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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목사 구원(152) [1]

  • 2018-08-01
  • 조회 수 1121

(152)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말에 오해가 따를 수 있다. 삶을 느슨하게 대하거나 허투루 대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이 물건은 내가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선물로 받은 거니까 대충 쓰다 버리면 된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는 바울의 권면은 삶이 하나님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통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매 순간을 삶의 절정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삶의 절정에 서려면 바울의 권면처럼 공연한 것에 자기의 삶을 소비하지 않아야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

목사 구원(139) [7]

  • 2018-07-13
  • 조회 수 1121

(139) 존재 신비라는 말에서 ‘신비’는 오해받기 쉬운 단어다. 특히 개신교회에서는 그런 오해가 잦다. 신비를 산신령에게 나타나는 속성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는 마술 비슷한 것으로 여긴다. 한국교회에서는 기도원 운동이 이런 왜곡된, 또는 정통 기독교 사상과는 구별되는 신비주의와 결합되었다. 방언, 입신, 축귀 등의 능력도 신비로 받아들여진다. 기독교 정통신학에서의 신비는 그런 것과 전혀 차원이 다르다. 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같은 중세기 신비주의자에게서 기독교의 정통 신비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

적폐 [2]

  • 2017-08-29
  • 조회 수 1121

8월29일, 화 적폐 요즘 적폐 청산이라는 말이 나돈다. 대선 기간부터 그랬다. 아니 대통령 탄핵 때부터다. 적폐(積弊)라는 말 자체만 놓고 보면 뭔가 불편하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는 의미로만 본다면 별 것 아니지만 어감 상으로는 너무 강해 보인다. 박멸해야 할 해충을 대하거나, 또는 단죄해야 할 반동분자를 대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아마 이런 걸 크게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직접 해당되는 분들만이 아니라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

하나님의 연민 [2]

  • 2017-06-24
  • 조회 수 1121

6월24일, 토 하나님의 연민 지난 성령강림후 둘째 주일에 해당하는 제 3독서의 한 구절인 마 9:36절에서 예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나는 설교에서 그 구절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연민이 바로 힐링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연민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성서의 하나님이 헬라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갖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징벌하는 분으로 보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서 고통 받게 하는 하...

하나님의 아들 [1]

  • 2016-01-06
  • 조회 수 1121

1월6일 하나님의 아들 엡 1:3-14절에 ‘그리스도 안에’라는 문구가 열 번이나 나온다고 설교에서 언급했다. 그 단락에서 언급되는 모든 것이 다 이 문구에 걸린다. 이렇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명하는 걸 가리켜 신학 용어로 ‘기독론’(christology)이라고 한다. 바울이 말하는 기독론적 해명에서 나는 세 가지를 짚었다. 첫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5절).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하나님...

베드로전서 강해(40)

  • 2019-10-22
  • 조회 수 1121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사물(Ding)을 사중자, 즉 네 가지 힘의 회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네 가지는 하늘과 땅, 사멸할 자들과 신성들이다. 그에 의해서 사물은 신비의 차원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게오르그 트라클(Georg Trakl)의 시를 설명하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오스트리아 시인 트라클(1887-1914)의 시 ‘어느 겨울 저녁’을 보자. 눈이 창가에 내릴 때 저녁 종이 길게 울리고 식탁은 여럿을 위하여 차려지고 집안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방랑하다가 어두운 오솔길로 문밖에 이른다. 은혜...

물(物) 009- 솔방울 file

  • 2022-03-11
  • 조회 수 1120

물(物) 009- 솔방울 며칠 전 집 마당에 있는 다섯 그루 소나무에 달린 솔방울을 일일이 손으로 땄다. 솔방울이 소나무 성장에 지장에 지장을 준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람으로 말하면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는 어머니 형국일 거다. 그 어머니처럼 솔방울을 맺는 소나무의 수고도 남다르다. 지구 전체의 힘이 저런 솔방울을 맺은 거 아니겠는가. 카메라에 담는 이 순간에도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으로부터 날아온 햇살이 비스듬히 비추고 있다. 저 솔방울들이 귀엽다 못해 거룩해 보인...

위로하라(5) [2]

  • 2017-12-09
  • 조회 수 1120

12월9일, 토 위로하라(5) 내일 대림절 둘째 주일 예배의 헌금찬송과 마침찬송은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1절과 2절을 각각 부른다. 나이가 든 이들은 이 찬송가를 처지는 속도로 부를 텐데, 찬송가 악상으로는 조금 빠르게(1분에 사분음표 100번의 속도) 부르는 게 좋다. 대림절 찬송이니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뭔가를 치고나가는 느낌으로 불러야 한다. 가사를 읽어보자. 1절: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 죄에 매인 백성들을 자유 얻게 하시네 주는 우리 소망이요 힘과 위로되시니 오래 기다리던 백성 많은 복을 ...

구원 지향적 삶 [4]

  • 2017-03-16
  • 조회 수 1120

3월16일, 목 구원 지향적 삶 지난 설교 제목은 ‘심판과 구원’이었다. 이에 해당되는 핵심 구절은 요 3:17절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심판과 구원을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대하게 할 염려가 있다. 어떤 이는 심판받고 어떤 이는 구원받는다고 말이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니다. 이런 표현이 애매하게 들리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 누구도 심판과 구원을 결정할 수 ...

목사 구원(142)

  • 2018-07-18
  • 조회 수 1119

(142)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삶에서 생생한 현실(reality)로 느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수준이 떨어지는 주장은 예수를 믿으니 복 받아서 가정이 화목하고 자식들의 인생도 잘 풀린다는 것이다. 소위 ‘삼박자’ 축복이라는 말까지 유행어처럼 한국교회 안에서 회자되었다. 이런 종류의 간증이 한국교회에서 주를 이룬다. 성경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에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이들은 욥기 이야기도 주관적으로 읽는다. 이유 없는 재난과...

안개, 가을비 file [5]

  • 2016-11-18
  • 조회 수 1119

11월18일, 금 안개, 가을비 오늘 아침 평소처럼 7시에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우리집 식당은 거실 겸해서 가족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실이 우리집에는 없다. 한 마디로 우리집 구조는 해괴하다.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카페도 아닌 것이, 일반 주택도 아니고, 연구소도 아닌 것이, 수도원도 아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순서 없이 짓다보다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나름으로 운치도 있다. 몇 군데 리모델링을 마음먹고 있는데, 집사람과 의견이 달라서 시작을 못하...

물(物) 137- 잔디 위 버섯 file [2]

  • 2022-09-09
  • 조회 수 1118

비가 자주 온 탓인지 마당 잔디 위 여러 곳에 이름 모를 버섯이 자라기 시작했다. 저 버섯 포자를 이곳까지 실어나른 이는 분명 바람이리라. 지구에 바람이 있기에 생명 현상이 발생하니 바람을 생명의 ‘영’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목사 구원(122) [2]

  • 2018-06-20
  • 조회 수 1118

(122) 요한 시대는 로마 황제가 창조주나 마찬가지였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기원후 51-96년)로 알려져 있다. 도미티아누스만이 아니라 여러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했다.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는 데서 기독교와 로마 제국과의 갈등을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4세기에 국교로 지정되면서도 매 주일마다 예배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문장을 신앙고백으로 바쳤다. 당시 ...

목사 구원(81) [2]

  • 2018-04-24
  • 조회 수 1118

(81)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왜 자유를 얻는 첩경인지에 대한 앞에서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기독교 신앙에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 이 질문도 역시 한 번의 대답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한 끝까지 이어져야 한다. 예수와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얻은 자유가 실제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야하기 때문이다. 인식 자체가 능력은 아니지 않은가. 신앙의 연륜을 많이 쌓은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런 질문 과정에 단단히 사로잡히지 않으면, 그가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삶의 능력을 얻지 못...

새로운 현실

  • 2015-12-19
  • 조회 수 1118

12월19일 새로운 현실 설교 마지막 구절은 다음이다. ‘그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이 되었으니 우리가 어찌 기뻐하고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교 제목을 다시 강조한 결론이었다. ‘새로운 현실’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그대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 일상에서 익숙한 다른 마땅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실현과 현실은 비슷해보여도 다르다. 현실, 또는 현실성은 실현보다 ...

계 1:2 [2]

  • 2022-11-30
  • 조회 수 111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02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요한은 증언자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헬라어 증언은 순교와 같은 단어입니다. 자기가 본 것을 증언한다는 말은 순교자와 같은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은 법적 처벌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표현에서 그 증거의 어근도 μάρτυς(witness, martyr)입니다. 요한이 증언하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

누가복음 톺아읽기 266

  • 2021-11-09
  • 조회 수 1117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66, 눅 13:31~35, 예루살렘 https://youtu.be/AgTUOV1fl34

목사 구원(100) [4]

  • 2018-05-19
  • 조회 수 1117

(100) ‘스스로 존재하는 자’에 대한 경험이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꾼다는 말은 자칫 공허한 말로 들릴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혁명적으로 바뀐다는 말 자체를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 생활에서도 이런 경향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알고 있던 기존의 신앙 패러다임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낀다. 한국교회에 성서문자주의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시절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나는 사유가 혁명적으로 바뀐...

생명 완성

  • 2015-07-08
  • 조회 수 1117

7월8일 생명 완성 나는 지난주일 설교 후반부에서 ‘부활은 하나님만이 고유한 능력으로 행할 수 있는 생명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부활과 생명 완성이 설교의 중심 주제라 아니라서 더 긴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 간단하게나마 보충하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속하는 이 주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의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오해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의 생명은 완성된 것일까, 아닐까? 이런 질문이 간단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아프고, 늙고, 그리고 죽는다. 이런 것만 보면 생명의...

베드로전서 강해(37)

  • 2019-10-18
  • 조회 수 1117

4장 12-19 고난 앞에서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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