학생으로서, 후배 목회자 후보생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의
기본 도리로서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질 않는군요.
팡세 님의 영적 체험과 확신이 분명하면 그럴수록 상대에 대해 더욱 배려하고
관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지요? 사랑에는 인내와 온유 그리고 화평과 같은 열매가 있고요.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도 하고요.
가급적 천천히 가셨으면 하네요.
샬롬~~~

[레벨:0]팡세

2008.08.19 16:48:54

워치만 니는 절대기준도 아닙니다. 단지 영의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함이고 ,
글쎄요.. 추구하고 존경하는 인물로는 하나님의 사람.. A.W 토저 그리고 16세기 - 리쳐드 백스터와..마틴 로이드 존스 일겁니다.
그러나 이분들도 저의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절대 기준이 되야 되겠지요..


갈 1;10절로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은 신학적 논쟁이나 탁상공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의견을 나누고 고상하게 개인적인 신학을 논하는것에는 별로 흥미도 없고 저에겐 도움이 안 될 듯 합니다.
하나님의 대한 지식은 오직 성령의 조명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 /번지르한 신학적 언어로 스스로 만족하는 그래서 위안을 삼는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대한 앎은- 내 자아가 분쇄되어
영적인 통찰로서 그분을 알고 만나기 전까지는 신학과 이성으로는 절대 하나님을 논하지 마십시요..
아니 그정도로 라면 그 수준이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한가지 알려드리죠..
마치 파스칼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전 이성과 지식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결국엔 그 분앞에 엎드려 무릅을 꿇었을때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주셨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레벨:22]머리를 비우고

2008.08.19 17:07:47

글을 수정하셨네요? 아까 글 보다는 좀 정리를 하셨군요...
아까는 스스로를 능력의 종으로 밝히셔서 약간 당황했었는데..
그 글은 삭제 하시고 다시 쓰셨군요... 부탁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처음 예수님 믿으면서 귀신 쫓아 낸다하고 방언하고 그럴 때라면
팡세님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오고 아멘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왜냐구요? 님의 이야기같은 설교는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팡세님 이야기는 대부분 보수 강단에서 목사님들께서 열심히 하시던 말씀이란 말입니다.
전 그게 더 추상적이고 맹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번지르르한 신학적 언어', '자아분쇄', '영적 통찰을 통한 신 이해...'를 말씀하시는 분이...
신학과 이성으로 하나님을 논하지 말라뇨? 왜 그리 단정적이신지요?

논리도 없고 무슨 주장인지 모르는 님의 글에 제가 댓글을 단게 잘못 인거 같네요.
괜한 댓글 놀이 그만 하시죠...

[레벨:20]신완식

2008.08.19 17:17:05

팡세 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가 절대 기준이 아니라니 참 다행입니다.
리처드 백스터나 마틴 로이드 존스를 존경하시는 군요.
그분들도 당시에는 귀한 영향을 끼친 분들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팡세님의 댓글을 읽으니 예전에 이곳을 다녀간 여러 분들이 떠오르는군요.
그분들도 영적체험과 영의 세계에 대하여 참 많은 말씀들을 하셨지요.
제가 이곳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인상 깊은 일 중에 하나는,,,
한국 기독교인들과 아프리카 계통의 교인들이 영의 세계와 영적체험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언급을 하더군요.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영의 세계에 그렇게 밝다는 분들이
정작 현 역사와 세계의 흐름에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이랍니다.
지금 한국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고 성령의 능력을 행한다는 분들의 상당수가
미국과 한국의 보수세력을 거의 예찬하고 지지하다시피 하지요?
성경 구절을 들이대면서까지 그러시구요.
팡세 님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팡세님은 아직 젊으시니 앞으로도 신학과 신앙에 있으서 더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을테니 가급적 넓게 마음을 여시지요.
정목사님은 팡세님보다 20년 이상을 더 사시며 신학과 목회와 가르치기와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제가 여기서 지금 예의 따지자고 하는 건 아니고요.
아직 젊은 신학도이시니 조금 먼저 이 길을 걷고 있는 이로서 한 말씀 드리려는 것 뿐입니다.
좋응 하루 되세요~~

[레벨:0]팡세

2008.08.19 18:19:06

신완식님께 대글 드립니다.

먼저 저의 소개를 간략하게 해야 겠네요. 저는 35세의 자매 신학도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연륜으로 본다면 8-9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제가 다비아의 우상처럼 혹은 존경의 대상인 정목사님을 깍아내리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님을 밟힙니다.

저의 정직한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저도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것도 8월초이고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곳을 알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물론 정목사님에 대한 존경도 있었지요. 그분의 날까로움과 냉철한 이성이 조금은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능력을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마치 예수시대의 예수님의 귀신을 쫒아내는 광경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바알세블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쫒아낸다는 그 발언처럼..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훼방하는 성령의 훼방이라는 것을 정목사님의 뛰어난? 설교에서 조금 엿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목사님의 글은 엄청난 집중과 통찰로 보지 않으면 거의 그 미묘한 차이인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다비아 회원들은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아 제가 감히 직설적으로 대글을 쓴 가장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다비아 회원들님들은 우호시겠지요..정옥사님의 설교와 사고에 대해서요.. 저도 그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정목사님의 글에서 왠지모를 하나님의 계시와 능력에 있어서는 가히 영적이지 않은 면모를 종종 발견하게 되었기에 처음엔 그냥 잠잠히 잇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때에 진정으로 도래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성령의 놀라운 기름부음과 성령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 말씀 하는 시대도 이미 그 힘을 잃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그 깊은 뜻의 의미를 가리우는 이 시대의 바리세인들은 바로 지식과 신학이라는 잣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재는 그야말로 보수 세력이든 영적인 은사를 조롱하는 듯한 유식한 학자의 그 유창한 언변이라는 사실이 - 하나님을 더 기만하는 행위는 아닐까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나는 단지 모른다는 것을 알뿐이다. 무지의 고백이야말로 앎의 시작은 아닐런지요...

인간적으로 갖는 정목사님의 존경심에 가리워져 하나님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훼손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두렵고 떨리는 성령훼방죄라는 것을 저는 엿보았습니다.

[레벨:20]신완식

2008.08.19 18:54:07

8월 초에 다비아를 처음 대하셨으면 아직 정목사님의 글을 그리 많이 읽지 않으셨겠군요.
여기 오시는 고참 회원들 중에 정목사님을 우상시 하거나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분들 거의 없답니다.
정목사님께서 그런 걸 바라시는 분도 아니시고요.
팡세님께서는 신대원 과목 수강하실 때 설마 교수님 강의 한 두 시간 들으시고 바로 그분을 평가하시진 않으시겠지요?
특히 자신과 견해와 이해가 다르다고 해서 교수님을 상대로 정목사님께 행한 그런 식의 발언을 하지도 않을테고요.
적지 않은 다비아 회원들은 이곳에서 하느님의 세미한 음성과 손길도 느끼고 그분의 능력도 더욱 확신한답니다.
여기는 신앙생활 50~60년 이상 하신 분들도 들어 오시고요
국내외 여러 분야에서 깊은 공부와 다양한 통찰력을 갈고 닦은 분들도 한 두 분이 아니랍니다.
저를 비롯한 그분들이 정목사님의 신학과 신앙에 현혹(?) 당하거나 미혹될 정도의 미성숙한 분들이 아니니 염려 않으셔도 좋겠습니다.
미안하지만 이제 신앙 연륜 8~9년 이면 보다 더 많이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대충 30년 정도 신앙생활 하고 있는 중이고 목회는 16년 남짓 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라서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다음 달이면 학생신분 벗어나는데 학생 신분을 한 30년 유지했네요.
저는 정목사님의 글 수 천 페이지 정독을 했고 책도 몇 권 읽었는데
팡세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문제 별로 느끼지 못했어요.
저도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인데요...
자매님께서 이 댓글에서 언급하신 영적 전쟁과 같은 문제들
제가 Th M 논문 쓸 때 좀 읽었는데요...
팡세님~~~
천천히 오세요.
하루 이틀 예수 믿고 말 것이라거나, 한 두 해 학교 다니다 말 것이라거나, 한 두 편 설교하고 말 것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장거리 운행실 거라면 숨고르기와 호흡조절이 참 중요 합니다.
급하게 뛰면 완주하기 어렵습니다.
35세시면 제가 공수부대 군목으로 낙하산 훈련 받았을 나이로군요.
그 때 저는 용기가 충천해서 지나가던 깡패도 패줄려고 했지요^^.
특전복에 베레모 쓰고 막가이버 칼 차면 조폭 행님들도 안 두려웠어요.
이제 세월도 지나고 인생의 맛도 조금 더 느끼게 되니
신앙과 신학에도 조금씩 변화가 오는군요.
제가 좀 더 성숙해지면 하느님을 보다 더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겠지요?
불혹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아직도 어깨에 힘이 들 빠져 걱정입니다.
팡세님의 젊음과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팡세 님의 삶에 주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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