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귀신아!”(3)

조회 수 2207 추천 수 15 2008.08.14 22:58:46
2008년 8월15일 “귀신아!”(3)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 9:25)

위 구절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십시오. 한 남자 아이가 땅에 구르면서 거품을 흘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무슨 큰 구경이라도 난듯이 몰려들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이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하고 명령을 내리셨다고 보도합니다. 이게 과연 사실일까요, 아니면 마가복음 기자의 편집일까요.
이런 문제는 정말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선 신약성서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는지를 살펴보아야겠지요. 지금도 샤머니즘 전통에서는 이렇게 귀신을 다루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고대 유대사회에서는 이런 게 그렇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은 소위 잡신을 섬기는 샤머니즘 전통과는 달리 야훼 하나님에게 관심을 집중시켰으니까요. 구약성서에도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귀신아, 물러가라.” 하는 방식의 축귀의식은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예수님의 이런 명령은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는 이 간질병 아이의 운명을 영적인 차원에서 뚫어보시고 그것의 근원적인 치유가 바로 축귀라고 판단하셨겠지요. 특히 그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통치에 근거해서 아이의 삶을 파괴하는 근원적 악을 향해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저는 위의 구절을 더 이상 해석할 능력이 없습니다. 해석은 무슨 해석이냐, 기록된 그대로 믿으면 좋지,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그런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성서 텍스트를 해석해야만 합니다. 그런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여, 저희에게 말씀을 바로 이해하도록 도와주소서.

[레벨:2]라베뉴

2008.08.15 12:12:58

저별과 달님의 댓글을 읽고 상당히 흥미가 있어서
심령솔루션 엑소시스트 라는 방송을 다운로드 해서 봤습니다.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100퍼센트 리얼다큐멘터리에, 제보자의 이름이나 얼굴을 그대로 내보냅니다.
물론, 본인의 동의 하에서 말이지요.

의외로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전생이나 귀신에 대한 내용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습니다.
귀신, 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영혼 정도로 표현해야 옳을까요?
귀신이라는 존재는
악 이라기 보다는, 원한을 가진 영혼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듯도 합니다.

빙의라는 사자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는 현상...
을 통해서, 사람을 치유하기도 하고, 문제를 풀어가기도 하더군요.
정말로, 거라사의 광인처럼 수명의 영혼들이 한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더군요...

귀신이 진짜 있는가 없는가는 둘째치고서라도...
적어도 기독교 인이라면 원한을 가진 영혼이라는 뜻의 귀신이란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절대타자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영혼들은 절대타자가 아니기에 인간의 몸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전생이나 극락, 구름타고 하늘나라로 간다...
라는 표현은 고대인들의 메타포이기에 현대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찌 그렇게 빙의를 통한 망자들의 표현이 사복음서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표현과도 같은걸까요?

어쩌면, 고대인들의 표현에 대한 해석방법은 현대인이 그 당시의 리얼리티를 되살려내지 않고서도...
문자 그대로의 그 방식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활약했으리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이지요...ㅎㅎ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8.08.15 19:43:19

라베뉴 님,
이렇게 쓰셨군요.
<귀신이 진짜 있는가 없는가는 둘째치고서라도...
적어도 기독교 인이라면 원한을 가진 영혼이라는 뜻의 귀신이란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독교 인간론에서 몸과 떨어진 영혼은 없어요.
영육 이원론이 아니라 일체론이라는 거지요.
이런 이야기가 신학자들의 단순한 사변 논리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된답니다.
"원한을 가진 영혼이라는 뜻을 가진 귀신...."은
그것이 얼마나 분명한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는 둘째치고,
아예 기독교 신앙과는 상관이 없는 거랍니다.
위에서 빙의 체험을 제시했는데,
그것도 역시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
바울, 오리게네스, 어거스틴, 제롬, 루터, 칼빈, 바르트, 몰트만, 융엘, 판넨베르크 등이
이런 것에 대해서 왜 신학적 진술을 제기하지 않는지를
잘 생각해보세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같은 이들이나
존 웨슬리 같은 사람들도 이에 관해서 일언반구가 없어요.
제가 하는 한에서는요.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무의식과 심층심리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현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온전히 집중하는 삶의 태도랍니다.
그래도 귀신 현상, 빙의 현상, 퇴마사 현상 등이 사실이 아니냐, 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건 정신분석이나 심령과학자들의 관심 사항이지
기독교 신학자의 관심이 아니에요.
이런 문제는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천천히 가봅시다.
좋은 밤.

[레벨:2]라베뉴

2008.08.16 06:40:15

목사님 말씀은 곧
사실이냐 거짓이냐라는 문제를 넘어
어디에 집중하는가의 문제로군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4]저별과 달

2008.08.16 16:30:42

심령 솔루션 프로를 보면서 느낀것 중에 하나는,
어떤 영적인 세력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가족과 자기자신이 고통속에 보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그 고통의 짐을 덜어준것은 분명한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저렇듯 한국에서 그나마 알아 준다는 일류의 무속인들도 저런 어떤 좋지 않은
영적인 존재를 축귀 하는데 거의 하루가 걸려서야 간신히 쫓아 내는데
예수께서는 말한마디로 꾸짖어서 사람의 몸에서 빠져 나가게 하셨으니
이쯤 되면 무속인들이나,다른 종교의 심령사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것은
분명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귀신도 예수가 하나님께로 부터 온 자인줄 알고서 벌벌 떨었을 테고요)
이 세상에는 과학이나 의학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분야가 아직도 많은것 같습니다
이런걸 두고 영적인 일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레벨:1]머릿돌

2008.08.16 18:26:09

라베뉴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어디에 집중하느냐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정용섭목사님 말씀대로 해석되지 않는 것은 해석되지 않는채로 놔두겠지만
언젠가는 완전히 알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고 준비해야겠지요.
다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에 의존해서
꾸준히 말씀을 보고 우리 삶에 들어오도록 적용하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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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22) 요 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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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22)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는 양을 위해서 포식자와 싸우다가 죽을 수 있는 목자처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의 싸움과 목자의 싸움이 같은 건 아니다. 목자의 싸움은 자기 양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지만 예수의 싸움은 인류 전체를 살리기 위한 싸움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면 인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기독교로 인해서 인류가 더 불행해졌다고 주장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의 전쟁과 식민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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