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1일 믿음의 능력(6)

조회 수 2100 추천 수 19 2008.08.10 23:58:42
2008년 8월11일 믿음의 능력(6)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어떤 분들은 저를 향해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위 구절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냐 하고 조금 불편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요. 제가 드린 말씀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우리와 단절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에 의존해서 믿음에 연루됩니다. 믿음과 비슷한 차원의 ‘사랑’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랑의 능력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말하는 사랑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의 능력일 뿐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면 우리는 사랑에 묶인 자로서 살아갈 수 있겠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실제로 믿은,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믿음의 능력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능력입니다.
그 믿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을 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칭의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업적,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거꾸로 예수의 업적과 능력으로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을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칭의는 곧 무위(無爲)입니다.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고 예수만을 옳게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무위이무불위’라는 노자의 경구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칭의에 이르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레벨:22]머리를 비우고

2008.08.12 08:58:02

목사님... 저도 개인적으로 새벽기도할 형편이 못되어서...
매일 목사님 묵상을 읽으면서 '토'나 달고 있습니다. 불편하시면 용서해 주십시오.
마치 세상에 처음 나와 신기한 것을 구경하는 아이처럼...
다비안을 발견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좀 과장한다면 제겐 다비안이 보물창고 같습니다. ^^

그런데 오늘 '칭의는 무위'라는 말에 다소 어색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게 한국에서 보수 성향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의 정상 반응이겠죠?
기독교 외에는 너무 백안시 하는 배타주의가 교회에 만연했고...
승리주의가 덩달아 혼합되었으니 마치 타 종교나 다양한 사상이
'불가촉 천민'이라도 되는듯 배우고 가르쳤으니 말이죠...

목사님 설교 비평중에 종종 사용하신 문장...
"종말의 때 까지 모든 것은 잠정적"이라는 문구가 제겐 큰 자유함을 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믿음이 내게서 주님께 넘어간다고 생각하니....
참 편안해 집니다. 내가 무얼 하려고 버둥거릴 필요가 없어지는 느낌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믿음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 것'이라고 생각에 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볼 때 믿음은 아브라함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어주시고 설득한 것이라는 내용...
믿는 자는 하나님께 설득당한 자라는 표현에 적잖게 충격을 받았었는데...

목사님도... 역시 비슷한 말씀을 하시고...
설교집에서도 사랑이나 믿음은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것임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수들의 세계에서는 성향이 달라도 무언가 '통'하는 첩촉점이 있는 건가요?
하수의 생각이었습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8.12 11:07:47

머리를 님의 대글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박영선 목사님은 고수 맞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답니다.
그냥 신학의 문턱을 넘어선 정도이지요.
갈길은 멀지만
피곤하고 시간은 없고
그래서 대충 주막집에 머물러서
피로를 풀고 있는 나그네에 불과한 거지요.
머리를 님,
가능하면 본격적인 신학책을 읽어보실래요?
무거운 건 말고
개론적인 거라도 좋아요.
여기 '검색' 창으로 들어가서
'추천도서'를 치면 제가 뽑아놓은 도서 목록이 나올 겁니다.
좋은 하루.

[레벨:22]머리를 비우고

2008.08.12 13:10:55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1. 주막에 머물러 피로를 푸는 나그네... 라는 표현... 역시 고수의 멋진 표현입니다. ㅎㅎ

2. 추천도서 보고 기겁했습니다.
전 속물이라... 바로 시간과 비용부터.. 계산이 되는 못된 습성이 발동했습니다!!
우선... 제일 첫번 사도신경 해설 부터 보겠습니다.(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것 같아서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꾸벅!

[레벨:4]알고파

2008.08.12 14:14:15

머리를님 저도 이책,저책 기웃거려 봤는데요.
사도신경해설 같은 신학서적은 좀(저한텐 많이) 어렵더라구요.
용어도 어렵구요..
폴틸리히나 판넨베르크의 설교집은 어떨까요?
설교집은 그 사람의 중요한 신학적관점을
그나마 평신도가 듣기 쉽게 그리고 호소하는 형식으로 쓴 것인데요..
저는 폴틸리히 설교집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서
제가 아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레벨:18]눈꽃

2008.11.19 05:21:17

하는데(작위)에 인이박힌 인간이 무위를 연마하는일 ! 참 어렵습니다.
댓글을 남기고 싶은 마음을 참는일도 그중의 하나! "남겨주신....님에게 보탬이됨니다"
보탬이될려나? 해가 될려나? 고민하다가 흔적을남깁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항 일이 없느니라" 이말씀과 빌4장11~13절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풍부에 처할줄도...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의 말씀과 오버랩 되면서 몇년전 어느날 부터 나의 삶에 빌4장11절~13절바울의 고백이 나의고백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만 되면 삶이 늘 행복 할것이라는 생각을하며 살았는데 .................여기까지만 하고.....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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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9일, 수 마지막은 오는가? 기독교 신앙은 종말론적이다. 세상 마지막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믿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바로 종말이다. 그 순간에 심판이 일어나면서 세상이 완성된다. 막 13장은 바로 그것을 말한다. 설교 본문인 막 13:24-37절은 인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순간은 감추어져 있으니 모두 깨어 있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정말 세상의 마지막은 오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편으로 모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너무나 확실하다. 시작이 있었으니 마지막도 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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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수) 심판자 인자 사상과 재림 사상은 예수 안에서 하나다. 여기서 예수가 심판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인자로 이해한 근거는 예수가 종말론적 심판자라는 사실에 놓여 있다. 예수가 심판자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기독교인들에게 종말의 심판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죄의 심판’이라고 하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예수가 심판자라는 말을 예수가 사람들의 잘못을 일일이 캐내서 벌을 주는 존재쯤으로 생각하는 건 오해다. 오히려 반대다. 그는 우리의 잘못을 감춰주고, 우리를 의롭다고...

예수 어록(415) 요 21:17 내 양을 먹이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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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415) 요 21: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내 양을 먹이라. 예수가 베드로에게 내린 명령이 15절에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는 문장으로, 16절에서는 “내 양을 치라.”라는 문장으로, 17절에서는 “내 양을 먹이라.”라는 문장으로 나온다. 같은 이야기다. 예수에게서 이렇게 직접 “내 양을 먹이라.”라는 위탁 말씀을 세 번에 걸쳐서 들은 제자는 베드로 외에 없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실제로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간 인물이...

예수 어록(222) 요 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2019-12-26
  • 조회 수 1141

예수 어록(222)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는 양을 위해서 포식자와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목자처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의 싸움과 목자의 싸움이 같은 건 아니다. 목자의 싸움은 자기 양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지만 예수의 싸움은 인류 전체를 살리기 위한 싸움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면 인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기독교로 인해서 인류가 더 불행해졌다고 주장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전쟁과 식민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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