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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21일 눈과 귀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막 8:18)
마음이 둔한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세 가지를 짚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직접 보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예수님의 실체가 아니라 허상입니다. 예수님의 행위에 나타난, 예수님의 인격에 나타난 메시아 성(性)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귀가 따갑도록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말씀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주신 누룩이라는 말씀을 직접 먹는 ‘떡’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각과 청각으로만 진리를 경험하기는 어렵습니다. 오죽 했으면 우리의 오감으로 경험된 이 세상이 실체 그대로의 세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는 철학 학파가 나왔겠습니까? 그들이 바로 후설을 태두로 하는 현상학파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과가 정말 사과일까요? 우리가 그것을 사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그리고 이 세상 안의 생명은 우리가 단정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기억력을 짚으셨습니다.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말입니다. 그게 어디 기억력 자체의 문제이겠습니까. 군중 급식의 실체를 모른다는 말씀이지요.
오늘 우리도 ‘떡’이라는 사건이 가리키고 있는 실체를 놓치고, 그 현상 자체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떡이 교회 공동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그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성령이 목표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집’이거든요.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막 8:18)
마음이 둔한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세 가지를 짚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직접 보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예수님의 실체가 아니라 허상입니다. 예수님의 행위에 나타난, 예수님의 인격에 나타난 메시아 성(性)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귀가 따갑도록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말씀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주신 누룩이라는 말씀을 직접 먹는 ‘떡’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각과 청각으로만 진리를 경험하기는 어렵습니다. 오죽 했으면 우리의 오감으로 경험된 이 세상이 실체 그대로의 세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는 철학 학파가 나왔겠습니까? 그들이 바로 후설을 태두로 하는 현상학파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과가 정말 사과일까요? 우리가 그것을 사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그리고 이 세상 안의 생명은 우리가 단정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기억력을 짚으셨습니다.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말입니다. 그게 어디 기억력 자체의 문제이겠습니까. 군중 급식의 실체를 모른다는 말씀이지요.
오늘 우리도 ‘떡’이라는 사건이 가리키고 있는 실체를 놓치고, 그 현상 자체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떡이 교회 공동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그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성령이 목표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집’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