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21
1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9절에서 ‘귀가 있으면 들으라.’라고 한 뒤에 이제 10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고초를 압축해서 말합니다. 사로잡혀 갈 사람들도 있고, 칼에 죽을 사람도 생깁니다. 일종의 포로 생활이라 할 수 있는 이런 고초는 고대 이스라엘의 운명이었습니다. 강력한 제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 백성은 어쩔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대표적인 포로 생활은 두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애굽에서 벌어졌고, 다른 한 번은 바벨론에서 벌어졌습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페르시아,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요한은 고대 이스라엘의 운명과 연결해서 초기 그리스도인이 감수해야 할 운명을 설명한 것입니다.
요한은 구약 선지자의 전통에 서서 환난과 박해를 당할 때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이런 호소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인내는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참고 견딘다는 말은 어려움을 쉽게 벗어던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어디 쉬운가요?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참고 견디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약간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무료함을 참고 견딜 줄 알아야만 삶이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걸 견디지 못해서 끊임없이 재미있는 것을 찾아 헤매면 삶은 날이 갈수록 무게감 없이 가벼워집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인내가 아닐는지요.
우리가 무조건 인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내와 믿음을 동시에 말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인내할 수 있고, 인내를 통해서 믿음이 돈독해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인내와의 관계에서 볼 때 믿음은 고난과 시련이 곧 끝난다는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이미 확실하게 담보되었다는 확신입니다. 우리 인생살이 전체가 이런 인내와 믿음의 관계 안에서 진행됩니다. 제대로 된 나그네는 순간마다 순례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인내하고, 목적지가 가까이 온다는 희망을 노래할 줄 아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