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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30일 예수 영접(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7)
‘영수 영접’ 항목을 정리하면서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려도 될는지요. 2001년 10월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박사가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대우학술재단(이사장 김용준)이 실시하는 세계 석학초청 세미나 건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맞춰서 판넨베르크의 <신학과 철학>(Theologie und Philosophie)을 번역했습니다. 6개월 동안 하루 종일 그 번역에만 매달렸습니다. 출판사 사장이 번역책을 판넨베르크 박사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전달했다고 하더군요. 출판사 사장은 나와 함께 가자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는 것이 귀찮아서 저는 그만 두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치고 아직도 판넨베르크를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다.
에피소드는 다음입니다. 판넨베르크 박사가 오픈 된 대중강연도 했지만 신학대학교 교수들만 모인 특별 강연도 했습니다. 아무개 신학대학교 박 모 교수라는 분이 그 모임의 사회를 맡았다고 하네요. 박 교수가 판넨베르크와 개인적으로 잠시 대화하는 기회를 잡아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거듭난 체험이 있으신가요?” 판넨베르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박 모 교수가 일종의 무용담처럼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순간 그가 예수영접과 거듭남의 문제를 조금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남에게 자랑하듯이 발설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교회 회중 앞에서 고백해야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그런 것을 개인적으로 질문하거나 대답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준엄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있는 전문 산악인에게 “당신 이 산을 사랑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하고 묻는 것과 똑같은 형국이지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7)
‘영수 영접’ 항목을 정리하면서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려도 될는지요. 2001년 10월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박사가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대우학술재단(이사장 김용준)이 실시하는 세계 석학초청 세미나 건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맞춰서 판넨베르크의 <신학과 철학>(Theologie und Philosophie)을 번역했습니다. 6개월 동안 하루 종일 그 번역에만 매달렸습니다. 출판사 사장이 번역책을 판넨베르크 박사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전달했다고 하더군요. 출판사 사장은 나와 함께 가자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는 것이 귀찮아서 저는 그만 두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치고 아직도 판넨베르크를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다.
에피소드는 다음입니다. 판넨베르크 박사가 오픈 된 대중강연도 했지만 신학대학교 교수들만 모인 특별 강연도 했습니다. 아무개 신학대학교 박 모 교수라는 분이 그 모임의 사회를 맡았다고 하네요. 박 교수가 판넨베르크와 개인적으로 잠시 대화하는 기회를 잡아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거듭난 체험이 있으신가요?” 판넨베르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박 모 교수가 일종의 무용담처럼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순간 그가 예수영접과 거듭남의 문제를 조금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남에게 자랑하듯이 발설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교회 회중 앞에서 고백해야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그런 것을 개인적으로 질문하거나 대답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준엄성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있는 전문 산악인에게 “당신 이 산을 사랑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하고 묻는 것과 똑같은 형국이지요.
항상 말은 잘 못하지만 늘 감사한 마음 입니다.
남을 평가하는 잘못된 습관들이 인간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생겨나나 봅니다.
미련하리 만큼 높은 산을 등반하는 전문산악인은 산과 일치하여 어디에 있든지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끔 우리는 엉뚱한 질문을 하곤하는 경우가 너무 많네요.
신학대학의 박교수님의 이야기는 판넨베르크 박사에에 "거듭난 체험이 있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대답을 '못'하던데라는 느낌의 무용담으로 들립니다. 우월감...재미있네요.
임직교육을 받을 때 일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레포트로 제출하라고 하시더군요.
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척보면 알 수 있다고요. 정말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