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2일, 금
인자하심과 성실하심(4)
우리말 개역개정의 성실하심을 공동번역은 ‘미쁘심’으로 번역했다. 믿고 의지할만하다는 뜻이다. 루터 성경의 Treue도 비슷한 뜻이다. 시편 기자의 인생살이가 잘 풀려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들의 삶은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다.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기도 당했고, 천재지변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신앙을 붙든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렇게 여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렵던 일이 해결되는 걸 보니, 하나님을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 다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 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선하고 유익하다는 사실을 꿰뚫어볼 때만 하나님을 성실한 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통찰이 바로 영성이다. 이런 통찰에 이르려면 몇 가지 점에서 새로운 관점이 주어져야 한다.
우리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단 내려놓아야 한다. 테니스 시합을 생각해보라. 시합에서 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면 나쁘다. 그래서 열정을 다 기울여서 승부에 집착한다. 따지고 보면 이기거나 지는 게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서로 재미있게 시합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애를 쓰는 것과도 비슷하다. 교수, 변호사, 연예계의 스타, 기업가가 되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사람이 만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꿰뚫어보아야 한다. 비록 연봉 3천만 원의 직장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건 종교적인 덕담이 아니라 삶의 실체다.
분별과 통찰 영성에 대해서 늘 막연한 지식으로 맴돌았는데,
이렇게 명쾌한 답을 주셔서 기쁩니다. 주님 앞에 한 발 더 나간 기분입니다.
목사님과 이 시대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주님을 만나는 그 날에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