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조회 수 1399 추천 수 18 2008.04.12 01:04:06
2008년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만 본다면 그건 결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립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십자가 처형은 두 가지 결정적인 실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저주입니다. 구원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삶이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바로 그런 십자가 처형을 구원의 길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초기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전체 인류를 위한 대속의 길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말입니다. 과연 이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는 또 다른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길게 말씀드리기 힘들겠군요. 각자의 죄는 각자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지 어떻게 다른 사람이(예수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간단한 대답을 먼저 한다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다시 좁혀서, 우리의 구원이 대속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그냥 초월적인 능력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면 되지 굳이 대속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언가, 하는 질문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을 죄와 대립하는 분으로 진술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과의 일치를 구원이라고 한다면 죄의 용서는 구원의 전제조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인간이 죄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죽을 때까지 우리를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고, 거꾸로 우리는 그렇게 취약합니다. 이게 바로 인간실존이며, 삶의 딜레마입니다. 인간은 구원받아야 하는데, 구원과 대립하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의 실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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