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7)

조회 수 1461 추천 수 4 2007.11.27 23:26:22
2007년 11월28일 마음이 둔하여 질 때(7)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어제 묵상의 마지막 대목에 나온 ‘구원의 현실’이라는 말을 보충해서 설명해야겠군요. 구원이면 구원이지 구원의 현실이 뭐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구원의 문제를 더 엄밀하게 규정하려면 이런 언어 조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현실(reality of God)이라는 말도 역시 똑같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분하기는 하지만 그 하나님을 더 엄밀하게 규정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현실이라는 언어 조합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보통 구원받는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확정된 구원의 실체를 머리에 그립니다. 마음의 평화, 죽은 후에 가게 된 천국의 호화로운 집 같은 그림이 담기겠지요. 구원은 그런 확정된 실체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궁극적인 어떤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곧 궁극적인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화이트헤드의 경구인 “reality is a process.”에 나오는 리얼리티를 가리킵니다.
도대체 구원의 리얼리티, 구원의 현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아직 확정되지 않은 채 종말로 열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의 현실들은 부분적이고 잠정적인 것입니다. 세상이 뭔지, 인간이 뭔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구원의 현실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잘못되었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예수 사건이 바로 구원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세계에서 명백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예수 사건으로 인한 구원의 현실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지금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얼굴을 맞대어 볼 때까지 우리는 구원의 현실을 우리의 삶에서 심화시켜나가야 합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면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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