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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9일 기도의 능력(7)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기도에 대한 앞서의 묵상에서 기도에 대한 생각이 더 혼란스러워진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간질병을 고친 기도의 능력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면 바로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던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이 완전히 몸에 각인된 분들에게는 저의 설명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그런 신앙의 패턴을 바꿔야한다고 말씀드려도 별로 소용이 없겠지요.
조금 옆으로 나가는 말이지만, 사람의 생각은 한번 고정되면 바뀌지 않습니다. 근본적이고 문자적인 성서관에 물들어 버리면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부정하면 자기의 모든 존재 근거가 허물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비아의 말씀 묵상에서 어느 정도 새로운 깨우침이 열리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은 이미 그럴 가능성을 갖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문자주의적 성서관에 대해서 평소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분들만 저의 설명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도 문제를 두 가지로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기도는 자기의 꿈을 이루는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불치병을 기계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불치병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 게 핵심이겠지요.
둘째, 다른 주제도 그렇지만 기도라는 주제도 한 성서 구절로만이 아니라 성서 전체에서,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 전체와 연관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부분과 전체의 해석학적 순환이 여기에도 해당됩니다. 이런 해석학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겠지요.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기도에 대한 앞서의 묵상에서 기도에 대한 생각이 더 혼란스러워진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간질병을 고친 기도의 능력이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면 바로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던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이 완전히 몸에 각인된 분들에게는 저의 설명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그런 신앙의 패턴을 바꿔야한다고 말씀드려도 별로 소용이 없겠지요.
조금 옆으로 나가는 말이지만, 사람의 생각은 한번 고정되면 바뀌지 않습니다. 근본적이고 문자적인 성서관에 물들어 버리면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부정하면 자기의 모든 존재 근거가 허물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비아의 말씀 묵상에서 어느 정도 새로운 깨우침이 열리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은 이미 그럴 가능성을 갖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문자주의적 성서관에 대해서 평소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분들만 저의 설명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도 문제를 두 가지로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기도는 자기의 꿈을 이루는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불치병을 기계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불치병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 게 핵심이겠지요.
둘째, 다른 주제도 그렇지만 기도라는 주제도 한 성서 구절로만이 아니라 성서 전체에서,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 전체와 연관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부분과 전체의 해석학적 순환이 여기에도 해당됩니다. 이런 해석학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겠지요.
'믿음'이나 '기도''나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그 믿음을 하나님으로 부터, 그 기도를 하나님으로 부터
자꾸만 분리 시키고 객체화 시킵니다
그리고 '이간자'는 역시 그놈의 집요한 '자아'이구요 !
심오한 신학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의 '죄됨'의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판넨베르크 <믿음의 기쁨>을 읽으며
절실히 공감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아멘.