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17)

조회 수 1219 추천 수 0 2019.09.25 20:12:05

113-21 성화의 길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으느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13절은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로 시작한다. 구약 선지자들이 기다렸던, 그리고 천사들도 알고 싶어 했던 복음을 당신들이 받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포함된 표현이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지금 자신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세상의 분주한 작동원리에 휩쓸린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열심히 업적으로 내면서 사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 돈도 벌고 사회적 신분도 높이고 명예도 얻는 삶을 가리킨다. 세상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 하고 민폐만 끼치는 인생을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서 인정받는 일에만 전념하는 인생도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모든 성취와 업적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신을 차린다는 말은 삶의 궁극적인 방향이 무엇인지를 늘 성찰한다는 뜻이다. 구도적인 삶을 가리킨다. 구도적인 삶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수도승들이다. 그들은 기도와 노동에 전념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영적 실존을 확인한다. 그들 중에서 순례길을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순례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다. 그런 일련의 순례길에서 그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게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낀다.

정신을 차리고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는 것이다.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예수 재림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예수가 재림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재림 신앙을 외면한다. 정통 기독교인이 아니라 이단에 가까운 이들 중의 일부가 재림을 기다린다. 199210월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믿었던 다미선교회가 그중 하나다. 그들의 시한부 종말 사상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지만, 재림을 향한 열정만은 높이 사야 한다. 재림 신앙을 신학적인 용어로 바꾸면 종말론이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종말론적인 공동체다. 종말론적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 때에 세상이 끝난다는 의미와 그 세상의 끝이 바로 완성된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은혜를 온전히 바란다는 말에서 은혜는 구원의 완성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명을 완성하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인생을 완성할 수 있으려니 하고 생각한다. 모두가 실패한다. 연봉과 높은 지위와 가정과 건강으로 우리의 인생이 완성되지 않는다. 피조물인 우리가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완성하신다. 그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루신 생명 완성을 실제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레벨:29]모모

2019.09.26 00:36:57

밑에서 세번째 줄 '하나님이 이루신 생명완성을 실제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생명완성'이 아닌지요?
'이루(신)'이 맞는것 같기도 하고요.

[레벨:29]모모

2019.09.26 00:55:09

재림과 '구원의 완성', '생명완성'은 동의어로 볼수있는지요?

[레벨:29]모모

2019.09.26 01:42:24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생명완성을 이루신 건가요? 아니면 재림때 생명완성을 이루시나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9.09.26 21:06:48

예, 예수에게서 일어난 구원 사건은 '이미'와 '아직 아님'이라는

두 가지 성격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여기에 왔으나 '아직'은 기다려야 하는 거와 같습니다.

설명이 너무 도식적이지요?

조금만 더 설명하면,

종말에 완성될 절대 생명이 예수 운명에서 선취적으로 발생한 겁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왜 절대 생명인가, 하는 질문은 아직 열려 있어요.

그 대답을 찾아가는 게 기독교 신앙이고 신학이겠지요.

고맙습니다. 모모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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