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7일 두려워 말라.(2)

조회 수 1593 추천 수 1 2007.11.16 23:34:51
2007년 11월17일 두려워 말라.(2)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막 6:50)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이 있습니다. 작게는 일신에 관한 두려움입니다. 불치병에 걸리지 않을까, 사업이 망하지 않을까, 또는 자식이 공부를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조금 더 심각하게는 삶의 허무로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취로 우리의 삶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걸 이루어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은 무엇을 말할까요? 신앙은 어머니 품에 안겨서 어머니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신뢰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설득당해야만 신뢰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합리적인 설득이 없더라도 순수하고 절대적인 신뢰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런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신뢰의 근거들을 꾸준히 확보해 나갑니다. 그게 바로 신학 작업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합리적인, 또는 이성적인 신뢰의 근거를 확보했다고 해서 무조건 참된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여기서 신앙과 불신앙이 갈립니다. 하나님이 신뢰할만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결단과 헌신과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 단계는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혼자 죽어야 하듯이 혼자서 고독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경험입니다.
예수님은 놀라는 제자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예수님에게서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참되게 신뢰함으로 삶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레벨:5]희락당

2007.11.17 07:24:10

합리적인 신뢰의 근거들을 꾸준히 확보해 나가는 것이 신학의 작업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신학 작업 중에서 "꿈"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를 열었는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꿈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회 현장에서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꿈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통로라고 믿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꿈이 과연 합리적인 신뢰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 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특별히 합리적인 신뢰의 근거를 꾸준히 확보해 나가는 "신학 하는 사람들"은 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레벨:1]시리우스

2007.11.17 05:54:19

"혼자서 고독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경험입니다"

이 부분을 잘 하시는 분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닐까요.
(이 부분을 성령님이 하실수 있도록 열어 두는 작업)

결론 다 내서 아이들에게 밥 숫가락을 떠 먹여 주듯이,
하시는 분들은 많은것 같은데,
그것으로 끝, 생각 끝,나만 따라와.
그리고 일심으로 열을 맞추어 군중속의 나로 끌려가는 것이,
익명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것 같습니다.

하나님나라는 뒷전이고 내교회 내교단 내나라......
이래서 이곳이 귀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11.17 10:27:29

희락당 님,
프로이트가 말하는 꿈은 과학이고 역사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합리적인 사유방식이지요.
교회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꿈은 주술에 가깝지요.
성서에서도 꿈 이야기가 있긴 합니다만
그것은 고대 사람들의 특별한 표현 방식이거든요.
그걸 오늘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석학적인 토대와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꿈을 꾼다는 걸 분명하지요.
우리는 그걸 심리과학으로 받아드리면 됩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7.11.17 10:28:34

시리우스 님,
'익명으로 존재하게 만든다.'는 말이 촌철살인이군요.
남의 흉내를 내는 신앙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요.
좋은 주말.

[레벨:5]희락당

2007.11.17 11:18:56

솔직히 제가 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거론한 것은, 꿈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꿈 이야기를 고대 사람들의 특별한 표현 방식으로만 보기에는 현실과 거리가 먼 것이, 고대 사람들이 아닌 현대인들, 좁게 말해서 현대 기독교인들도 꿈을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통로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 또는 자신의 신앙을 이야기할 때 빼 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꿈 이야기 입니다. 꿈을 통해서 어떠한, 일종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계시가 어떠한 이단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건전한 요소가 분명 표출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꿈을 목사님이 말씀하신 "심리과학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현실성이 때로는 너무 강하다는 겁니다. 목회 현장에서 "무시"로 일관할 수 없는 꿈의 문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그리고 꿈에 관한 한, 물론 다른 것도 해당되는 것이 있지만, 고대와 현대를 가르는 표현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고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는(고대와 현대를 가를 수 없는) 인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하나님 인식의 한 방법,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통로는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꿈과 계시, 또는 꿈과 신앙이라는 주제로 깊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레벨:0]불꽃남자

2007.11.17 15:55:31

요즘 하나님 앞에서 혼자서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은혜를 누리고 싶어서 그래요.
저 스스로의 신앙에 대해 뒤돌아 보며, 검증해 나가고 싶기도 하고요.
어린아이가 아버지 이거 해 주세요. 이러며 때를 쓰기도 한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동을 하죠.
저도 다시 어릴때의 그 기분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때를 써보아야겠네요.

[레벨:2]야고보

2007.11.18 00:40:01

흠...프로이트 얘기가 나오니 한마디 보태야겠네요. 꿈이 희락당님이 말씀하신 그런 방식의 한가지 통로라고 생각하신다면 칼 구스타브 융의 책을 읽어보시구요, 그게 엉터리라고 생각되시면 뇌의 시뮬레이션 작용이라는 최신 신경과학 결론을 말해드리고 싶네요. 마지막 말씀처럼 좀 더 메타적으로 보신다면 꿈-계시-신앙 행태의 종교문화적인 연구도 재밌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의 꿈-계시-신앙에 대한 실재적 탐구를 하신다면 그 요소마다의 연결관계에 대한 논리적 기반에 대해 고민해보심이 우선이라 생각됩니다.

[레벨:0]청구

2007.11.18 06:58:12

하늘밑 위 물과 땅위 아래 물 사이에 창조된 궁창은 3차원의 세계인 현상계로 소멸의 대상이나
하늘과 물과 땅은 4차원의 실상계로 영존하는 영의 세계 (창세기 1장을 묵상)

땅의 정체성 (어두움 > 분열의 힘>육>사탄>미움>무지>지옥> 영벌)
혼돈 공허 흑암>신발에 묻어오는 먼지>본토 친척 아비집>혈통 육정 사람의 뜻>선악나무 뿌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자의 자리>속물> 죽은자

하늘의 정체성 (빛 > 융합의 힘>영>예수>사랑>지혜>천국> 영생)
의 평강 희락>무지개를 타고 오는 언약>공의 공평 정직>무지개 십자가 성결한 피>생명나무 뿌리
>화목 화합 화평>근신 절제 관용>길 진리 생명>온유 겸손 감사>예언 환상 꿈>성물> 산자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루기 위한 통로 ; 묵상과 기도와 찬양의 조화를 이룬 예배
묵상>암기>예언으로>성문계시>감동의 결과 엔도르핀 분비>믿음> . 의> . 길 (시편 1편 참고)
기도>암송>환상으로>은밀계시>감격의 결과 세로토닌 분비>소망>평강>진리 (시편 50편 100편 참고)
찬양>송축> . 꿈으로>의지계시>감탄의 결과 옥시토신 분비>사랑>희락>생명 (시편 150편 참고)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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