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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예수의 운명에 참여한다는 말을 세상 사람들은 공허하다고 느낄 것이다.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예수 사건이 오늘의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니 어쩔 수 없다. 짧은 동화 방식으로 말해보겠다.
초등학교 4학년인 홍길동이라는 어린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이혼한 어머니가 돈벌이로 타지로 나가는 바람에 역시 시골에서 혼자 사는 외할머니 댁에 온 것이다. 길동이는 할머니와 3년 살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갑자기 비가 오면 할머니는 우산을 들고 학교까지 왔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길동이를 위해서 동화전집을 구입했다. 길동이가 아프면 밤새도록 옆에서 간호했다. 길동이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할머니를 가깝게 느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다. 길동이는 깊은 잠에 떨어졌기 때문에 불이 난 것도 몰랐다. 할머니는 길동이를 힘들게 끌어서 마당으로 데려다놓고 숨을 거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길을 들이마시어 폐가 망가진 것이다. 길동이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평생 생각하면서 살았다. 길동이가 나이가 들어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았는데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났다. 세월이 흘러도 그 기억은 낡지 않고 오히려 더 새로워졌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힘이 솟았다. 길동이는 할머니를 통해서 삶의 기쁨과 존재의 용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예수는 이런 경험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생명 사건에서 절대적인 존재로서 내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이다. 예수를 통해서 생명의 의미와 본질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예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알아야 하고, 그것이 내 삶에서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예수는 누군가?’에 대해서 쉬지 않고 묻는다. 평생 계속되는 이 물음의 깊이에 따라서 답도 달라진다. 이런 물음과 대답의 과정이 바로 내가 구원에 가까이 이르는 길이다.
-길동이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할머니를 가깝게 느겼다.-
생명과 시간의 기원에 대해 생각할 수록 신비롭고 기적같습니다.
오늘 예화가 제겐 사실적으로 와 닿습니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