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에 대해

조회 수 1057 추천 수 0 2016.12.02 20: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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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에 대해

 

설교에서 노아 홍수 이야기를 하면서 일상의 과잉으로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짚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시원적인 것에 대한 경험이다. 시원(始原)이라는 단어는 처음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하이데거가 자주 사용하는 독일어 Anfang(안팡)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말 성경은 이를 태초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어로는 아르케(1:1).

지구의 존재하는 여러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시원을 생각할 줄 안다. 그래서 인간을 영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시원적인 것, 처음의 근원에 속한 것, 태초와 관계된 것을 인식하고 경험할 때 인간은 절대를 만난다. 그게 신 경험이기도 한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경험한 것도 이런 시원과 태초에 관계된 절대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서 그걸 경험했다. 부활 경험이야말로 가장 시원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의 일상적인 차원을 설교에서 몇몇 예로 들었다. 마당에 소복이 쌓인 낙엽, 촛불, 밤하늘의 별빛, 커피 향,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짧은 겨울의 해질녘, 낮에 나온 반달, 어느 봄날의 매화 향, 초겨울 토끼풀에 맺힌 서리,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시원적인 것을 자주 경험한다.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시원적인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바로 그것 아닌가.

시원, 즉 태초는 아득한 멋 옛날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이 순간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시원적인 것 안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그게 눈에 들어온 사람은 자유롭게 살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묶여서 살게 될 것이다. 예수를 시원으로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궁극적인 자유를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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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길위의벗

2016.12.02 22:03:30

예수 안에서 시원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 예수를 시원으로 경험하는 것, 그게 없으면 살아가는 의미가 뭘까 싶을 정도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가는 의미를 대부분 잃게 되니깐요. 물론 예수에게서 비추어 오는 빛을 거부하고자 할 때가 더 많이 있지만, 그 빛으로 인하여 삶의 의미와 정당성이 부여되겠지요. 시원적인 것으로 인한 두근거림, 그 설렘이 ㅡ 마냥 기분이 좋은 상태는 아닐 테고 고통과 절망을 동반하는 것이겠지만 ㅡ 가득한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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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12.03 08:08:21

예,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었지요.

오늘 우리도 그걸 붙들어야 하고,

더 나가서 변증해야 하는데,

실제 교회에서는 다른 데 관심이 많지요?

[레벨:21]주안

2016.12.02 22:49:04

나 존재 자체를 다시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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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6.12.03 08:09:26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가

우리 모두의 삶을 끌어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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