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0일 열두 제자 (1)

조회 수 2286 추천 수 35 2006.11.30 07:27:13
2006년 11월30일 열두 제자 (1)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 3:13)

막 3:13-19절은 열두 제자를 부르고, 사명을 주신 사건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들이 바로 열두 사도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열두 제자, 또는 열두 사도에 대한 내용도 복음서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그런 건 조금 복잡하고, 현재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접어두기로 하지요.
우선 예수님이 왜 제자들을 부르셨는지 잠시 생각해보시죠. 이 문제와 연관해서 우리는 세 가지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 당시 랍비들의 일반적인 행태를 따른 것인지 모릅니다. 둘째,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열두 제자들과 교회는 뗄 수 있는 관계이지만 예수님이 교회를 목표로 그들을 불렀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런 조직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셋째,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내적인 동인을 제고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이 담지하고 있는 운동(運動)의 성격을 정확하게 잡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일종의 조직 확대로 생각하는데, 그것보다는 운동의 성격이 훨씬 강합니다. 복음을 조직으로 생각하면 교회성장을 위한 행정과 리더십이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지만, 운동으로 생각하면 변화와 개방과 개혁이 중심에 자리하게 됩니다. 물론 운동과 (기구)조직이 늘 대립적인 것을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조직을 필요로 하니까요. 다만 저는 오늘 우리의 교회현장에 복음의 운동 성격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열두 제자는 폐쇄적으로 자기 조직 안에 머물지 않고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운동)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이때 복음(유앙겔리온)은 명실상부하게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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