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4일 질문(3)

조회 수 1554 추천 수 7 2008.03.23 23:14:51
2008년 3월24일 질문(3)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막 8:2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이건 질문이라기보다는 절망이나 탄식에 가깝습니다. 이런 탄식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제로 먹는 떡을 걱정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지난날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나게 해주셨습니다. 오천 명과 사천 명, 그리고 열두 바구니와 일곱 광주리까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무언가를 크게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직도’라고 말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아무리 정확한 질문을 던져도 그것을 받는 사람이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인 대화는 서로가 어느 정도 수준이 어울려야만 하지, 전혀 다른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가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른 차원이라는 게 단순히 지적인 것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소통 단절의 원인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메시아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평균 이하의 지능이나 인격을 가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에게 은폐된 메시아 성이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열두 바구니와 일곱 광주리는 그저 떡을 담아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하게 그 숫자로만 대답을 한 것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메시아 성을 알아볼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초기 기독교에도 계속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 어떻게 변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실증을 원하는데 교회엔 그것이 없었습니다. 메시아 성의 속성은 은폐였으니까요. ‘아직도’ 그것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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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1]

  • 2008-04-13
  • 조회 수 1241

2008년 4월1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예수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성서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롭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실제로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죄가 없다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입니...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1]

  • 2008-04-12
  • 조회 수 1281

2008년 4월1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요즘 제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 즉 죄, 대속, 하나님, 구원 등등의 개념들이 너무 관념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케리그마를 구성하고 있는 이런 개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통로였습니다. 이 개념들은 그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그대로 지켜오는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 2008-04-12
  • 조회 수 1409

2008년 4월12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사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만 본다면 그건 결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립적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십자가 처형은 두 가지 결정적인 실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죽음이며, 다른 하나는 저주입니다. 구원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삶이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는 바로 그런 십자가 처형을 구원...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2]

  • 2008-04-10
  • 조회 수 1513

2008년 4월11일 주는 그리스도시다(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명제에서 ‘예수’는 아주 명백합니다. 예수는 자연인이었던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던 1세기 초반에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나 30대 초반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흔했던 이름인 예수로 살았습니다. 그는 아주 정상적이고 아주 평범한 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의 ...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10]

  • 2008-04-09
  • 조회 수 2157

2008년 4월10일 주는 그리스도시다(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저주 받은 운명이 구원의 길로 인식된 이 맥락에 바로 기독교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걸 놓치면 기독교의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걸 잃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십자가가 축복의 비법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흔합니다. 예수 믿고 범사에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기복적인 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승리의 길로 생각합니다...

4월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7) [2]

  • 2008-04-08
  • 조회 수 1471

2008년 4월9일 주는 그리스도시다(7)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아는 게 여기서 중요합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의 사형법입니다. 십자가 처형 장소는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 통치하던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죄수들은 십자형의 나무틀을 지고 목에는 죄목의 명패를 단 채 그곳으로 끌려가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키케로(Cicero)는 라비리우스(Rabirius)를 위한 연설에서...

4월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6) [2]

  • 2008-04-07
  • 조회 수 1561

2008년 4월8일 주는 그리스도시다(6)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의 증거는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에 의하면 위의 주장은 당연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가 당할 십자가의 죽음을 뜯어 말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4월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5)

  • 2008-04-06
  • 조회 수 1393

2008년 4월7일 주는 그리스도시다(5)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어제에 이어서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어떤 분들은 “뜻은 무슨 뜻, 그것은 그대로 명백한 사실 아니냐?” 하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 자꾸 따져 묻지 말고 소박하게 믿으면 충분하지 않느냐, 하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그것을 분명한 사실로 믿는 것만으로 우리는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의 실질적인 의미를 가능한대로 깊이 아는 것은 우...

4월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4)

  • 2008-04-05
  • 조회 수 1853

2008년 4월6일 주는 그리스도시다(4)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공관복음서에 따라서 제 각각 다르다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공통되는 부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공관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의 대답이 원형에 가깝겠지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첨부한 마태복음은 아마 베드로의 권위가 막강했던 공동체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진술하는 누가복음의 노선은 마태...

4월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 [1]

  • 2008-04-04
  • 조회 수 1529

2008년 4월5일 주는 그리스도시다(3)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는 고백으로 제자 집단 중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약간 확장된 신앙고백을 제시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참고적으로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눅 9:20)라고 전합니다. 이 신앙고백의 중심은 똑같지만 그 표현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어제 묵상의 마지막 대목에서 짚었...

4월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

  • 2008-04-03
  • 조회 수 1700

2008년 4월4일 주는 그리스도시다(2)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여기서 ‘주’는 당신,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 대답에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의미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차이가 있습니다. 메시아는 유대의 정치적 차원의 구원을 강조한다면 그리스도는 유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구원...

4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 [7]

  • 2008-04-02
  • 조회 수 2207

2008년 4월3일 주는 그리스도시다(1)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2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접어두고,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말입니다. 며칠 전 이 단락을 시작하면서 저는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는 누군가, 하는 질문이 현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여전히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세상...

4월2일 예언자 전통에서 [1]

  • 2008-04-01
  • 조회 수 1302

2008년 4월2일 예언자 전통에서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막 8:28) 위의 구절에서 보듯이 제자들의 대답에 열거된 인물들은 한결같이 예언자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예언자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일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복음서가 일관되게 설명하듯이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뒤를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후계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거꾸로 요한은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그...

4월1일 도상의 물음(2)

  • 2008-04-01
  • 조회 수 1873

2008년 4월1일 도상의 물음(2)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27) 제가 기억하기로, 마틴 하이덱거는 철학을 가리켜 “사유를 향한 길”(Weg zum Denken)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길은 일종의 메타포입니다. 철학은 어떤 실증적인 대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의미한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이런 철학의 본질이 신학, 또는 신앙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논리적 진술인 신학은 영적인 길입니다. 길은 멈춤이...

3월31일 도상의 물음(1) [1]

  • 2008-03-30
  • 조회 수 1396

2008년 3월31일 도상의 물음(1)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27) 위 구절에 등장하는 지명은 가이사랴입니다. 가이사랴로 불리는 지명은 두 군데입니다. 사도행전에 자주 등장하는 가이사랴는 갈릴리 호수에서 서남쪽 지중해에 붙어 있는 해안도시입니다. 이곳에는 유대 지역을 식민 통치하는 로마군이 주둔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이사랴라고 한다면 바로 이곳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위 구절에서 빌립보 가이사랴로 일컬어진 그곳은 갈...

3월30일 예수는 누군가?

  • 2008-03-29
  • 조회 수 1566

2008년 3월30일 예수는 누군가?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27) 이제 위 구절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합니다. 이 단락은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는 누군가?” 신약성서에서 이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더 중요한 질문은 없습니다. 신약성서는 오직 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는 누군가, 하는 질문은 교회 안과 밖, 양쪽에서 제기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신자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누구...

3월29일 집과 마을 [2]

  • 2008-03-28
  • 조회 수 1481

2008년 3월29일 집과 마을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막 8:26) 장애를 치유 받은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이르십니다. 집으로 가라, 그러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의 집이 마을 밖에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이런 진술에는 마가복음의 고유한 신학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의 치유를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물론 가족입니다. 이 사람이 집으로 먼저 가야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집은 개인적인, 비...

3월28일 무엇을 밝히 본다는 것 [6]

  • 2008-03-27
  • 조회 수 1748

2008년 3월28일 무엇을 밝히 본다는 것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며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막 8:25) 예수님은 시각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이 장애인의 눈에 다시 안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장면도 개안수술 후에 일어나는 시력회복 과정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시력이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망막에 들어온 어떤 사물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인간의 몸은 그렇게 절대적인 게, 또는 순수 객관적인 게 아니기 ...

3월27일 무엇을 본다는 것 [2]

  • 2008-03-26
  • 조회 수 1558

2008년 3월27일 무엇을 본다는 것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막 8:24) 무엇이 보이는가 하는 예수님의 질문에 이 맹인은 두 가지로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과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개안수술 후에 붕대를 풀면 그 환자의 망막에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하는 것처럼 이 맹인의 망막에도 무언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직은 흐릿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본다는 사건 안으로 들어간 것이죠. 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상태가 무엇인지 잘 생각...

3월26일 치유자 예수 [1]

  • 2008-03-25
  • 조회 수 1425

2008년 3월26일 치유자 예수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막 8:23) 어제 저는 8장의 맹인 치료 전승과 7장의 언어장애인 치료 전승이 닮은꼴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인 막 8:23절이 7:33절과 거의 똑같다는 겁니다. 33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이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두 구절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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