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간(10)- 비종교화(6)

조회 수 4606 추천 수 2 2010.05.25 23:26:46

 

바르트는 종교비판을 시작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 후로 종교 대신에 실증주의적 계시론에 기울어졌다. 거기에 기독교 신앙의 운명을 걸었다. 즉 처녀 탄생이나 삼위일체, 그 밖의 어떠한 것이건 모든 기독교 교리는 전체적으로 용인되든지 또는 전체적으로 거부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성서적인 게 아니다. 인식에도 단계가 있고, 의미의 중요성에도 단계가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의 비의가 세속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또 하나의 비의가 고수되는 것은 곤란하다. 계시 실증주의는 결국 신앙의 율법을 세우고 그리스도의 성육에 의해서 우리를 위한 것이 된 선물을 파괴함으로써 비의에 의존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종교를 대신하게 되고 -그것은 성서적인 것이 아닌데-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은 대체로 자기를 의지하고 제멋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것은 바르트의 잘못이다.(본회퍼, 옥중서간, 172, 3쪽, 1944년 5월5일 편지)

 

 

     바르트와 본회퍼의 신학적 기초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는 걸 위의 인용문에서 그대도 발견할 수 있을 거요. 키워드는 ‘종교’요. 바르트는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견해를 반대했소. 당시 유명한 신학 운동의 하나가 종교사학파였소. 태두가 트릴취라는 학자요. 소위 자유주의신학을 대표하는 학파요. 기독교를 종교 일반으로 보고 접근하려는 시도였소. 바르트는 기독교를 그런 종교사의 관점으로 보지 않았소. 철저하게 계시와 말씀 중심으로 보았소. 그것을 본회퍼는 계시 실증주의라고 불렀소. 이런 바르트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본회퍼는 바르트의 교회 중심적 계시실증주의로 인해서 결국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비판하오. 여기서 너무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미안하오. 다시 정리하면 이렇소. 바르트와 본회퍼가 기독교의 종교적 해석을 똑같이 비판하고 있지만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입장은 서로 다르오. 바르트는 세상과 좀 거리를 둔 채 계시와 말씀에 치중했다면 본회퍼는 이 거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거요. 본회퍼에게 성서와 복음은 세상의 그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소. 세속화 신학과 해방신학 등이 본회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오.

     이런 차이는 고백교회에 대한 입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소. ‘고백교회’는 히틀러의 나치즘에 대항하는 교회운동이었소. 바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여기서 활동했소. 우리로 말하자면 한국교회협의회(NCCK)와 같다고 할 수 있소. 이에 반해서 ‘독일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체는 히틀러 나치즘에 우호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모임이오. 우리로 말하면 ‘한기총’과 비슷하오. 오늘 한기총이 4대강 사업을 찬성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하오. 본인들은 인정하지 않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히틀러의 나치스를 지지한 ‘독일 그리스도인’과 비슷해보이오. 당시 독일 교회에서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소. 본회퍼는 처음에 고백교회 운동에 참여했지만 히틀러에 대한 저항이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고 점점 거리를 두었소. 이런 문제는 문헌을 다시 확인해서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약간 부정확한 대목이 발견되더라도 용서하시오. 고백교회는 주로 신학적인 저항운동이라고 한다면 본회퍼는 히틀러 제거 결사단체에 직접 참여한 거요. 이런 차이가 모두 신학에서 나온 거요. 내 입장은 본회퍼라기보다는 바르트와 비슷하오. 그대는 어느 쪽이오? (2010년 5월25일, 화요일, 꾸물꾸물한 날씨)


[레벨:5]오영숙

2010.05.27 16:23:19

저는 바르트 보다는 본회퍼 쪽인 것 같습니다.

 

[레벨:10]차성훈

2010.05.27 23:19:30

어떤 쪽을 취사선택하느냐보다는, '오늘날' 어떤 쪽이 더 '필요'한가가 보다 의미있는 질문이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긴, 바르트나 본회퍼나 내달려가는 '푯대'는 똑같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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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정성훈

2010.05.28 13:28:29

전 본회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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