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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0:17-22절에는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사태인지 절감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관복음에 다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와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뜻이다. 윤리적인 관점에 해당되는 질문이다. 이 사람은 유대의 지혜 전통에 따라서 성실하게 인생을 살았기에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눈높이에 따른 질문을 한다. 십계명의 몇몇 항목을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이것은 어려서부터 잘 지켰다.’고 대답했다. 규범적인 삶이 인간으로서는 최선이다.
목사들은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철저하게 지킨 이 사람과 비슷한 모양으로 목회를 감당한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회만 봐도 그렇다. 대다수 목사들은 매일 새벽기도회를 감수한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신자들이 많이 참석하면 그나마 낫지만 십여 명이나 더 적은 숫자가 모이는데도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한다는 것은 그것이 철저하게 규범적으로 몸에 베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심방도 그렇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그런 일까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잘 지켰다.’고 대답한 그 사람처럼 성실하게 감당한다. 그 외에 수많은 목회 업무까지 최선을 다한다. 심지어 신자들의 부부싸움을 말려야할 경우도 있다. 이런 규범적인 목회 행위가 예수 제자라는 사실을 담보할까? 그래서 거기서 영혼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을까? 오히려 영혼을 지치게 하는 건 아닐까?
목사님의 글을 읽다고 보면 제가 공부한 보수근본주의학교에서 배운 “경건”이란 개념이 “자기완성을 위한 노력”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목사님께서 구원파처럼 삶의 경건이나 태도를 무시하는것은 또 아니고요.
세계변혁의 불가능성을 말씀하시는것 같으면서도, 단지 종말만을 기다리는 도피주의는 아니신것 같고, 인문학과 윤리를 강조하시면서도, 복음과는 분리(?) 시키시는것 같고..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